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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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16

2025-09
#도란도란 #봄내를꿈꾸다
‘한가한들’에 새긴 희망
시민기자가 취재하는 춘천시민 이야기


춘천시 외곽 경춘선 철길을 따라 펼쳐진 논밭 위에 그림이 펼쳐졌다. 춘천에서는 첫 시도다. 대지예술인 ‘논아트’가 조성된 이곳은 신동면 증리, 한가한들이라 이름 붙여진 곳이다. 한가한들은 (주)여로가 펼치는 지역 밀착형 농업문화 사업의 일환으로 주민들로부터 평소 ‘한들’로 불린 점을 고려해 프로젝트 명칭이 ‘실레마을in 한가한들’로 정해졌다. 이 논에서 자란 곡물은 술이 되고, 그 술이 다시 사람과 공동체를 잇는다. 농사(1차), 양조(2차), 체험, 문화(3차)를 엮어낸 이 프로젝트는 (주)여로, 강원도시농업사회적협동조합, 살피텃밭, 어쩌다농사가 함께 기획했다.




춘천으로 내려와 논을 일구던 (주)여로의 한진욱 대표는 “기차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논에 문장과 그림이 보인다면 모두가 잠시 고개를 들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문화재 건축 설계를 전공한 그는 한국의 집에서 ‘한가’를 따오고, 한국의 술에서 ‘한주’를 가져와 전통주 ‘한가한주’를 만들었다. 그리고 넓은 들을 뜻하는 지명 한들과 결을 맞춰 프로젝트 이름은 ‘한가한들’이라 지었다.


논의 색채는 토종벼가 빚는다. 가위찰과 붉은차나락 등 잎과 이삭의 결이 다른 품종을 자리에 맞춰 심어 도안을 구현하고, 친환경단지의 기준에 맞춰 재배한다. 정교하게 위치를 맞춰 모를 내려야 해서 기계보다 손이 먼저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흙에 발을 담그고 발걸음을 맞추는 2시간의 손모내기. 마무리는 막걸리(또는 식혜)와 참. 노동의 땀과 문화의 맛이 한 그릇에서 만난다.


‘한가한들’ 모내기 심기에 참가한 초등학생과 학부모의 모습


이 실험의 목표는 멋진 사진 한 장이 아니다. 농사·가공·체험의선순환을 통해 젊은 귀농인이 지역에서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세우는 일이다. 논바닥에 겹겹이 찍힌 발자국은 협업의 흔적이자 다음 계절을 예고하는 문장으로 남는다. 올해 심은 마음이 내년에 술이 되어 다시 사람을 모으고, 그 술이 또 다른 손모내기를 부르는 선한 순환을 꿈꾼다. 경춘선 창밖을 스치는 초록 글자와 함께, 춘천의 새로운 인사말이 오래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