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원창고개는 남쪽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나는 해발 330m인 원창고개를 넘는다. 이 고개는 대룡산과 금병산을 반으로 가르는 기점이다. 춘천에서 바라보면 왼쪽이 대룡산이고 오른쪽이 금병산이다. 능선과 봉우리는 침묵하지만 무언가 꿈틀거리는 모습이다. 하늘과 능선의 경계선이 아주 뚜렷하다.
사실 이 둘의 이름은 서로 달리 부르는 것일 뿐, 산은 한 줄기 맥으로 통해져 있다.
너무나 하늘이 새파랗다. 위태로울 지경이다. 구름 한 점 없는 원창고개의 하늘은 서슬이 시퍼렇게 날이 선 듯하다. 쨍쨍한 겨울의 한기가 무슨 분노의 목소리를 담았다는 것일까. 왠지 파도치듯 가슴을 친다.
무얼까.
나는 고개 넘어 원창저수지를 오른다. 오른쪽으로 원창마을이 오후의 햇살을 한 몸에 듬뿍 받고 있다. 적요하고 눈부신 마을이다.
갈색의 낙엽송과 소나무의 푸름, 그리고 참나무의 울울한 알몸들 사이를 거슬러 오른다. 이윽고 전망대에 다다른다.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들이 저수지에 모인다. 저쪽 물의 원천이 숨겨져 있는 계곡들은 깊고 그늘지고 신비스럽다.
원창저수지는 주변의 능선들과 하늘을 머금고 있다.
가운데 취수탑이 저수지 바닥에 뿌리박은 채 백랍처럼 빛난다. 때마침 나들이 나온 두 분을 만난다.
아주 깊어요, 이 물이.
얼마나...
그저... 깊어요. 깔딱 메기(산메기의 지방어), 붕어, 뭐뭐 참 많아요. 낚시꾼도 종종 와요.
우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 저수지의 물길이 삼포내이다.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다 보면 물은 다른 계곡물들과 어울려 삼포마을을 구비 구비 돌아 북한강으로 들어간다.
이제 나는 삼포로 가는 내를 따라 가려한다.
삼포.
나는 70년대 황석영의 소설 <삼포 가는 길>을 아득히 읽은 적이 있다. 아득히, 란 말속엔 삼포가 떠돌이 인생들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삼포란 그들의 가야 할 고향이고, 저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외딴섬이고, 결국 그들이 닿을 수 없는 상실의 고향이다.
삼포란 지명은 우리나라에 여러 곳에 존재한다. 대개는 육지 안의 강마을인데, 춘천과 가까운 곳 홍천에도 삼포마을이 있다.
어릴 적 나는 ‘삼포어른’을 기억한다. 그분은 일 년에 한 번 증조부의 제삿날 찾아오시곤 했다. 나는 삼포란 말이 왠지 특이하여 ‘삼포어른’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삼포를, 소설 속의 삼포이든, 삼포어른의 삼포이든, 내가 가고자 하는 마을인 삼포이든, 나는 삼포내를 따라 물 흐르듯 흘러가고 싶었다.
원창마을 다리를 건넌다. 다리 밑 갈대 수풀 사이로 삼포내가 흐른다.
삼포마을 가는길
인테리어 조형물
야트막한 동산을 등진 마을은 텅 빈 논을 앞에 놓고 하늘 물속에 잠긴 양 고적하기만 하다.
마을 앞 옛길을 끼고 인테리어 조형물들이 오밀조밀 널려 있다. 어림잡아 수만 점은 넘을 듯싶다. 요소요소에 제가끔 다른 모습으로 배치되어 있는 장면이 마치 예술의 도시인 동화의 나라에 온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인기척 하나 없다. 주인도 없고 물건을 파는 사람도 없다. 단지 어디로 팔려나갈지 모를 조형물들만이 나를 맞이할 뿐이다.
바이올린 연주자, 소 타고 피리 부는 하동, 어린 동자승, 사자, 곰, 태권V, 지붕 위의 고릴라, 춤추는 돌상어들, 용과 치우천왕, 토끼토끼 순경, 복돼지, 청개구리 가족, 바닷가재, 거북이 등등 수천 종의 도시민들이 저마다 모두 주인인 모양이다.
이들과 멀리하고 삼포내는 살금살금 조용히 흐른다. 나도 그렇게 조금씩 흘러가야 한다. 오래된 새술막막국수집을 돌아 나가면 보건소가 보이고 그 옆에 전인고등학교가 보인다. 구암마을이다. 왼편으로 인삼밭이 있고, 금병산 기슭 쪽으로 구암갤러리가 있다. 구암마을은 목장이 여러 군데 있다. 구암교 옆에 방역상 출입금지라 쓰인 안내판이 풍우에 씻기고 햇빛에 바래어 글자가 희미하다.
이 마을을 지나면 인적이 드문 길이다. 깊은 곳에 요양원이 숨어있고, 이름 모를 건물 두어 채를 만날 수 있을 뿐이다. 겨울산은 활짝 가슴을 열어젖혔건만, 계곡 길은 길고 고요하고 외롭다. 계곡물은 그렇게 몸을 낮추어서 숨을 죽인 채 삼포로 흘러간다.
나는 삼포에 닿아 잠시 망설인다. 내가 만나야 할 분이 삼포에 있다. 그분은 글을 쓰는 사람. 40여 년 전에 한번 뵙고 오래 못 본 분이다.
40년 전의 삼포를 회상하려니 그저 아련할 따름이다.
무인카페 앞 삼포천
내는 넓었고, 수량이 풍족하여 물고기와 골뱅이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삼포는 금병마을을 지나 왼쪽으로 꺾어져야 만날 수 있는 숨겨진 마을이다. 그 마을을 나는 오래오래 잊고 살았다.
나는 얼마 전 <춘천수필> 속에 실린 목서윤 님의 글을 읽었다. ‘고야가 익는 마을’이란 제목의 글이다.
목서윤 수필가의 글은 간결하나 상큼한 고야 맛이 났다.
“우리 텃밭 둑방에는 고야나무가 세 그루나 있어요.”
글은 마치 아이가 그린 수채화처럼 천진스럽다.
나는 40년이 흐른 세월의 목서윤 수필가를 만났다. 그니의 부군이 건축한 ‘무인카페’는 사실 동네 사랑방이나 다름없다. 동네 나이 드신 분들은 물론 멀리 소문을 듣고 찾아온 손님들이 이따금 삼포 냇가 앞의 ‘무인카페’를 찾아든다. 간판도 없고 주인도 없는 그야말로 무인카페이다.
누구나 커피머신에서 자동으로 내려 마실 수 있다. 값은 묻지 마시라. 싸다고 홀대 마시라. 커피 맛은 깊고도 아늑하다. 그만큼 훌륭한 맛이란 뜻이다.
동네 어른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조용하고 정겹고 포근한 겨울날이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분마다 인사를 한다. 모르는 이라도 친절하게 예의를 갖춘다.
이곳은 남녀노소 다 친구이다.
목서윤 님은 자주 이곳에 들러 실내 관리를 한 다음, 바깥을 내다보며 글을 쓴다. 요즘 오후엔 근처 금병초등학교에 가서 아이들과 글짓기도 하고 재미난 놀이도 한다. 이십여 년 동안 어린이집 원장을 한 덕분에 모두 목서윤 님을 잘 따르고 좋아들 한다.
카페 밖 풍경은 벌써 그늘이 졌다. 내에 살얼음이 살짝 끼기 시작했고, 방금 두루미 한 마리가 창공을 누비며 삼포천을 스쳐 날아가고 있다.
네이버 지도엔 분명히 나와 있지만, 저마다 숨기고 싶은 장소로 비밀히 간직할 수 있다. 이런 곳에서 정다운 사람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목서윤 수필가
고야나무
나는 카페를 나와 목서윤 님과 ‘고야가 익는 마을’로 간다. 무인카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거기 잘 전지 된 고야나무 세 그루를 만났다. 박수근 그림 같은 겨울나무이다. 목서윤 님은 손주들과 고야를 따서 한입 물고 씨앗을 퉤퉤 내뱉던 여름날을 회상한다.
여기 우리나라 최초의 마임이스트인 유진규 님이 서울에서 내려와 소를 키우던 곳이 있다고 한다. 목서윤 님은 그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왼다.
유진규 마임이스트의 집터엔 장독대가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다. 소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싶다. 정지용의 시 ‘향수’가 떠오른다.
마을은 멀리 산등성이만 환하고, 그 아래쪽 마을은 그늘이 드리웠다.
어느 집에선가 저녁연기가 푸르게 솟는다.
이제 삼포는 저무는 날이다. 곧 겨울 하늘에 별이 뜰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고향이 그리웁다.
- 실개천이 돌아나가는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최돈선 시인. 춘천시 둘레엔 1개 읍, 9개 면이 있다. 나는 그곳이 궁금하다. 그 고요한 곳에 현자는 있을 것이다. 당산목 같은 우직한 당신의 사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