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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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08

2025-01
#봄내인터뷰
헌혈왕 이순만
금과 은은 없어도 젊은 피 내게 있노라








다른 이의 생명을 살리고자 주저없이 자신의 피를 나누는 사람, 그 횟수가 일반인의 생각을 뛰어넘는 사람. 헌혈천사 혹은 헌혈왕이라고 부른다. 춘천의 헌혈왕 이순만 씨를 춘천명동 헌혈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최근 적십자 헌혈 레드카펫이라 불리는 ‘명예의 전당’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45년간 헌혈한 횟수가 743회에 달한다. ‘나에게 헌혈은 마냥 좋은 것, 평생 없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하는 그를 만나 헌혈을 실천하는 이유를 들어봤다.


743회 피를 나눈 헌혈왕 이순만

“어서오세요”

지난 12월 15일 헌혈의 집 춘천 명동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노란 조끼를 입은 중년의 남성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왔다. 이곳은 이순만 씨가 28년간 매 주말 빠짐없이 봉사활동을 하는 곳이다.

올해 만 66세인 그는 온종일 입구에 서서 헌혈자 에스코트를 한다. 음료와 과자 상자를 나르고 정리, 헌혈을 마친 고객들에게 간식과 선물을 전달하는 등 센터의 크고 작은 일을 도맡고 있다.

헌혈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곳은 복덕방 같은 곳이다. 이씨와 한동안 알고 지낸 헌혈자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정선 출신인 그는 1990년 춘천에 정착해 현재까지 굴지의 건축사사무소에서 감리일을 하며 헌혈과 봉사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사람을 살린 경험이 ‘헌혈 인생’ 살게 해줘

이 씨가 첫 헌혈을 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다. 1976년 학교 단체 헌혈을 통해서다. 당시 친구들이 헌혈 후 어지러움을 호소한 것에 비교해 그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헌혈을 하게 된 것은 1980년대 정선 경동탄광에서 근무하던 때다. 당시 이씨의 동료는 석탄 운반기계 보수작업을 하던 도중 크게 다쳐 응급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혈액이 모자란 상황이었다. 이씨는 “사고 당시 O형 혈액이 절실히 필요했다. 때마침 내 피가 O형이라 동료에게 피를 나눠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가 한참 지난 뒤 헌혈해 준 동료의 부인이 찾아와 ‘남편을 살려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때 일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일을 계기로 ‘한 사람의 헌혈로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주말이면 ‘헌혈의집 춘천 명동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이라크 건설현장에서 근무하던 1988년에는 한국인이 교통사고를 당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한걸음에 병원에 달려가 피를 나눴다. 이역만리에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던 동료는 그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다. 그는 “6년 동안 이라크 근무를 할 당시 헌혈을 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라고 말했다. 귀국 후 그는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헌혈 봉사에 뛰어들었다.


*이 순 만: 1958년생 정선 출신. 1990년 춘천에 정착해 현재까지 ㈜산 E&C 건축사사무소 상무로 재직중이다. 2024년 12월 기준 헌혈 743회를 달성, 전국에서 세 번째다. 적십자방울봉사회, 춘천의용소방대, 춘천연탄은행 등 여러 사회활동을 하며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주말마다 헌혈의집 춘천명동센터에서 헌혈자 에스코트로 활약 중이다. 대통령 국민포장을 비롯해 현재까지 38개의 표창장을 받았다.


헌혈 100회 기념 축하 파티


헌혈 위해 건강관리, 술담배는 입에 대 본적 없어

성분헌혈* 이 도입된 1995년 부터는 2주에 한 번, 1년에 24회를 헌혈했다. 700회 넘는 헌혈을 하는데 자그마치 40년이 넘게 걸렸다. 헌혈을 위해 술과 담배는 입에 대지도 않을 정도로 건강관리에도 소홀함이 없다.

이씨는 평소 ‘걷기’와 ‘식단관리’를 통해 건강을 관리한다. 그는 “헌혈을 잘하고 싶어서 체중관리를 한다”며 “매일 점심 먹고 5,000보 걷기, 집에서는 근력운동, 건강한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한 결과 늘 85kg을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성분헌혈: 성분채집기를 이용해 혈액 내 특정 성분(혈소판, 혈장)만을 채혈하고, 나머지 성분은 헌혈자에게 되돌려주는 헌혈. 혈액의 회복기간이 가장 긴 적혈구를 되돌려줌으로써 헌혈자의 신체적 부담을 덜어준다.


봉사시간만 2만 시간 가까이

헌혈만 하는 게 아니다. 불우이웃돕기, 연탄배달봉사, 장애인 대상 봉사활동, 환경보호 활동 등 이웃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누적 봉사시간만 2만 시간을 바라본다.

‘방울봉사회’도 이끌고 있다. ‘피 한 방울이 세상을 사랑으로 채울 수 있다’는 뜻을 담아 1992년 출범한 헌혈 봉사 모임이다. 20여명의 구성원은 지속해서 헌혈 캠페인을 펼치고, 꼬박꼬박 모은 헌혈증서를 백혈병 환자들에게 전달한다. 이씨와 방울봉사회를 이끄는 원동력은 증서를 건넬 때마다 환자와 가족에게 듣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다.

이씨는 헌혈한 뒤에 받는 영화관람권, 주유권 등 소소한 사은품들도 모아 다른 이들에게 선물한다. 그에게 오랜 세월 꾸준한 봉사를 할 수 있는 비결을 묻자 “5살 때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면서 집안이 어려웠는데 어릴 때부터 이웃, 친척들과 도움을 주고받았던 경험이 몸에 습관처럼 배어있던 게 아닐까”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위)현대건설 이라크 현장에서 현지 동료들과 함께하는 모습 (아래)춘천연탄은행 봉사 활동






가족몰래 시작한 헌혈, 해외여행도 안 가

가족들도 모르게 헌혈을 했다.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이 싫어서였다. 철저히 비밀에 부쳤지만, 헌혈이 100회에 달했을 무렵 가족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그의 아내는 ‘열심히 먹여 놓으면 바로 헌혈하러 달려가니 먹인 공이 아깝다’며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고. 누구보다 딸은 아빠가 헌혈을 자주하는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몸이 망가지는 것보다 몸 상태가 안 좋아져 헌혈을 하지 못할까 되려 걱정을 한다.

“왜 그렇게 많이 하냐, 놀랍고 좀 이상하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죠. 헌혈 하러 가는 날 아침엔 긴장이 돼요. 급한 출장이 생길까, 몸상태 때문에 혹시 오늘은 안된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되죠. 중독 맞아요. 남을 살리는 중독이에요”

이씨는 헌혈을 위해 가족 해외여행도 마다했다. 외국 여행자는 귀국 후 1개월이 지나야 헌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들에게는 회사 일 때문에 여행에 못 간다거나 휴가가 없다는 거짓말을 하곤 했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45년간 43차례 굵은 바늘이 들락거린 왼 팔







헌혈은 사랑 : Give Blood, Save Life

45년간 700차례 넘게 굵은 주삿바늘이 들락거린 그의 왼 팔뚝에는 거뭇거뭇한 자국들이 훈장처럼 새겨져 있었다. 영광의 흉터다. 그가 40년간 다른 사람에게 나눈 혈액은 29ℓ를 훌쩍 넘는다. 성인 남성 혈액량이 5~6ℓ인 점을 고려하면 60명의 혈액을 합친 양이다. 헌혈을 자원봉사시간으로 환산하면 1회당 4시간씩 약 3000시간이나 된다. 연탄 배달과 헌혈자 에스코트 봉사 등을 합하면 모두 1만8,398시간에 이른다. 놀랍지 않은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소리없이 헌혈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이순만 씨. 그는 “헌혈은 자신의 건강유지는 물론, 죽어가는 소중한 생명을 살리고 가난한 이웃에게 의료비를 지원하는 등 일석삼조의 장점이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