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미래가 없는 발명품이다.”
지금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남긴 이는 놀랍게도 최초의 영화를 만든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다. 그로부터 130여 년이 흐른 지금, 극장이 아닌 집에서 혼자 영화를 감상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현실보다 더한 현실’을 재현하는 시각특수효과는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 뤼미에르 형제는 지금의 OTT 세상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팬데믹을 거치며 K-콘텐츠의 경쟁력은 더욱 강화되었다. 하지만 대기업 위주의 산업기반, 부족한 공공 인프라와 기술적·인적 자원은 여전히 한계로 꼽힌다. 춘천시는 이 미래의 영상산업에 주목했다. 그리고 20년간 비어 있던 기회의 땅, 캠프페이지를 ‘미래 영상산업의 메카’로 채워나가기 위한 힘찬 발걸음을 시작했다.
애니메이션 도시에서 영상콘텐츠산업 메카로
2002년 겨울연가의 촬영지 춘천은 드라마의 도시였다. 수많은 해외 관광객이 남이섬, 명동 등 촬영지를 찾으며 한류의 중심지로 부상浮上했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춘천의 아름다운 명소를 담아냈다. 드라마와 영화 위주의 영상산업이 발달하던 1990년대 후반부터 춘천시는 애니메이션과 영상산업에 관심을 가졌다. 2003년 10월에는 서면 현암리에 우리나라 유일한 애니메이션 박물관이 개관했다.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전시하고 음향효과/더빙 제작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시설로, 벌써 5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았다.
2010년대 들어 뉴미디어 중심으로 영상산업이 개편되면서, 보다 체계적 육성 전략이 필요해졌다. 춘천시는 2019년 8월 영상산업지원센터를 설립하여 콘텐츠 기획과 제작까지 산업 전반을 아우르게 되었다. 센터가 지금까지 제작 지원한 영화, 드라마 등 콘텐츠는 100편 이상, 지원작의 누적 관람객 수는 5,000만 명, 지역 소비액은 50억 원 이상이다.
미래 영상인을 육성하기 위한 교육과 대중화에도 힘썼다. 시민과 함께하는 ‘춘천영화제’는 올해로 12회를 맞이하였고, 매년 6월부터 10월까지 추진되는 ‘시네파크’는 아름다운 호수광경과 함께 온 가족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여가餘暇로 정착했다. 산업기반을 바탕으로 인재들도 자라났다. 춘천에 소재한 IT 기업은 어느덧 800여 개. 대한민국 영상산업의 미래가 춘천에서 성장하고 있다.
춘천은 왜 VFX 산업에 주목했을까?
영화 '기차의 도착'(1985)
최초의 대중영화인 「기차의 도착(1895)」이 상영될 때, 영화 속에서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를 보고 관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영상기술의 발전은 실제의 구현에 그치지 않았고, 상상을 현실처럼 만드는 것에 이르렀다.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에서는, 자폐스펙트럼이 있는 천재 변호사 우영우가 무언가 영감을 받거나 사건을 해결할 때마다 나타나는 장면이 있었다. 바로 하늘을 바다처럼 헤엄치는 고래들이다. 이렇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시각적 효과로 구현해 내는 모든 형태의 작업을 VFX라 한다.
VFX(Visual Effects)는 영화를 제작할 때 사용되는 시각 효과에서 시작해서 모든 형태의 특수효과를 뜻하는 말이다. 실사 촬영이 어려운 영상을 이미지 변경, 생성 또는 합성을 통해 사실적인 캐릭터 및 환경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영화 제작의 후반 작업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관객의 몰입도를 높여주고 극한의 재미를 선사하는 작업으로 영화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할 정도다. 대규모 장비와 인원이 동원되지 않아도 되기에 제작비용도 절감된다. 범죄도시4(2024), 베테랑2(2024), 화란(2023), 빈센조(2021) 등 대부분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앞으로는 스크린을 넘어 인공지능(AI)과 메타버스 기술과 결합하여 게임, 공연 등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형태의 영상산업으로 확장해 나갈 것이다.
춘천은 영상산업의 미래 가능성과 정책 동향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20년간 쌓아온 영상산업 인프라와, 문화와 IT 기술 등 첨단산업 역량을 결집하면 VFX 산업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내 영상콘텐츠 산업 규모는 2021년 기준 28조 원, 수출 규모는 9억 2000만 달러였다. 넷플릭스, 디즈니 등 글로벌 기업의 K-콘텐츠 투자로 2027년에는 산업 규모가 40조 원, 수출 규모를 18억 달러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넷플릭스, 왓챠, 디즈니플러스,쿠팡플레이 등 OTT를 기반으로 영상산업이 확장되고 있다.
부가가치와 투자 대비 생산 유발효과가 높아 지역 경제에 미칠 영향도 크다. 강원대학교, 한림대학교 등에서 배출한 다수의 영상 전공 인재를 포함한 미래 청년의 일자리도 책임질 수 있다. 춘천시가 미래 전략산업으로 VFX에 주목하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아시아 최대 콘텐츠 클러스터 구축한다
춘천시는 VFX 산업의 육성을 위하여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20년간 비어 있던 캠프페이지에 도시재생혁신지구를 조성하고, 아시아 최대 콘텐츠 클러스터를 구축한다.
VFX 기업, 모터헤드(MORTARHEADD)의 시각특수효과 작업 모습
도시재생혁신지구 조성은 옛 캠프페이지를 미래세대를 위한 활력 넘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사업이다. VFX로 대표되는 영상산업이 중심이 되는 K-컬처 특화 지구로 춘천의 미래 성장동력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춘천은 수도권에서 가깝고, 수려한 자연환경과 문화자원이 풍부한 도시로 VFX 산업을 발전시키기에 매우 좋은 조건으로 평가받는다. 향후 조성될 콘텐츠 클러스터는 촬영, 편집, 특수효과(VFX) 작업까지 가능한 원스톱 제작 환경을 제공하며,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성장 흐름에 발맞추어 K-콘텐츠 중심지로 도약하려는 춘천의 비전을 담고 있다.
그 신호탄으로, 춘천시는 국내·외 VFX 기업들과 시너지 창출 기반을 마련했다. 지난해 11월에는 국내 VFX 기업 ‘M83’과 업무협약을, 지난 1월 25일에는 노르웨이의 VFX스튜디오 ‘김프빌(GIMPVILLE)’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넷플릭스 라 팔마(La Palma), 트롤의 습격(Troll), 국내영화 더문, 무빙 등의 제작에 참여한 굴지의 기업이다. 춘천시는 이들 기업과 영상산업 발전 및 VFX 산업 육성을 위한 교육사업 등에 협력하기로 했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영화 ‘스위트홈’의 촬영 장면과 VFX 적용 스틸컷
2024.11.4. 강원대학교 6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춘천 VFX, AI 산업 붐업 행사 < 어서와! VFX는 처음이지? >
전문가 의견도 청취했다. 지난해 7월‘영화 도시 춘천, VFX 산업의 길을 열다’라는 미래 비전을 선포하고, 관련 전문가들과 미래 발전을 위한 의견을 공유했다. 2월 10일 서울 마포구 M83 본사에서 열린 간담회에는 지역 영상기업과 강원애니고 등 학계관계자가 참석하여 교육과 산업 연계한 일자리 창출 방안을 모색했다. 춘천이 VFX 산업의 허브로 성장할 무한한 잠재력이 있음을 확인한 자리였다.
연간 100명의 VFX 전문인력 육성에도 힘쓴다. 강원대학교 VFX 관련 학과 신설과 더불어 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사업, K-디지털트레이닝 등 공모사업을 통해 고등학생부터 일반인까지 전 시민 대상의 교육과정을 확대한다. 외국인 유학생을 전문인재로 육성하여 글로벌 경쟁력도 강화할 계획이다.
춘천시영상산업지원센터는 영상산업 인프라 구축을 위한 거버넌스 운영, VFX산업 붐업을 위한 포럼 기술 마켓, 전문인력 양성 VFX 아카데미 등으로 영상산업 생태계 조성의 마중물을 삼을 계획이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도시’ 춘천의 밑그림은 이미 20여 년 전 영상산업의 첫 삽을 뜬 순간 그려졌다. VFX를 기반으로 춘천의 영상산업은 새로운 국면 전환을 맞이할 것이며, 도시재생혁신지구는 춘천의 첨단지식산업과 수준 높은 문화의 집약체가 될 것이다. 싱가포르의 미디어폴리스(Mediapolis), 말레이시아의 멀티미디어 슈퍼 코리도(MSC), 홍콩의 사이버포트(Cyberport)와 함께 글로벌 콘텐츠 허브로 자리 잡게 될 춘천의 위상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