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초고령화 사회와 지역 소멸 위기를 말하는 시대. 하지만 여전히 농촌으로 향하는 청년들이 있다. 농부가 되기로 결심한 청년들은 왜 춘천을 선택했을까? 그리고 어떤 일상을 가꾸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까? 옴팡지게 본업 잘하는 새내기 청년농부 권오현 씨의 스마트팜 포포렛 딸기농장을 찾아가 보았다.
“농장이라기 보다 정원 같아요”
지난 2월 16일 시내에서 20분가량 차를 타고 신북읍 율문리에 도착했다. 청년농부 권오현(41) 씨가 운영하는 스마트팜 포포렛 딸기농장이 위치한 곳이다. 초보 농부가 운영하는 몇 동의 작은 비닐하우스를 예상했지만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스마트팜 규모에 입이 떡 벌어졌다. 은행 금고처럼 단단해 보이는 은빛 문을 열고 들어서자 권오현 씨가 환하게 맞아주었다. 실내는 놀라울 정도로 단정했다. 모든 사물이 제자리를 찾은 듯 정돈된 공간을 보며 ‘이 농부, 성격이 장난 아니겠군’ 하고 생각했다. 첫 마디를 건넸다. “농장이라기보다 정원 같아요.”
그는 ‘농장 치고 깨끗하다’는 말이 싫다며, 동선을 고려해 직접 농장 디자인을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100여 곳의 농장을 견학했는데, 깨끗한 곳은 모두 농장주가 ‘그날의 일과에 청소를포함하라’고 강조하더라고요.” 참고로 포포렛 딸기농장의 화장실에는 인테리어 타일과 수전이 설치되어 있었고, 온실 곳곳에 디자인 조명이, 심지어 안마의자도 있었다
화성에서 온 남자, 청년농업인 권오현
권오현 씨가 처음 농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5~6년 전, 경기도 화성에서 스마트팜을 운영하던 어머니를 도우면서였다. 당시 그는 은퇴 자금을 모두 투자하며 농사에 매진하는 어머니를 극구 반대했다.
“제 전공이 세법과 재무회계였어요. 서류 작업을 돕고, 교육도 대신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농업 정책을 접하게 되었죠. 농장의 현금 흐름과 매출 구조를 분석하다 보니 점차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하지만 그의 진로를 결정짓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내의 이직 기간 동안 다녀온 유럽 여행이었다.
“’하고 싶고, 좋아하던 것들을 못 하고 지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막연히 생각해오던 농업이 진지하게 다가왔고, ‘농한기’라는 기간이 마치 긴 휴가처럼 보이기 시작했어요.”물론 농업에 뛰어드는 결정을 쉽게 내린 것은 아니었다. 산업으로서의 농업의 가치, 평생 직장으로서의 경제성 등 다양한 가능성을 신중히 고민했다. 또한, 농업 경험이 없던 어머니의 “시행착오를 보며 철저한 준비의 필요성도 절실히 느꼈다.
농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니, 한 달을 쉬겠다는 ‘초심’을 점점 잃고 있는 것 같아요.”
3월, 포포렛에서 자란 설향딸기가 첫 출하된다.
지금까지 깨끗했고앞으로도 깨끗할 유일한 도시
그가 춘천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작목을 딸기로 정해놨기 때문에 로컬푸드와 급식 시장을 고려해야 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소비 인구와 지역 농가 비율도 중요한 요소였다. 그는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전국 도시를 비교하고, 로컬푸드 매장의 위치까지 확인했다. 춘천과 비슷한 조건의 소도시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덜 발전한 수도권 변두리 느낌이었다.
반면 춘천은 강원특별자치도의 중심도시로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수도권과 동해안을 아우르는 지리적 접근성,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돋보였다. 또한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환경적으로도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강원특별자치도의 여러 지역을 조사해보니 과거에 시멘트 공장이 많았던 곳도 있더라고요. 관광지로 깔끔해 보이는 곳이 꼭 거주하기 좋은 곳은 아니었어요. 춘천은 지금까지 깨끗했고, 앞으로도 깨끗할 유일한 도시라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농사짓고 싶었습니다.”
스마트팜 3억 원 지원, 전국 최고 수준청년 농업인에게 기회의 땅, 춘천
2023년, 귀농을 결심한 그는 춘천시 청년후계농으로 선정되었다. 이후 2년 동안 농업 공부에 전념하며, 강원특별자치도 미래농업대학, 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에서 교육을 받았다. 부지를 찾기 위해 100번 넘게 발품을 팔았고, 마침내 원하는 조건의 땅을 찾았다. 하지만 시설 설치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계속되는 변수와 고비 속에서 포기를 고민하던 그를 붙잡아 준 것은 다름 아닌 춘천시의 스마트팜 지원사업이었다.
“우연히 시 홈페이지에서 육동한 시장님의 공약실천계획서를 봤는데, 스마트 시설 원예 생산기반 조성 사업이 눈에 띄었어요.” 춘천시는 전국 최초로 3억 원 규모의 스마트팜 지원사업을 펼쳤다. “이 사업을 다른 지역 청년들에게 이야기하면 다들 놀라며 부러워해요. 춘천은 청년 농업인에게 기회의 도시에요.”
재배에 관련된 모든 요소를 한눈에 파악하고, 센서, 급배액 등을 제어할 수 있도록 꼼꼼하게 세팅된 프로그램
온습도, 함수율 체크 등 농장에서의 하루는 PC앞에서 시작된다
청년 농부들의 로컬 커뮤니티 4-H의 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깨닫고 난 후 부족한 농업 지식을 채워나갔고,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결과를 끊임없이 비교‧공부 후에 선택한 권오현 씨의 춘천 귀농은 그야말로 완벽해 보였다. 그에게 더 필요한 것이 있었을까.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커뮤니티’라고 답했다. “농업이야 말로 혼자 할 수 없는 분야에요. 내가 농사를 짓는 사람이라고 농업기술센터 공무원, 동네 이장님, 주변 농부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결국 지치게 돼 있거든요.” 그는 2023년 8월 ‘춘천시4-H연합회’에 가입했다. 춘천에 온지 5개월만이었다. 4에이치는 ‘지(Head),덕(Heart),노(Hands),체(Health)’를 기본이념으로 하며 회원들 간의 정보 교환이 이루어지는 청년커뮤니티다. 춘천에 아무런 연고 없이 춘천에 왔던 권 대표가 무리 없이 어울릴 수 있었던 것도 단체의 역할이 크다. 검색해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로컬 농부들만의 정보는 이 모임에서 얻었다고 했다.
“흔히 땅을 알아보려면 그 동네 이장님을 찾아가라고 하는데, 그게 참 어렵더라. 여기저기서 ‘다 내가 아는 어른이다’ ‘내가 아는 업체다’ 앞다투어 소개해주는데 고마운 일이죠.”실제로 농사짓는 동료들끼리 모이니 얘기가 잘 통하고 ‘어디 납품하면 좋더라’는 귀한 정보도 나눈다. 작목이 겹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아낌없이 정보를 공유해줄 수 있을까 물었더니 “젊은 사람들이 같이 농사지으며 외롭지 않게 서로 오랫동안 함께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함께 잘 돼야 한다는 믿음이 있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마인드가 좋아서 제가 많이 배워요.”라며 웃었다. 그는 춘천 4-H연합회원들과 월간 회의, 과제포(공동농사) 등을 통해 꾸준히 친목을 다지고 있다.
춘천시 4-H연합회 공동과제포 수확 현장에서 고구마 캐는 청년들
스마트팜의 좋은 선례로 남고 싶어
그는 후배 창업자들의 사업계획서를 자주 검토해준다. “ 정착할 지역을 알아볼 때, 후보 지역의 시청 홈페이지에서 지난 4~5년간의 지원사업 서류를 전부 다운받아 읽었어요. 특히 춘천시의 농업 관련 공고는 빠짐 없이 살펴봤고, 채점기준표에 맞춰 미리 작성해 봤어요. 모든 서류를 미리 써놨고 날짜가 뜨면 제출했어요. 셀프 심사까지 했죠.” 얼마나 치열하게 준비했을지 짧은 대화 중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권오현 씨를 통해 청년농업의 가능성과 미래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목표는 단순하다. 첫째, 전문가로 인정받는 농업인이 되는 것. 둘째,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 농장을 만드는 것. 셋째, 후배 농업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살아보니 춘천은 정말 따뜻한 도시더라고요. 더 많은 청년들이 춘천에 정착할 수 있도록 좋은 선례가 되겠습니다.”
춘천시의 귀농·귀촌·청년농업정책 및 지원
춘천시는 청년 농업인 정착을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청년 후계농 육성 사업, 스마트팜 지원사업, 창업농 지원프로그램 등이 있다. 또한 청년농업인을 위한 영농 정착 지원금과 농업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청년 농부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돕고 있다. 특히, 4-H연합회를 중심으로 한 농업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해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행정안전부 고향올래사업의 일환인 ‘두 지역 살아보기’를 통해 귀농‧귀촌을 경험해 보고 싶은 타 지역 사람들을 불러모을 예정이다. 도시 거주자가 정기적으로 여가, 농촌체험 등을 목적으로 춘천에 체류하며 추가적인 생활 거점을 갖도록 지원해주는 사업으로, 춘천시 남산면 산수1리 옛 통곡분교장일원에 도시민거주공간(5동), 개별텃밭 등이 조성중이다.올 상반기에 입주예정이다.산수1리마을은 남춘천IC에서 10여분의 근접거리에 위치하여 자작나무숲 산책로, 콘골폭포 등 수려한 자연경관과 넉넉한 시골인심을 갖춘 곳으로 일년이상 입주를 희망할 경우 산수1리 마을 사무장에게 연락하면 상담가능하다(☎010-3942-4206). 홍미순 농업정책과장은 “권오현 씨처럼 춘천에 정착하는 청년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