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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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13

2025-06
#춘천은지금 #봄내를만나다
호국보훈의 달 특집
춘천대첩 75년, 기억을 세우다

춘천대첩은 결코 잊힌 전투가 아닙니다. 75년 전, 아직 봄기운이 채 스미지 않은 도시를 지키기 위해 포탄을옮기던 학생과 시민, 밤새 방어진지를 지키던 군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25년, 그들의 이름이 기념탑에새겨졌습니다. 대한민국 전쟁사에서 가장 먼저 승리를 거둔 도시 춘천.

6월 호국보훈의 달, 춘천대첩 75주년을 기리는 기념탑 제막식 현장과 그날을 기억하는 목소리를 담아 특집을구성했습니다.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 채 녹지 않은 봄기운 속에, 75년 전 총성을 기억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조용히 모였다. 제막식을 앞두고 하얀 천에 덮인 기념탑 앞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제막!” 외침과 함께 천이 걷히자 ‘6.25 참전유공자 기념탑’이 장엄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가로13m, 세로12m, 높이12m. 기념탑 측면에는 춘천 출신 3,286명의 참전영웅 이름이 새겨졌다. 참전유공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새긴 구조물은 강원도 최초다.


기념탑 앞에는 올해 95세의 염기원 6.25 참전유공자회 춘천시지회장이 조용히 서 있었다. 정갈한 하얀 정복과 모자를 갖춰 입은 그는, 가슴에 달린 배지를 손끝으로 여러차례 매만졌다. 그 배지에는 전우들의 얼굴이 아른거리는 듯했다. 전쟁의 시간을 온몸으로 견뎌낸 사람다운 단단한 기색이었다. 말없이 서 있던 그는,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곳이 나에겐 전우들의 무덤이자, 우리가 처음 승리한 곳입니다. 이 탑은 피와 땀이 서린 산 역사입니다. 후손들이 이 탑을 보며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염기원 회장은 지난 10여 년 간 참전유공자들의 생계를 챙기고, 회원들의 건강을 돌보며, 기념탑 건립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 온 인물이다. 이날 그가 흘린 침묵은 말보다 더 깊은 증언이었다.



이 기념탑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춘천시와 6.25참전유공자회 춘천시지회, 시민단체들이 함께 뜻을 모은 결과물이다. 기념탑 건립 논의는 201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이어졌지만, 예산 확보와 부지 선정 등의 현실적 문제로 여러차례 중단되곤 했다. 그 과정에서 염기원 회장은 “전우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남기고 싶다”며 직접 국방부와 강원도청을 오가며 자료를 수집하고 시민 서명을 받아내며 집요하게 건립을 추진해왔다. 이후 춘천시는 근화동 수변공원 부지를 확정하고, 디자인 공모를 통해 기념탑의 명칭과 설계를 결정했다. 기념탑에 새겨진 3,286명의 이름은 보훈처와 국방부 자료를 토대로 확인된 ‘춘천 출신 참전유공자 전원의 실명’이며, 지역 내 초‧중고등학교 기록과 향토사 자료를 함께 대조해 최종 집계됐다. 명단을 완성하는 데만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이처럼 기념탑은 ‘춘천이 함께 만든 기념비’이자 이름을 되찾는 여정의 결실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북한군 제2군단 소속 2개 사단이 춘천지구를 공격하며 전쟁이 시작됐다. 춘천 북방에서 3일간 벌어진 치열한 이 전투는 ‘춘천대첩’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당시 염기원 회장은 국군 제6사단 7연대 소속 소총수로 춘천 동쪽에서 방어진지를 지켰다.

“첫 포성이 밤중에 울렸지요. 중대 16명이 나갔는데, 아침이 되니 절반이 없었습니다. 포복하며, 산 능선에 엎드려, 사흘 밤낮을 총만 쐈습니다.”

북한군은 하루 만에 춘천을 점령하고, 3일 만에 수원까지 진격해 서울의 국군을 포위‧전멸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춘천의 방어선이 3일간 버텨낸 덕분에 이 계획은 무산됐고, 유엔군의 증원이 가능해졌다. 춘천대첩은 전쟁 초반 국군이 거둔 첫 승리이자, 낙동강 방어선 구축의 기틀이 된 전투였다.

국방부는 이 전투를 낙동강지구전투,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한국전쟁 3대 전승행사로 지정했고, ‘춘천지구 전투’는 오늘날 ‘춘천대첩’으로 격상되어 불리고 있다.




춘천대첩은 군인만의 전투가 아니었다. 6사단 군인의 목숨을 건 전투 내용은 말할 것도 없지만 춘천 전투가 갖고 있는 큰 의 미는 바로 춘천 시민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 전투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전투의 승패는 탄약 수송에 달려 있었고, 그 무거운 포탄을 옮긴 이는 시민과 학생들이었다. 소양강 남쪽 제사공장 에서 5,000발의 포탄을 전선으로 옮기는 데 고등학생, 시민, 경찰이 함께했다. 시민들은 지게(1~2발), 손수레(3~4발), 우 마차(4~5발), 자동차 (8~10발) 등 다양한 수단으로 포탄을 날 랐으며, 일부는 리어카를 릴레이로 연결해 소양강 이남까지 운 반하기도 했다.



또한 제사공장 여공들은 전쟁 중에도 밥을 지어 주먹밥을 쌌 고 청년단이 날랐다. 국민학교 교사부터 농장 직원까지, 춘천 은 말 그대로 ‘도시 전체가 전투에 나선’ 곳이었다. 결국 시민 들의 참여 덕분에 춘천은 점령되지 않은 몇 안되는 도시로 남 을 수 있었다.



춘천대첩은 군과 경찰, 학생, 여공과 시민이 하나가 되어 거둔 세계 전쟁사에 남을 큰 승리였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춘천정신’은 바로 그 연대에 있다



춘천시는 후손에게 기억을 남기기 위해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 을 근화동 수변에 조성했다. 이번에 설치된 기념탑은 단순한 구 조물이 아니라, 기억과 사색을 품은 공간으로 설계됐다. 기념탑 의 명칭은 ‘충혼의 빛’이다.


M3 105mm 경곡사포 포신을 현대적 조형으로 형상화했으며, 화강암, 고흥암, 브론즈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해, 금은 빛의 효 과를 나타낸다.


‘달아오른 포신에 물을 끼얹으며, 애국의 포탄을 쏘아올린 춘천 의 영웅들’이라는 주제를 담았다. ‘6.25 참전유공자 기념탑’은 꺾이지 않는 춘천의 충혼과 고귀한 희생으로 지켜낸 대한민국 의 위엄을 드러낸다.


주탑 아래에는 육‧해‧공군, 그리고 국군을 도운 학생과 청년방 위군, 경찰, 민간인들의 전투의 순간을 생생히 재현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포탄을 옮기는 노무자, 주먹밥을 헝겊에 싸는 여 공, 포탄을 끌어안고 달리는 10대 학도병. 그 장면들은 마치 ‘움 직이는 박물관’처럼 살아있다.


춘천대첩의 역사와 영웅이 새겨진 벽 <메모리얼>



춘천시는 이번 기념탑 건립을 ‘과거를 기리는 것’에 그치지 않 고, ‘기억의 일상화’를 목표로 삼았다. 진원기 시 복지정책과장 은 “호국 보훈의 의미를 한 달간 떠올리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라며 “특히 젊은 세대가 보훈을 과거 이야기로 치부하지 않고, 오늘 의 삶과 연결된 가치로 이해하도록 교육기관과도 협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춘천대첩은 결코 오래된 전쟁 이야기만은 아니다.

75년 전, 누군가는 포탄을 지게에 지고 옮겼고, 누군가는 밥을 지어 보냈으며, 누군가는 그 모든 걸 지켜보며 하루를 살았다. 그렇게 지켜낸 도시가 바로 춘천이다. 오늘 우리는 그 도시에서 걷고, 배우고, 살아간다. 기념탑은 말없이 서 있지만, 조용히 우 리에게 묻는다.


“이제는 당신이 기억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