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추위 사이로 설핏 봄기운이 새어들 것 같은 2월입니다.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한참이지만 새봄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작되는 곳이 있어요. 학교는 봄과 함께 한 해를 시작하는 꽤 낭만적인 곳이지요.
학교의 2월은 한 해 준비로 바쁘게 돌아가는데요. 학생, 학부모님의 2월은 어떤가요? 새 학기를 맞이하는 설렘과 걱정이 함께하지요? 아니, 기대보다는 염려와 고민이 더 클 것 같습니다. 단짝 친구와 헤어지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과정은 사실 큰 스트레스지요. 새로운 반 친구들, 선생님과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하고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에 대한 압박과 진로 고민도 클 거예요. 배워야 할 과목은 늘어나고 내용도 점점 어려워지고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을 앞두고 있다면 더 캄캄하지요.
저는 지난해 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야무진 기대를 품고 떠났지만 새로운 나라에 가는 건 매번 두려웠어요. 언어나 문화가 다른 건 둘째치고 버스나 기차를 어떻게 잡아타고 이동해야 하는지, 환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투성이였지요. 소매치기나 사기를 당할까봐 전전긍긍했고요. 그곳에 왜 가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 의미를 찾느라 고독한 시간에 빠질 때도 많았습니다. 적응이 느리고 불안이 큰 제게 여행은 모험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항상 방법이 생기더군요. 예매 시스템이 없는 스리랑카에서는 정류장으로 가 목적지를 외치면 누군가 버스를 안내해주었고요. 낑낑 큰 캐리어를 끌고 급한 내리막 앞에서 망연해 있던 튀르키예에서는 흔쾌히 차를 세우고 도와준 청년도 있었습니다. 마음속 안개를 걷어내고 바라본 세상은 다 사람 사는 동네였습니다. 여행지가 마음에 들면 며칠 더 묵기도 했고, 현지인의 추천에 따라 수시로 일정이 바뀌기도 했어요. 미리 하는 걱정과 고민은 별 소용이 없더군요. 어쩌면 미리 공부한다며 봐둔 유튜브 영상이 그 나라에 대한 편견만 심어주었던 것 같아요. 세상은 스마트폰 바깥에 있었고, 직접 맞닥뜨린 여행은 편견을 깨는 여정이었습니다.
학교의 일 년도 그렇겠지요. 누구를 만날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우리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막상 학기가 시작되면 유쾌한 사람들과 즐거운 일들이 찾아올 거예요. 새 학기 첫날은 아직 풀리지 않은 날씨처럼 차갑고 어색하지만, 일주일만 지나면 시끌벅적 친구가 된 아이들을 봅니다. 친구를 만드는 능력은 아이들이 어른보다 훨씬 낫다니까요.
사람보다 똑똑한 AI가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시대, 학교란 왜 필요할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학교는 친구를 만드는 공간인 것 같습니다. 몰랐던 사람에게 말을 걸고 친해지고 그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 나를 드러내고 이해시키며 갈등과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 만나고 헤어지며 마음을 주고받는 시간들. 알고리즘이 각자의 세계를 단단하게 구성해가는 세상에서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이 공간이 얼마나 소중한지요. 우리는 또 울고 웃고, 화내고 기뻐하고, 미워하고 좋아하며 일 년을 보내겠지요. 그 길에서 우리는 분명 함께 배우고 성장할 거예요.
여행을 통해 어떤 길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은 얼마나 절망적일까요. 매년 새봄은 돌아오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우리는 해마다 이맘때면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출발선에 섭니다. 마치 모르는 세상을 여행하는 마음으로요.
‘학창 시절’이라는 말에는 ‘창문 창(窓)’을 씁니다. 배움을 통해 자신만의 창문을 만드는 시간이란 뜻이겠지요. 아이들은 그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민주시민으로 자라납니다. 친구들과 함께 동그랗고, 네모난 창문을 만들 그 신나는 시간이 곧 시작됩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우리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