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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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25

2018.2
#봄내를 품다
김길소의 그때 그 사건 14
경춘선 전철화
근대사 격량 뚫고 80년 달려온 철마(鐵馬)

화부가 석탄을 때 끓인 물에서 생긴 증기를 동력으로 기차가 달렸다. 일반 객차가 모자랄 때에는 내부를 개조해 나무의자를 놓은 유개화차(有蓋貨車·일명 곳간차)를 타야 했다. 이런 미카형 증기기관차가 퇴역한 후에는 육중한 디젤기관차가 다녔다.


요즘은 날렵하고 쾌적한 제3세대의 최신식 전동열차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복선 레일 위를 거침없이 쌩쌩 내달리고 있다.

경춘선(京春線)에 철마의 기적소리를 울리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39년부터이다. 지 난 79년 동안 한국철도사의 애환을 오롯이 담아내며 국운 성쇠와 근대화의 격랑을 헤치고 오늘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옛 경춘선 청량리행 무궁화 열차가 강촌유원지 위를 지나며 강촌역으로 들어서고 있다.(2005년)

복선화가 되며 강촌 노선이 바뀌어 지금은 이 자리에 레일바이크가 운영중이다.



1939년 기적소리 처음 울린 경춘선(京春線)

종점인 서울 성동역 주변은 ‘제2의 춘천’이라 불려


서울 성동역을 기점으로 마석과 청평~가평~강촌을 거쳐 춘천에 닿는 경춘선은 1939년 7월 25일 개통된 총 연장 93.5㎞의 사설철도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개통이 1899년의 경인선(인천~노량진)이었으니까 만 40년 만이다. 개벽 이래(1825년 증기기관차 발명)로 치면 1세기가 훨씬 넘어서야 봄내골에 철길이 뚫린 셈이다. 그것도 나라를 강점했던 일제의 전쟁 준비를 위한 군수 물자 운반과 자원 수탈을 위한 수단과 무관치 않음을 미뤄볼 때 격세지감을 안겨준다.


광복 이후에는 전국의 사설철도와 부대사업이 모두 운수부에 흡수, 국유화됐다. 그러면서 국토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근대적 교통수단으로 한몫을 하기 시작했다. 6·25전쟁과 그 이후에는 군 병력과 군수물자를 전방으로 실어 나르는 병력수송열차 구실을 수행했다. 구공탄이 가정의 주 연료였을 때는 춘천역 주변에 기차로 수송한 시커먼 석탄이 항시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80년대 이전까지는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친 수많은 군 장병들이 경춘선을 타고 길목이었던 춘천(102보충대)을 거쳐 중동부 전선과 주둔지에 배속, 병역 의무를 마쳤다. 월남전이 한창이었던 1960년대 중반부터는 8년이 넘도록 파월장병의 집결과 환송을 도맡아 32만 명의 장병을 파병한 기착점이 춘천 역이기도 하다.(봄내 2017년 2월호 참조)


북한강 줄기를 따라 이어진 경춘선의 차창 풍경은 내륙을 관통하는 전국의 어느 철도보다 아름다웠다. 이런 선경(仙境) 때문에 개통 초기부터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서울 용두동 앞에 있었던 성동역 주변은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해지면 언제나 춘천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역 주변의 주점과 음식점도 마찬가지였다. 성동역을 떠나 기찻길 옆 판자촌과 건널목 한복판을 가르고 땡~ 땡~ 땡~ 종소리를 울리며 성북역까지 서행했던 열차 안도 예외가 아니었다. 반갑게 만난 사람들끼리 모여앉아 으레 술판을 벌이는 정겨운 모습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래서 경춘선이 닿는 곳은 ‘제2의 춘천’이나 다름없었다.




동아일보 1969년 8월 18일자


“춘천 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청춘의 해방구이자 주민의 고생길이었던 경춘선


1970년대 이후부터는 바캉스와 레저 붐을 타고 철따라 관광객 탑승이 부쩍 늘어났다. 남이섬과 강촌 청평 유원지 등 많은 관광지가 개발된 탓이었다. 강촌과 청평~대성리~마석 등지는 MT를 즐기려는 대학생과 젊은이들이 넘쳐 주말이면 항시 발 디딜 틈 없이 북새통을 이뤘다.


오죽했으면 정원의 3배나 많은 승객을 태우는 바람에 차축을 받쳤던 스프링이 부러져 승객들이 야간통금이 풀릴 때까지 집단 노숙하는 사건(1975년 8월)이 일어났을까. 심지어는 초만원의 객차를 몰고 가다 대성리와 마석 사이의 고빗길을 오르지 못해 다른 열차의 힘을 빌려 3시간이나 늦게 도착하는 사건(1969년 8월)까지 있었을까.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못 할 일이다.


‘마이카’시대가 열리기 이전은 열차이용이 중요한 교통수단이어서 콩나물시루같이 빽빽한 객차를 타고 승강구에 매달려 가야 했다. 그래도 당시 통기타(실제로는 통키타라 불렀지만)를 든 젊은이들에게는 피난길 같은 여행이 낭만이요,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간직돼 있다. 한때나마 수도권 젊은이들의 ‘해방구’ 노릇을 톡톡히 해낸 경춘선 탑승은 봄내골 사람들에게 ‘고생길’이 되기도 했었다.


젊은이들이 열광했던 가수 김현철의 ‘춘천가는 기차 (1989년 발표)’를 이한철(불독맨션)이 새로운 버전으로 리메이크(2001년 발표)하기도 했다. 김광석과 윤종신 같은 젊은 가수들의 노래를 누군가 선창하면 팀과 학교가 달라도 한데 어울려 합창을 불렀다. 특별한 뭔가가 있어 서가 아니었다. 경춘선만 타면 무작정 좋았고 한 몸이 되어 신이 났던 시절이다.


대학생과 군생활 직장근무로 10여 년간 오갔지만 차창에 비치는 수려한 풍경과 열차 분위기에 젖어들어 한 번도 졸거나 잠들지 않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삶의 진화와 생동감을 체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묘한 마력에 빠져들게 하는 경춘선은 시(詩)나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이나 노래, 영화의 배경이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단골메뉴가 되었다.



경춘선 복선화 이후 도입된 ITX-청춘 열차



2010년 복선전철 개통으로 수도권전철망 진입

춘천역~청량리역 63분… 전철 타고 출퇴근, 통학


한국 철도사의 굴곡을 온몸에 담아온 경춘선은 복선전철 개통으로 새로운 변곡점을 맞았다. 찔끔 예산으로 무려 11년이나 끌었지만 주민들의 큰 기대 속에 2010년 복선전철에 이어 2012년에는 ITX-청춘 열차가 개통됐다. 굽이가 많아 속도를 낼 수 없었던 곳을 펴고 가로막은 강과 산은 새로운 다리를 놓고 터널을 뚫어 직선화시켰다. 단선이었던 철도를 복선화하면서 중간역과 간이 역사를 새롭게 단장해 명실공히 ‘수도권 전철망’으로 진입했다.


국내 최초의 관광레저열차로 도입된 ITX-청춘은 안락함과 함께 매끈한 유선형으로 생긴 2층 객차가 승객들의 눈길과 관심을 끌고 있는 가운데 해마다 승객들이 폭증하고 있다. 겉모습만 달라진 게 아니다. 비둘기호와 통일호 무궁화호로 시대의 변화가 가속을 재촉했다. 하지만 무궁화호의 주행시간은 1시간 50분이나 걸렸다. 지금은 느림보 열차였던 것을 최대 시속 180㎞로 바꿔 용산역까지 연장된 선로를 83분 만에 주파하고 있다.


수도권광역전철의 주요 환승역인 왕십리와 옥수역을 거치게 되면서 경춘선 주변의 영서지방과 수도권의 접근성이 크게 향상됐다. 서울 인근의 조그만 마을에 지나지 않았던 마석과 금곡 등에는 유동인구가 부쩍 늘어나고 고층 아파트 등 부동산 투자와 수요가 활발해져 평내호평과 같은 신시가지가 여러 곳에 생겼다. 봄내골에 신설된 남춘천역 주변도 상업용 고층빌딩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닭갈비 업소가 부쩍 늘어나 신역세권으로 떠올랐다. 하루 평균 이용객도 개통 전 6,000여 명 수준에서 2만여 명 수준일 정도로 폭증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전철을 이용하는 일명 지공선사(地空禪 師: 65세 이상의 지하철 공짜 세대를 일컬음)들은 경춘선을 가장 좋은 ‘황금노선’으로 꼽고 있다. 향토음식인 닭갈비와 막국수를 이 고장에서 맛볼 수 있는데다 남춘천역 인근에서는 ‘5일장(풍물시장)’과 주변 풍경을 즐기면서 무료한 하루를 보내기에 가장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주행시간이 크게 단축된 후에는 경춘 간을 통학이나 통근하는 대학생과 직장인이 많아져 봄내골이 수도권의 주거지역으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경춘선의 복선전철화는 물리적 심리적 거리 단축과 지역 발전뿐만 아니라 봄내골 사람들의 생활패턴과 풍속도까지 확 바꿔 놓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옛 춘천역사(1980년대)  

미카형 증기기관차(1953년 6월)

옛 춘천역 플랫폼

열차 내에서 노래부르는 젊은이들



장기 발전 전략 마련이 급선무

옛 역사 사라져 아쉬워… 머물 수 있는 곳 만들어야


지금까지 경춘선은 더 이상 동쪽으로 달릴 수 없었다. 연결의 작동 고리가 끊겨있는 종착역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종착역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초라한 종착역에서 새로운 철도 교통의 요충지로 탈바꿈하기 위해 오는 2024년까지 춘천~속초 간을 이을 동서고속화철도 설계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미개통 구간이었던 동홍천~양양 구간이 뚫려 서울~양양 구간의 고속도로가 완공된 데 이은 획기적인 계획이 아닐 수 없다. 벌써부터 고속도로와 철도가 맞물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초현실적인 환상의 운송 연결망과 양양공항 속초항으로 이어지는 하 늘길 뱃길이 훤히 트이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경춘선의 발자취에는 긍정적인 면과 함께 부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시가지 노선의 지중화 실패와 고장의 특색을 살리지 못한 규격화된 춘천과 남춘천 역사(驛舍) 신축과 고장의 역사(歷史)를 고스란히 담아온 춘천역의 흔적을 깡그리 없애버린 점은 지금까지도 지역 주민들에게 아쉬움을 안겨주고 있다. 철길과 열차가 깡그리 없어졌는데도 아직 해운대에 남아있는 추억의 송정 역사가 더욱 돋보이는 대목이다.


고속철도인 신칸센을 도입한 일본의 지방도시는 개통 이후 희비가 교차하는 큰 홍역을 치렀다. 지역경제가 급속히 쇠퇴하거나 호황을 누리는 곳이 생겨났다. 이 같은 현상은 경춘복선전철 운행과 동서고속철도 개통으로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 낙후된 지역 주민들이 서울로 쏠리는 ‘빨대효과’에 시달리고, 스쳐서 지나가게 되는 ‘통과지’로 전락할 수 있다. 실제 강촌과 천안 지역 경제의 침체가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제부터 철도 교통망 개선의 기회요인을 적절히 활용해 나가야 하는 과제는 오로지 봄내골 사람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