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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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15

2025-08
#춘천은지금 #봄내를만나다
2025 춘천시 로컬브랜딩 전략교육
텅 빈 거리, 불 밝힌 젊은 아이디어들


30년 넘게 중앙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해 온 김순자 사장은 텅 빈 거리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더위에 그나마 있던 단골손님마저 발길을 끊었다. 하루 매출이 5만 원을 넘기기 어려운 날이 태반이다.한때 춘천의 심장이었던 명동과 중앙시장 일대. 1970년대 주말이면 1만 5천 명이 몰려들던 이곳에 이제는 적막감만 흐른다. 하지만 최근 이 거리에 새로운 가능성이 움트고 있다. 80명의 젊은 춘천시 공직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그려낸 창의적 아이디어들이 바로 그 희망의 씨앗이다.


‘춘천의 중심’은 과거의 명성이 그립다

중앙시장은 조선시대부터 춘천 상업의 맥을 잇는 곳이다. 1952년 미군들이 세운 595개의 작은 점포에서 시작해, 1960년 상인들이 직접 땅을 사서 만든 ㈜춘천중앙시장은 335개 점포를 갖춘 강원도 최대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했다.

1970년대 춘천이 강원도 중심도시로 부상하면서 중앙시장과 명동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서울 명동만큼 번화하다고 해서 붙여진 ‘명동’이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춘천을 넘어 춘성, 화천, 양구 주민들까지 찾아오는 명소였다. 소양극장을 비롯한 4개의 극장이 들어서면서 젊은이들의 성지가 되었고, 주말이면 하루 1만 5천 명이 넘는 인파로 북적였다.


춘천 시민의 발길이 끊어지질 않았던 1984년 명동거리 모습


2002년 ‘겨울연가’ 열풍은 명동을 아시아 관광객들이 찾는 성지로 만들었다. 배용준과 최지우가 함께 걸었던 명동길에는 기념 동상과 핸드프린팅까지 남겨졌다.

하지만 찬란한 날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1980년대 슈퍼마켓과 백화점이 등장하고, IMF 외환위기까지 겹치면서 상권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경기 부진과 소비 위축으로 동네는 텅 비어가고, 자영업자들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겨울연가’ 열풍으로 2004년 명동을 관광하는 일본 여행객들



우리 동네를 알리는 방법, 로컬브랜딩

비단 춘천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한때 번화했던 원도심이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신시가지에 밀려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우리 동네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주목받는 해법이 바로 ‘로컬브랜딩’이다. 지역이 가진 고유한 정체성과 매력을 발굴해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가는 전략으로, 단순한 홍보를 넘어 사람들이 방문하고 싶고 살고 싶은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과거 경공업이 번성했다가 침체의 길을 걸었던 서울 성수동이 ‘한국의 브루클린’이 되고, 유물․유적으로 산업 발전이 더뎠던 경주 황리단길이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가 된 것이 좋은 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자신의 동네에 관심과 자부심을 느끼고 함께 만들었다는 점에 있다.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가 된 경주 ‘황리단길’


원도심의 숨겨진 보물들, 새로운 가능성을 열다

춘천의 원도심은 70년 이상 시민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들어왔다.

오랜 추억을 간직한 노포들, 사계절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되어온 지하상가까지. 시민의 삶과 함께 호흡해 온 공간들에는 로컬브랜딩의 핵심 요소인 ‘고유한 정체성’과 ‘차별화된 매력’이 충분히 존재한다.그리고 이러한 매력적인 원도심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일에 젊은 공직자들이 직접 나섰다.

올해 4월부터 5월까지 7주간 진행된 ‘로컬브랜딩 전략개발 교육’은 춘천시 공직자 교육의 새로운 시도였다. 저연차 공직자 80명이 참여해 춘천 원도심을 살릴 구체적인 방안을 직접 고민하고 제안해 보는 실무형 프로그램이었다.



교육 배경에는 작년 11월 모종린 연세대 교수가 공직자 정책아카데미를 통해 제안한 ‘머물고 싶은 춘천 만들기’ 전략이 있었다. 육동한 춘천시장도 “원도심을 깨우는 해법을 젊은 공직자들의 신선한 시각과 창의적 아이디어에서 찾아보자”며 의지를 보였다.젊은 공직자들이 직접 현장을 돌아다니며 상인들과 대화하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창의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 자체가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였다.


연세대 모종린 교수와 젊은 공무원들이 현장을 답사하며 분석하고 있다


젊은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20가지 창의적 전략

명동 지역을 중심으로 한 5개 구역을 대상으로 내놓은 아이디어들은 정말 기발했다. 골목골목의 역사와 정체성을 재조명하면서도, 지금의 트렌드를 반영한 신선한 방안들이 눈길을 끌었다.



(왼쪽부터) 로컬브랜딩의 5개 구역인 명동, 육림고개, 중앙시장, 지하도상가, 명동닭갈비 거리의 현재 모습


체계적으로 설계된 교육 프로그램

이러한 창의적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교육 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참여자들은 단순히 아이디어만 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 구현 가능성까지 검토했다.

각 팀은 해당 지역의 역사적 배경과 현재 상황을 분석하고, 실제 대상 고객층을 설정한 후,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공직자들이 평소 업무에서 벗어나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연세대 모종린 교수와 박민아 강사가 전문 지도를 제공했으며, 로컬브랜딩의 이론적 배경부터 실제 성공 사례 분석까지 체계적으로 진행됐다.



우수 참여자들에게는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학습 기회도 제공될 예정이다. 최우수상 팀에게는 멜버른이나 포틀랜드 등 로컬브랜딩 선진 도시를 8일간 견학할 수 있는 기회를, 우수상에는 제주도, 장려상에는 서울시 견학 기회를 제공한다. 로컬브랜딩 선진 사례를 직접 보고, 다른 지역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여, 본인들의 연구 결과를 실제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검증할 기회가 될 것이다.


무심코 지나치던 곳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교육에 참여한 신입 공무원 현지숙(기후에너지과) 주무관은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원도심 문제를 고민해보는 시간이 정말 유익했다”며 “평소 무심코 지나치던 장소에 관심을 갖게 됐고, 공직자로서 지역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여자는 “직접 상인들과 대화하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며 “70년 된 가게마다 사연이 있고, 그게 다 우리 지역의 자산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교육의 가장 큰 의미는 젊은 공직자들이 시민과 지역을 위한 창의적 해법을 직접 제안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우리 지역을 어떻게 하면 더 살기 좋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해보는 시간이었다.


특히 지역 자원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에는 ‘낡은 건물’로만 여겨졌던 중앙시장이 ‘70년 역사를 간직한 문화유산’으로, 상인들의 목소리는 ‘살아있는 역사의 증언’으로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젊은 공직자들의 에너지와 창의성이 시민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 발전에 직접 기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도 참고할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다.


이제 시작, 원도심의 희망찬 미래를 향해

이제 아이디어들이 실제로 구현될지 주목할 때다. 지속 가능한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 행정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 상인, 지역단체 등 지금보다 더 큰 노력들이 모여야 할 일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시도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춘천시는 올 하반기부터 우수 아이디어 중 일부를 시범 사업으로 추진할 것이며, 지속적으로 교육을 확대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80명의 젊은 공직자들이 그려낸 아이디어들이 모두 실현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보여준 열정과 창의성, 그리고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은 분명히 춘천 원도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진정한 ‘춘천브랜딩’을 향한 첫걸음

로컬브랜딩은 곧 ‘경험’이다. 지역 주민과 관광객, 지역 정부 모두가 그 지역을 사랑해서 자발적으로 방문하고 싶어 하고,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70년 역사를 간직한 원도심이 새롭게 거듭나면 춘천만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이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가 함께 어울려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시민들은 우리 도시에 더 큰 애정을 갖게 되고, 지역 공동체의 결속력을 높이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고, 특히 청년층을 위한 창업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 방문객이 증가하면 상권 전반에 활력이 돌고, 이는 지역 경제 전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텅 빈 거리를 바라보며 한숨 쉬던 김순자 사장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번질 것이다. “우리 동네가 이렇게 다시 살아날 줄 몰랐어요”라고 말하는 목소리에는 더 이상 아쉬움이 아닌 희망이 담겨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