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 1학년 교실의 아침. 교실에 막 들어서는데 한 아이가 달려와 말합니다. 선생님, 저 오늘 장화 신고 왔어요! 이거 아빠랑 샀어요. 유치원 때. 멋지죠? 오, 멋진데? 그러자 다른 아이가 타박합니다. 야, 너는 비도 안 오는데 장화를 신고 오냐? 그러자 아이도 지지 않네요. 야, 우리 아빠가 오늘 비 온다 그랬어! 헐. (하늘을 가리키며) 저렇게 해가 났는데 비가 오겠냐?
공부 시간. 꼬물꼬물. 바둑알을 세어가며 더하기 공부를 하는데 아까부터 창밖을 보던 아이가 불쑥 묻습니다. 선생님, 쫌 이따 비 오겠죠? 밖에 흐렸으니깐요. 공부가 끊어질까 봐 못 들은 척하고 이어가려는데, 아이가 이번에는 창가로 가더니 까치발을 하고 손을 뻗어 창문을 열어젖힙니다.
창문이 창틀에 쾅 부딪히는 소리가 났죠. 그러자 한 아이가 그 아이를 나무랍니다. 야, 너 공부 시간에 왜 딴짓 해. 엉? 너 장화 자랑하려고 그러지? 아이가 억울하다는 듯 말합니다. 야, 우리 아빠가 오늘 비 온다 그랬어. 진짜라니깐. 상황을 수습해보려고 저도 끼어듭니다. 알았어. 이따가 점심시간에 비 오면 좋겠네. 장화 신고나가게.
그러자 아이가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리를 지릅니다. 오늘 비 와야돼요! 비 안 오면 장화 못 신는다구요! 아이고, 녀석도 참. 근데 아이의 말투에서 어떤 필사적인 기운이 느껴져 야단을 못 치겠더군요. 그런 제 편을 들어주고 싶었는지 한 아이가 대신 아이를 나무랐습니다.
야, 너 왜 싸가지 없이 선생님한테 까불어! 너만 장화 있는 줄 아냐? (친구들을 향해) 야, 장화 있는 사람 전부 손들어. 그러자 아이들이 모두 손을 드네요. 그러더니 장화를 누가, 언제, 어떤 색깔로 사 줬는지 떠들기 시작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장화 이야기를 나누게 두었다가 다시 공부로 돌아가려고, 얘들아, 우리 다음에 진짜로 비 오면 전부 다 장화 신고 오자. 그러니까 지금은 아까 공부하던 거 다시...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가 울부짖습니다. 다음 번에는 장화 못 신는다구요. 장화가 너무 짝아져서 발에 안 들어가니깐요!
아유, 저 녀석을 그냥. 장화 하나 때문에 공부 시간 다 날라가네. 그렇다고 화를 내자니 다시 공부 분위기로 돌아오는 시간이 걸릴 거 같더군요. 이번에도 저 대신 누가 그 아이에게 한 마디 해주길 바랐는데 웬걸. 아이들 눈빛은 반대네요?
헐. 장화가 짝아져? 너 그거 언제 샀는데? 그 사이에 발이 컸냐? 유치원 때 샀어.
헐. 나도 장화 금방 짝아져서 얼마 못 신고 버렸는데. 비가 안 와서. 한 번은 비 안 올 때 신고 학교 올라 그랬는데 엄마가 못 신게 했어. 헐. 못 신게 했어? 그럴라면 왜 사 줬는데. 니네 엄마 에바다(너무 한다). (다른 아이가) 나도 한 번 짝아진 장화 신고 개울에 들어갔었단 말이야. (갑자기 양말을 벗고 책상 위에 발을 척 올리더니 엄지발가락을 가리키며) 그런데 여기가 엄청 아펐단 말이야. 니네도 조심해. (다른 아이가) 내 빨간 장화 봤지? 그거 짝아져서 지금 못 신는데 우리 엄마가 지난번 비 올 때 신고 학교 가라 그랬단 말이야. 발가락이 꼬부라지고 엄청 아펐단 말이야. 헐. 장화 짝으면 발이 얼마나 아픈데, 그걸 신으라 그랬어? 와, 니네 엄마 쩐다.
아이들의 장화 이야기가 하늘을 움직였을까요, 점심시간이 시작되자 비가 쏟아졌습니다. 아이는 후다닥 점심을 먹고 장화를 신었죠. 그 순간, 장화는 장수의 갑옷으로 변하더군요. 자라면서 수없이 겪게 될 불안을 막아주는 갑옷. 갑옷을 입은 아이가 세상을 향해 유유히 나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