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왕 에디슨이 만든 세계 최초의 축음기가 춘천에서 공개됐다. 지난 5월 13일 개관한 ‘꿈꾸는 예술터’가 세계 유일 에디슨 전문 박물관인 강릉 ‘참소리 박물관’의 소장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회 <에디슨 생활의 발명: 도시의 밤, 소리의 여명>은 과학과 일상의 경계에서 ‘생활의 발명’을 이룬 에디슨의 유산을 만날 수 있다. 인간의 손으로 미래를 설계했던 한 사람의 여정을 이곳에서 따라가 보자.
에디슨의 작품 300여 점이 춘천에 왔다는 소식에 6월 11일 ‘꿈꾸는 예술터’를 찾았다. 이곳 1층에 286.7㎡ 규모로 조성된 예술 교육 및 체험 전용 전시공간인 빛소리 전시관이 있다.
입구부터 예상과는 다른 분위기가 펼쳐진다. ‘도시의 밤, 소리의 여명’이라는 부제만 보고 어두운 전시장과 잔잔한 조명을 떠올렸지만, 공간은 오히려 밝고 또렸하다. 전시 1~2관, 총 8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관람자의 동선을 따라 에디슨의 ‘집’과 ‘시간’을 자연스럽게 오가며 그의 발명 세계를 경험한다.
1관은 실제 생활공간처럼 꾸며져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은 듯한 기분이 든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가전제품과 가구들이 에디슨의 손끝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니, 절로 감탄이 흘러 나왔다.
주방처럼 꾸며진 벽 한쪽에는 전기 토스터와 주전자 등 에디슨이 생전에 발명하거나 개발한 다양한 생활용품과 가전제품, 주방기기가 놓여 있다. ‘에디슨 일렉트릭 팬’, ‘탄소 송화기’ 뿐 아니라 커피 포트, 타자기, 재봉틀, 난로, 선풍기, 온풍기, 시계 등도 볼 수 있다. 와플기는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아내를 위해 1915년에 만들었다고 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전기 발명 전 수동으로 움직였던 세탁기(간이 탈수기)와 냉장고(아이스박스)였다. 외관은 나뭇결이 살아있는 색다른 모습이다.
발명의 레시피북
1877년 에디슨이 만든 최초의 축음기 ‘틴 포일(주석박형 축음기)’도 시선을 끈다. 축음기는 소리를 저장하고 재생하는 기계다. 에디슨은 양철 포일을 씌운 원통에 바늘이 달린 송화기를 연결해 소리를 기록했다. 전시장의 중앙에선 축음기에서 경쾌한 재즈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1920년대 제작된 가구형 축음기에서는 SP 음반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소리를 낸다. 당시 거실을 재현한 가구와 카펫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해설사는 손잡이를 돌려 태엽을 감아 또다른 곡을 들려줬다. 친구들과 함께 온 송하울(14) 양은 “100년 전 사람들이 듣던 음악을 직접 감상하니 신기하다”고 웃었다.
꿈이 잠든방
바늘 위로 걷는 양
에디슨 전기회사가 최초로 만든 탄소 필라멘트 전구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전구도 전시돼 있다. 대표작은 1879년 발표된 탄소 필라멘트 백열전구다. 전구의 상용화와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발명품이다. 전구 윗부분이 ‘참외배꼽’처럼 볼록하게 튀어나온 모습도 흥미롭다.
타임머신 타고 에디슨
전시2관의 이름은 ‘타임머신 타고 에디슨’이다. 에디슨이 1869년 발명한 주식 시세 표시기부터 영화 환등기와 그가 실제 착용했던 중절모에 이르기까지 그의 발명들을 시간의 순서대로 만날 수 있다. 전시품 사이에 삽입된 연표, 영상, 키워드 등 설치물들이 작품 이해도를 높여줬다.
뜻밖의 발명품들도 등장했다. 아내를 생각해 만든 ‘와플 기계’, 세계 최초의 ‘말하는 인형’이다. 1889년 딸에게 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배에 소형 축음기를 넣어 웃거나 우는 소리를 내는 인형이다. 그의 발명은 모두 구체적이고 생활 중심적이었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기술들이, 당시엔 ‘밤도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대’의 서막이었다.
전시를 기획한 박종훈 춘천문화재단 이사장은 “기술이 사람들의 생활 리듬과 감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밤’은 단순한 어둠의 시간이 아니라 기술로 만들어진 새로운 시간대”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최고의 교육도시’를 지향하는 춘천시의 과학‧예술 융합교육 비전과 맞닿아 있다. 육동한 춘천시장이 강조한 ‘도시 전체를 배움의 무대로 만드는 학습 기반 도시’ 사업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개관전은 기술과 예술, 과거와 현재, 그리고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는 상징적 출발점이다. 강릉 참소리박물관 손성목 관장과의 협업은 로컬 정체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갖춘 기획으로 의미가 깊다. 육 시장과 손 관장의 환담 자리에서는 “춘천의 문화기반 위에 기술사적 가치와 실물 콘텐츠를 입히면,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배움터가 될 수 있다”는 공감이 오갔다. 손 관장은 “참소리박물관의 소장품이 교육과 문화에 진심인 춘천에서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게 돼서 기쁘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는 과거 기술의 회고전에 그치지 않는다. 춘천이 추구하는 미래형 학습 생태계이자, 지역 자산을 세계적 콘텐츠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그 중심에는 발명이 삶을 바꾸듯 도시도 문화를 통해 다시 쓰여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김미애 춘천시 문화예술과장은 “이번 전시는 에디슨의 탐구정신과 창의성을 배울 수 있는 체험형 문화예술교육 전시”라며 “에디슨의 발명을 통해 오늘날 도시의 삶과 감각을 다시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에디슨이 만든 것은 단지 기계나 전류가 아니었다. 그는 ‘시간을 새롭게 쓸 수 있는 방식’을 창조한 사람이었다. 이번 전시는 그의 발명이 만들어낸 생활의 풍경 속을 직접 걸으며, 발명이 인간의 삶과 얼마나 밀접한지를 체감하게 한다. 전시장을 나서는 길, 관람객들은 스스로에게 묻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의 거실을 채우고 있는 기술들은, 과연 어떤 시간과 삶의 방식을 우리에게 선물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