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우리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샤워를 하고 변기물을 내리며 생각한다. 이 물은 어디로 가는 걸까? 하루에도 수백 리터의 물을 사용하지만 이 물이 깨끗한 강물로 돌아오는 과정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진행된다. 그 여정을 책임지는 곳, 춘천공공하수처리장에 대해 알아보자. 윗물이 흐려도 아랫물은 맑을 수 있도록!
[오염수가 그대로 공지천으로 흘러들어 갔던 1980년대]
1980년대의 공지천은 죽은 물고기가 떠오르고 악취가 진동하던 곳이었다. 오리배가 떠 있었던가. 그렇다 한들 누가 그 물에서 유유자적 패달을 밟을 수 있었을까. 당시에는 춘천에 하수처리시설이 전혀 없었다. 정화조나 재래식 화장실을 거친 오염된 물이 그대로 공지천과 의암호로 흘러들어 갔다. 특히 여름철이면 물 위에는 기름찌꺼기(스컴)가 떠오르고 고약한 냄새가 퍼졌다. 의암호는 춘천 시민들의 휴식과 나들이 공간이었지만, 하수와 각종 오염 물질이 유입되면서 수질은 심각하게 나빠졌다. 공지천은 도시 중심을 흐르는 하천임에도 쓰레기와 오물로 가득찼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변화는 1990년 춘천공공하수처리시설이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하수처리시설이 가동되면서 공지천과 의암호의 환경은 점차 개선되었고, 춘천은 다시 맑은 물을 품은 호반의 도시로 거듭났다.
영국 의학잡지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2007년 1월호)에 따르면 현대 의학의 최고 성과는 ‘맑은 물’과 ‘하수도 시설’이라고 한다. 이는 도시가 건강하게 기능하기 위한 필수 요소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사용된 물은 하수관로를 통해 하수처리장으로 보내진다. 하수처리장은 물을 깨끗하게 정화해 하천이나 바다로 방류한다. 이는 태양의 증발, 구름의 비를 통해 다시 우리에게 맑은 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처럼 하수관로는 도시 혈관의 정맥이고, 하수처리장은 오염 물질을 걸러내는 신장(콩팥)과 같은 역할을 한다. 춘천시 강대근 상하수도사업본부장은 “하수처리장시스템이 없다면 먼저 하천과 호수는 쓰레기와 오물로 뒤덮이고 악취와 병원균이 퍼질 것”이라며 “생태계가 파괴되고 작은 비에도 도시가 침수되어 시민들의 건강과 재산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라고 하수처리시설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 하수 처리과정
오수에서 오염물질을 제거하기 위해선 단계를 차근차근 밟는 게 중요하다. 1차로 큰 덩어리들을 걸러내고 가라앉혀 오염물질을 물리적으로 제거하고, 이후 미생물을 활용한 2차 처리를 거친다. 각종 균이 유기물, 질소(N), 인(P)을 산소와 함께 먹고 뱉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찌꺼기는 가라앉고 물은 깨끗해진다. 약품 처리가 쉬운 인과 달리 질소는 미생물이 활발히 움직여야만 공기 중으로 날리는 게 가능하다. 이후 추가로 약품을 넣어 여과하는 고도처리 단계를 거친 뒤 소독까지 완료하면 준비 완료. 방류 수질 기준에 맞춘 깨끗해진 물은 인근 하천으로 내보낸다. 대체로 전체 과정을 통과하는 데는 9~17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하수가 최초로 유입되는 침사지]
[최초침전지는 악취가 심해 거대한 뚜껑으로 덮었다.]
춘천 시내에 있는 가정과 사무실에서 발생한 모든 하수는 근화동 공공하수처리장으로 모인다. 그 과정을 직접 들여다보기 위해 지난 12일 오후 근화동에 위치한 춘천공공하수처리장을 찾았다. 오늘 아침 샤워를 하고, 설거지할 때 사용한 물이 나보다 먼저 도착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입구에 들어섰다. 영하 8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10여 명의 공무원들이 하수처리장 유입수가 걸러지는 1차 침전지에 모여있었다. 2인 1조로 네모난 철뚜껑을 열어 부유물을 건져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오랫동안 음식물을 묵혀둔 듯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눈에 봐도 커다란 이물질이 곳곳에 잔뜩 끼어있었다. 춘천시 하수운영과 김원만 주무관은 “펌프에 걸리는 건 사람들이 변기에 버린 이물질로, 물티슈가 가장 많다”며 “고무장갑, 머리카락같이 녹지 않는 이물질은 일일이 저희 손으로 꺼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춘천시 공공하수처리시설은 축구장 15개 크기의 부지에서 하루에 올림픽 수영장 60개 분량의 하수를 깨끗하게 처리하는 능력을 갖췄다. 이 넓은 공간을 직접 운영하는 하수운영과 공무원은 고작 16명. 하수처리는 주야를 가리지 않아 이들은 교대로 돌아가며 매일 15만 톤의 춘천 도심의 생활하수를 처리한다. 오후 점검조를 따라 시설 점검 코스를 따라가 봤다. 일반적으로 하수처리장은 ①침사지 ②최초침전지 ③생물반응조 ④이차침전지 ⑤총인처리시설 ⑥소독조로 구성돼 있고, 이 단계를 모두 통과하면 물고기가 살 수 있는 비교적 깨끗한 물과 찌꺼기로 완전히 분리된다. 이 코스를 다 돌아보는 데는 2시간 넘게 걸렸다.펌프나 배관을 점검하는 최초침전지에서는 처리 중인 오물이 얼굴과 옷에 튀어서 나도 모르게 ‘악’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악취에 코가 시큰거렸다. 겨울이지만 날벌레도 날아다녔다. 그래도 동물들이 마실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한 물로 바뀐 소독조를 보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지명재 주무관은 “더러운 것을 만지다 보면 하루에도 2~3번씩 옷을 갈아입는게 다반사다. 옷은 빨면 되지만 사람 피부 솜털에 배인 냄새는 씻어도 잘 사라지지 않는다. 장갑을 두 겹씩 껴도 슬러지 가 손톱에 낀다”고 설명했다. 그의 옆에서 가만히 듣던 유정두 주무관도 한 마디 거든다. “얼마 전 7살 난 딸이 그러더라고요. ‘아빠 차를 타면 토할 것 같아. 하지만 아빠가 힘들게 일하니까 참을 수 있어’”
* 슬러지: 하수처리 과정에서 생기는 침전물
[자외선 소독으로 맑아진 물은 의암호로 방류된다]
춘천에는 4곳의 공공하수처리시설을 비롯해 14개의 소규모 마을하수처리시설과 175개의 중계펌프장이 전역에 걸쳐 그물망처럼 뻗어있다. 덕분에 춘천시 하수도 보급율은 96.1%로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우수하다. 하지만 하루 15만톤씩 처리할 수 있는 춘천하수처리장은 준공된 지 34년이 지나 시설 노후화 문제가 생겼다. 게다가 춘천시 인구 증가에 따른 하수유입량 증가로 처리용량도 부족한 실정이다. 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칠전동으로 춘천하수처리장 이전을 추진 중이다. 새로운 하수처리장은 하루 15만7천톤처리 규모의 시설을 갖추고, 설비는 지하에 설치하며 지상에는 테마공원과 온수 수영장을 조성할 예정이다. 2029년 완공을 앞두고 있다. 최종하 하수운영과장은 “하수도에는 음식물쓰레기, 기름, 화학물질(세제,먹다남은 약)등 분해되지 않는 물질을 버리지 말아달라”며“시민 여러분의 작은 실천이 하수처리의 효율성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춘천시하수처리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필수 시설이다. 우리가 누리는 공지천과 석사천의 쾌적한 환경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결국 우리가 실천 할 수 있는 일은 뻔하지만 ‘물을 덜 오염시키기’일 것이다. 세제를 덜 쓰고, 음식물 쓰레기 분리배출, 길거리 하수구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등 기본만 지키더라도 버려진 물의 여행이 조금은 빨리, 쉽게 끝나지 않을까.
* 잠깐만요!
우리가 먹는 수돗물을 만드는 상수처리 비용보다 우리가 버린 물을 깨끗한 물로 만드는 하수처리 비용이 2배 정도 많이 소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