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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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25

2018.2
#봄내를 품다
춘천의 기념비 14
약사천 기념비
도심 흐르는 물길 되살리니 춘천 얼굴이 환해졌다


변신은 무죄라 했던가. 하천에서 복개로 다시 생태하천으로. 도시 한가운데 30년 동안 시멘트에 갇혔던 약사천의 하늘이 열렸고 맑은 물이 흐른다. 곤충과 물고기가 돌아왔고 바람길도 되살아났다. 긴 목을 늘이고 그림같이 서있던 백로가 쏜살같이 고기를 낚아채는 풍경 너머로 솟아오른 봉의산의 모습이 더없이 아름답다.





콘크리트로 덮기전의 약사천.

그 시절엔 주민들이 모여 청소를 하곤 했다.


콘크리트 제방, 무허가 장터… 약사천의 과거


예로부터 물길은 생명의 터전이었다. 신체에 실핏줄이 있듯 국토의 산기슭마다 실개천이 흘러 생태계를 풍요롭게 했다. 우리에게 용수를 공급하며 여가공간과 풍요로운 삶을 유지시켜주는 가장 중요한 자원 중 하나이다.


공지천의 지류인 약사천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시멘트로 복개되어 5일장이 서던 후미진 곳으로 효자동과 약 사동을 가르며 흐르던 보이지 않는 개울이었다. 아주 오래전에는 이곳에서 빨래도 하고 멱도 감았겠지만 1970년대부터는 장마철 이외에는 물도 별로 흐르지 않고 쓰레기가 쌓이던 개천이었다.


이후 도시 하천 개선사업을 하겠다며 시멘트로 U자형 수로를 만들었지만 오히려 하수도로 전락하고 말았다. 주변에 주택들이 늘어나면서 생활하수가 유입되어 악취까지 풍기자 1982년에는 콘크리트로 덮어[覆蓋·복개] 간선도로가 되면서 그만 약사천은 잊혀졌다.


그러다가 1989년 춘천 도심(명동)에 즐비하던 노점상들을 이곳으로 이전시키면서 엉뚱하게도 약사천 복개도로는 닷새마다 장이 서는 장거리가 되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가건물로 형성되어 정돈되지 않은 시장으로 주변 환경이 점점 열악해지자 도시정비를 위한 약사천 복원이 결정되었다. 때마침 환경부의 청계천+20프로젝트와 맞물리며 2009년 국비사업으로 선정되고 이곳에 있던 풍물장이 온의동 복선전철 고가철도 하부공간으로 이전하며 춘천의 또 다른 명소가 되었다.



 복개 후 약사천을 따라 들어선 풍물장.

지금은 남춘천역 부근으로 이주했다.


콘크리트 걷어내고 도심 속 쉼터로 재탄생


서울 청계천의 신화를 꿈꾸며 콘크리트 구조물을 모조리 걷어낸 이곳은 어쩌면 본래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듯하다. 다만 어느 작은 샘터에서 시작되는 자연하천이 아니고 물길에 비해 너무 깊고 너르게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상전벽해(桑田碧 海)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리게 한다.


꼭 꼬집는다면 소양강댐 물을 인위적으로 끌어들인 하천이기에 복원이 아닌 개발이라는 용어가 더 타당할지도 모른다. 주차장이 사라졌고 간선도로 하나가 없어지긴 했지만 콘크리트 투성의 회색빛 도시를 자연공간으로 거듭나게 한 덕분에 춘 천의 첫인상이 밝아졌고 한결 여유가 생겨났다.


애써 성 공적으로 조성한 약사천을 일방적으로 찬사 또는 평가절하하는 이분법적 사고로 바라볼 필요보다는 어려운 사업을 완성한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새로 놓은 다리를 문화예술의 도시답게 유럽처럼 유명작품이 아니더라도 지역 미술가의 조각 작품이 몇 점이라도 놓여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물길 되살린 약사천. 산책로는 공지천과도 연결된다.



약사천 내력 조곤조곤 읊은 기념비


지난 여름 내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물길을 떠올리며 눈 내린 겨울의 모습이 궁금하여 약사천을 찾았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푸른 하늘 아래 졸졸졸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눈 내려 고즈넉한 좋은 풍경에 비해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징검다리도 건너보며 모 처럼의 여유를 만끽한다. 산책을 마치고 올라선 봉의초교 옆 길가에 생각치도 못했던 비석 하나를 만났다. 약사 천을 완성하고 세운 기념비였다. 별로 크지 않은 자연석에 새긴 글귀에 눈길이 머물렀다. 시행청에서 세운 비석이겠지만 치적을 자랑하는 글귀와 그 끝에 당연히 붙어 있을 줄 알았던 이름 석 자도 보이지 않았다. 춘천인이라면 음미할 만하기에 전문을 소개한다.


태곳적 물길 영원히 흘러라

이 땅이 생기고 물이 흘렀다.

교동 향교골, 효자동 도화골 개울이 합쳐 내를 이뤘다.

팔호광장에서 합수된 물,

구름다리雲橋지나 약사리로 지났다.

공지천 불리고 북한강 이뤘다.

그지없이 맑았다.

물동이 줄을 잇고, 옥양목 흰 빨래 더 없이 빛났다.

아이들 멱 감고, 누렁소 긴 울음 뽑았다.

이집 저집 구정물 물색을 바꿨다.

30여 년 전, 콘크리트 제방, 천연의 흐름 덮었다 무허가 장터 들어섰다.

2009년 옛 물길 다시 보고 싶어 풍물장터 옮기고 복원공사 시작했다.

그 물길 되찾았다.

소양강 맑은 물 끌어와 내를 채웠다.

약사천은 ‘물의 도시’ 춘천의 얼굴이다.

태곳적 물길 후세에 전한다.


계사년(2013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