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파미용실
북적북적, 와글와글. 5평 남짓한 가게에서 새어 나온 할머니들의 웃음소리가 상가 복도를 가득 채운다. 춘천 퇴계동에위치한 동네 할머니들의 수다방 ‘가고파미용실’이다. 이곳은 행정안정부가 정한 착한가격업소로 미용 가격이 무척 저렴하다. 요즘같이 고물가 시대에 커트가 단돈 5,000원이다.하지만 싸다고 무턱대고 머리를 맡길 수 있나! 이곳에서 19년째 할머니들의 머리를 매만져 온 전 모(71) 사장을 만나 웃음꽃 가득한 미용실의 비결을 물어봤다.
젊은 시절, 전 사장은 춘천에서 잘나가는 가위손이었다. 하지만 결혼과 함께 일을 그만두고 20년간 아내이자, 엄마로지냈다. 두 아들이 성인이 되고 집을 떠나자, 전 사장에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때 우연히 할머니들의 미용 봉사를 하게됐다. 그는 “오래 쉬어서 못 할 줄 알았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딱 5년만 일하자’라는 생각으로 가게 문을 열었는데, 벌써 20년이 다 됐네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과거 동네 미용실은 주민들의 사랑방과 같았다. 여자들에겐더욱 그랬다.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까맣게 염색하고, 뽀글뽀글하게 파마하는 동안 아침드라마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바람난 남편 이야기부터 속 썩이는 자식, 지긋지긋한 시집살이까지 주제도 시시각각 바뀌었다. “여기선창피하고 부끄러운 게 없어요. 세상사 다 비슷하죠. 꼬리에꼬리를 물고 이야기하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시간도 잘가요. 재미있어요.”
8090 할머니들이 예뻐지는 공간. 5평 남짓한 가고파미용실의 내부
할머니들 전매특허 ‘꼬불이 파마’용 로프와누렇게 변한 종이 위에눈에 띄는 미용 요금
2025년 현재, 가고파미용실의 모습은 가게 문을 처음 연2006년과 다르지 않다. 그 기간만큼 단골 할머니들의 얼굴에 주름이 깊어지고 하얀 머리카락이 더 많아졌을 뿐. 지팡이를 짚거나 조금 뒤뚱거려도 미용실을 향한 할머니들의 발걸음은 끊이질 않았다.
가게 손님들의 대부분은 80~90대 할머니들이다. 자칭 ‘할머니 박사’인 전 사장은 “정말 별의별 일들을 다 겪었다”라며지난 일들을 회상했다. 귀가 들리지 않아 가게가 떠나갈 듯큰 소리로 떠드는 할머니, 엉뚱한 소문을 듣고 와서 엉엉 울던 할머니 등 재미있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치매로 고생하는 할머니들의 에피소드는 달랐다.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절뚝거리며 가게를 찾아오던 단골손님 얘기엔 눈시울이 붉어졌다. 상가 화장실에 간 후 제때 돌아오지 않는 할머니를 찾아 한겨울에 슬리퍼를 신고 뛰어다닌 적도 있다. 다행히 가게로 다시 모셔 왔지만, 지금 생각해도 가슴 철렁한 사건이었다.
최근 들어 전 사장은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종종 있다. 단골이던 할머니들이 요양원에 들어갔다거나, 세상을 떠났다는소식을 들을 때다. 그는 “제발 할머니들이 머리 예쁘게 하시고, 건강하게 지내다가 돌아가시길 바란다”라고 전했다.내년이면 가고파미용실이 20주년을 맞는다. 커트 5,000원,일반 파마 15,000원을 받아 가게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돈 많이 벌려고 장사하는 거 아니에요. 할머니들도 저를 기다리지만 저도 할머니들을 기다려요. 같이 수다를 떨다 보면, 아팠던 것도 싹 잊어버리거든요. 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일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전 사장이 신신당부했다. “남자, 젊은이 절대 사절! 오직 할머니 손님만 받아요!” 앞으로도 가고파미용실이‘동네 할머니들의 수다방’으로 오래오래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