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검색 닫기

VOL.406

2024-11
#최돈선의 둘레마을 이야기 #봄내를품다
그 아름다운 가을의 시, 예술과 탱고



춘천에 술이 익어 숨 쉬는 마을이 있다. 발효된 이름의 예술이란 술, 그 맛이 향긋하니 시를 저절로 품는다. 시가 있는 술 빚는 마을 이름이 실레마을이다. 시루를 엎어놓은 듯이 생긴 마을이어서 그렇게들 부른다. 특히 이곳은 우리의 향토문학을 꽃피운 김유정의 생가가 있다. 그 생가터에 김유정문학촌을 조성하여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김유정의 문장엔 해학이 있다. 김유정의 문장엔 물씬 풍기는 토속적인 육성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이마를 짚으며 노란 생강꽃이 알싸해 어지럽다 한다. 지금 가을인데? 고개를 갸웃해도 늘 생강꽃이 이 마을엔 피어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문장 속엔 욕필이 영감이 나오고 후이 후이, 볕 좋은 한마당에서 닭싸움시키는 점순이가 등장한다. 아직도 점순이 키가 크지 않아 애를 태우는 무늬만의 데릴사위가 있구나. 그가 몰래 담 너머에서 점순이를 훔쳐보고 있는 오후다.


예술인 마을이 있는 과수원 입구엔 인쇄박물관이 우뚝한데 조곤조곤 아이들이 과거의 활자들을 신기한 듯이 들여다본다. 관장님은 아이들을 만나면 그저 언제나 인자하게 웃으신다. 아~ 가을아 정말 좋구나. 이렇게 소리치고 싶은 산이, 메아리로 부르고 싶은 가을산이, 바로 코앞에서 메아리를 들려준다.

아~ 가을아 정말 좋구나아~




김유정 문학촌


책과인쇄박물관



도랑물이 졸졸 흘러서 내로 가는 길엔, 작은 송사리 떼도 볼 수 있다. 도랑은 조금 더 흘러야 내를 만나고, 내는 조금 더더 굽이쳐야, 그래야 큰 강을 만나게 된다. 북한강은 온갖 내를 모아 서쪽으로 흘러 바다에 빠진다. 그 서쪽 바다에 숯덩이 같은 해가 소슬하게 지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라.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여기 목월의 시 한 줄이 익어있지 않은가.

저녁노을빛에 물드는 한 잔의 고요한 술이 있다면 또 얼마나 향기롭겠는가.

춘천은 참 복도 많다. 가을이면 잔치 잔치 벌였네, 덩실덩실 풍년을 쳐대는 농악 소리, 그 소리가 가을 금병산 자락을 드맑게 울린다.


그런데 9월의 마지막 날에 참 이상한 일도 다 있지, 줄레줄레 어정어정 슬금슬금 사람들이 온다. 노인도 있고 중년의 부부도 있고 아이의 손을 잡은 젊은 부부도 있는데, 어디서들 오시는지 발걸음도 사뿐 가뿐하다. 


대추나무에 대추, 저 나무는 어디에서 광을 내오는 걸까. 씨알 굵은 빛깔이 천연스레 곱다.

저마다 이런 생각들 아니할 수 없는 날이언만 이들은 조용히 발걸음 옮겨 예술이라 쓴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누룩이 익는 항아리들 사이를 지나니 모두 어질어질하건만 이게 전통주의 향이로구나, 바람결처럼 이층 옥상으로 오른다. 거기 체험실에 다다른 사람들, 저마다 비닐장갑을 끼고 양온소 주인의 이야기에 귀를 연다. 낭랑하니 들리는 소리는 영락없는 이웃 아저씨네요.

고두밥에 밑술 붓고 주무르세요

위아래로 꾹꾹 누르시고요

마치 노랫가락처럼 들리니 그 말 따라 열심들이다. 술이 되는 건 시간이 흘러야 해, 엄마가 소리 죽여 말하면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미국에서 온 시 쓰는 윤교수님 가슴이 설레는지 마냥 함박웃음이다.


잘 빚은 술은 병에 담자 

맑기도 해라 이 술 한 잔 

공손히 받아서 마셔보세 

발그레한 볼 곱기도 하지


이런 노래가 저절로 나올 것만 같다.



전통주조 ‘예술’에서 술 빚는 체험중인 시민들



병뚜껑에다 제조 날짜를 적은 다음엔 이제 정성스레 마련한 상 받음을 할 차례이다. 옛날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 적 잔치가 이랬을까. 쉰 개의 소반이 가지런히 놓인 자리에서 가벼이 어깨를 좌우로 흔들어본다.


상차림은 전통주조 ‘양온소’에서 마련한 자리이다. 소반은 목공예 연구가인 오춘택 전 한림대 교수가 3개월 동안 공들인 작품들이다. 그 정성이 고마워 다들 고개를 숙인다. 

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시음주는 네 가지다. 유리잔에 비친 술은 색깔이 단풍잎처럼 곱다. 상큼한 오미자술은 주황빛이고, 녹두로 빚은 느릅술은 연둣빛이요, 두 번 빚은 이양주는 황금빛인데, 몸에 좋은 복분자술은 진한 포도색이 아닌가.

사회자가 왼쪽에 놓인 술잔을 들라고 하자 모두 오미자술을 들어 올린다. 첫술입니다. 이 술은 ‘봄날 다시 만나요’란 뜻을 지닙니다. 우린 곁사람과 가볍게 목례한 다음 건배를 나눈다. 

다음은 청몽의 느릅술인데 모두 달멍 별멍 한 여름밤 꿈속에 젖는다. 가을이 되면 김유정의 ‘산골나그네’ 주막에서 황금의 이양주인 동몽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겨울, 몸에 좋은 복분자술이다. 동짓날 기나긴 밤에 어찌 행복한 꿈, 꿈꾸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음미하니 상큼하고, 순하고, 강하며 진한 맛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차례로 술잔을 순회하면서 드디어 저 남국의 탱고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탱고 음악이 흐르는 중, 상에 놓인 다과를 곁들여 먹는다. 참 정갈하기도 하지. 약과며 과질에 방아전이요 도토리묵이다. 어디서 구해 왔는지 그 귀하다는 석이버섯이 입안에 사각거린다. 아 이런, 노란 소국 한 송이가 부끄럽게 놓여 있네? 또 전지한 벚나무 가지를 잘라 젓가락 받침으로 쓰고.

조그만 것 하나라도 정성을 다한 그 세심함이라니….





문득 하늘을 보니 낮게 나는 검은 새 한 마리 어디론가 재빨리 사라지는데, 저 높이 하늘에 붙박여 아래쪽을 감시하는 황조롱이 한 마리 눈에 띈다. 어이쿠 검은 새가 질겁을 했겠구나. 

구름 옅게 깔린 가을 하늘을 한참 쳐다보노라니 새털구름일까? 하얀 비단 널어놓듯이 저렇게 하늘에다 펼쳐놓은 뜻은 무엇일까. 

뭐 뜻이야 있을라구. 모이다 보니 흩어지고, 흩어지면 또 어디에선가 만나게 되는 거지.

자연이란 스스로 그렇게 되는 거라지?




김유정문학촌에서 열린 ‘샤토 아르스’ 행사



이 <샤토 아르스> 행사는 올해 전국에서 세 군데에서만 열리고 있다. 농림수산부가 공모한 전국 전통 제조주 심사에서 실레마을의 ‘예술’이 선정되었다. 

전통주에 대한 지자체의 관심은 전국적으로 매우 뜨겁다. 이중 춘천은 서울과의 접근성이 가장 좋은 편이다.

또한 ‘예술’의 전통주 주조 방법은 다른 지역 전통주와 차별화를 두고 있는데, 그것은 전통주 빚는 방법과 기후조건, ‘예술’만이 가진 제조비법이 함께 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통주는 이제 그 지역의 브랜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것을 위해선 춘천시의 관심과 지원, 시민의 뜨거운 응원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제 초석을 다지는 중이다. ‘예술’은 여타 전통주보다 고급할 뿐만 아니라, 보관 기간이 길고 맛과 순도가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축제 ‘실레문화체험협동조합’이 주최하고 전통주조 ‘예술’이 주관하는 이 행사는 9월 28, 29일 양일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춘천에서, 서울에서, 전국 각지에서 심지어 멀리 미국에서 오신 분도 있다. 물론 그분은 고향이 춘천이고 부모님을 뵈러 오긴 했지만, 이런 소중한 자리에 함께하게 되어 무척 기쁘다고 했다.


춘천 실레마을 양온소 ‘예술’은 춘천의 미래이다. 막국수와 닭갈비에 전통주 ‘예술’이 더한다면, 우리 춘천은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이다. 

문향의 도시 춘천

춘천의 김유정은 문학의 자부심이고

춘천의 전통 명주는 ‘예술’이 아니겠는가.





최돈선 시인. 춘천시 둘레엔 1개 읍, 9개 면이 있다. 나는 그곳이 궁금하다. 그 고요한 곳에 현자는 있을 것이다. 당산목 같은 우직한 당신의 사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