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해설가 이형재는 아침 8시에 집을 나선다. 그가 강원도립화목원에 숲해설가로 근무한 지 3년째로 접어든다.
8시 반, 화목원에 도착한 이형재는 자신의 책상에 앉아 그날 해야 할 일들을 확인하고 메모한다. 그리고 9시부터 근무가 시작된다. 관계자 회의를 마친 후, 숲해설가들은 저마다 맡겨진 일을 시작한다.
이형재는 조각가이다. 그는 평생 나무를 깎거나 흙을 빚거나 돌을 쪼면서 살아왔다. 그는 전업 작가이다. 조각 작업을 하면서도 그는 틈틈이 계약직 일을 한다. 화목원 일도 그런 일과인 셈이다.
화목원은 그의 성실성과 수목에 대한 넓은 지식을 알기에 1년씩 주어지는 계약직을 3년째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풀이나 나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이고 성품 자체가 그는 나무요 풀이다. 평소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그가 꺼낸 나무 이야기는 어찌나 재미나고 흥미로운지 듣는 이의 살갗에 새록새록 나무의 새순이 돋아나는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이형재의 조각은 원초적 생명을 주조로 한다. 나무가 주된 소재로 사용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평생을 그는 생명의 나무를 구상화하는 작업에 몰두해 왔다.
내가 화목원에서 이형재 숲해설가와 만난 곳은 분수대 광장이었다.
그는 하얀 분수처럼 웃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여기 오셨으니 미스김 할아버지를 먼저 만나 보셔야죠.
미스김 할아버지라고? 나는 분수광장 주변으로 갔다.
숲해설가는 한 나무를 가리켰다.
털개회나무예요. 라일락의 할아버지죠.
그 나무는 수수꽃다리의 형제죠?
네. 정향丁香이라고도 불러요. 1947년 이 나무의 씨앗을 미국 식물학자 엘윈 미더가 미국으로 가져갔어요. 그곳에서 원예종으로 개량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죠. 나무의 이름이 ‘미스김 라일락’이라고 했어요. 식물학자가 한국에 근무할 때 타자수 미스김의 이름을 붙인 거래요. 1970년 우리나라는 그 나무를 비싼 특허료를 주고 수입했지요.
아, ‘엘윈 미더’ 그분, 목화씨를 조선에 가져온 문익점을 떠올리게 하네요.
하하 그렇군요.
숲해설가 이형재는 특히 어린이를 좋아한다.
그는 어린이의 눈높이로 눈을 맞추고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선한 눈매는 자애롭고, 아이들과 그림도 같이 그리고, 아이들과 새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함께 낸다.
뚜르르르, 홋홋…딱딱, 호오호오, 뻐꾹뻐꾹, 홀짝 호올짝, 따르르르… ,
호반새, 콩새, 방울새, 후투티, 딱따구리 등등.
그냥 모두 신나는 일뿐이다.
그냥 모두 재미나는 이야기들뿐이다.
숲 속에선 할아버지 할머니도 어린이가 될 수밖에 없다.
화목원엔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희귀 식물이 있고, 고개를 쳐들어야 보이는 거목의 나무가 있다.
산솜다리, 모데미풀, 노랑만병초, 복주머니란 등의 희귀 식물 49종과 금강봄맞이, 금강초롱꽃, 개느삼 등 49종을 포함한 초본 889종, 목본 606종, 선인장 137종 등등 이렇게 12헥타르의 화목원엔 다양한 식물들의 군락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강원도립화목원의 분수광장 모습
이형재 숲해설가와 아이들
분수광장에 서 보자. 그것을 기점으로 남북 방향으로 주차장, 정문 안내실, 수생식물원, 화목정, 암석원과 지피식물원, 산림과학연구원, 숲 속 쉼터, 메타세콰이아 숲, 맨발로 걷는 길이 점점이 배치되어 있고, 동서 방향으로 산림박물관, 기후변화 취약식물보존원, 멸종위기 식물자원보존원, 벚나무길, 토피어리원과 사계식물원의 유리 건물이 햇빛성처럼 반짝이고 있다. 사계식물원 옆엔 120년 된 양버즘나무가 우뚝 서서 삼악산으로 지는 해를 한 몸에 받는다.
화목원의 특징 중 하나는 무궁화 공원이다. 그리 넓지는 않아도 무궁화 공원은 이 화목원의 상징식물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무궁화가 우리 겨레의 혼이기 때문이다. 작년 전국 무궁화경진대회에서 강원도립화목원이 대상을 받았다.
올해 가을엔 무궁화 그림 그리기, 무궁화 송편 빚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를 주관하는 이는 조행임 학예연구사이다.
또한 이 화목원의 나무와 식물들이 잘 자랄 수 있는 것은 황만수 시설사님, 식물자원을 담당하는 김필순 님 외 두 분, 그리고 수목 코디 님들의 노고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이는 산림문화팀장 손용선 님이다.
전시관으로 가보면 그 안에 전시된 새와 동물들의 박제, 강원도에 산재하는 주요 나무들의 이름과 그 나무의 등걸이나 각각의 나이테를 눈여겨볼 수 있다. 특히 특별전시관에선 소장된 표본들이 우리의 가슴에 신비한 메아리를 던져준다.
그곳에서 나는 보았다.
대한민국 대표동물 “K신비한 동물사전”전을.
이중환의 <택리지 강원도편>에 있는 글귀가 입구에 적혀 있다.
화목원에 날아드는 새들, 이형재 作
털개회나무(2024.5.3.) 사진제공 이형재
“철령에서 남쪽으로 태백산까지
산등성이가 뻗쳐서 하늘과 구름에 닿은 듯하다”
이 장대한 스펙터클의 산과 숲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일까.
1914년 프랑스 잡지에 실린 조선의 호환虎患 그림과 구한말 강원도에 산재한 호식총이 눈길을 끈다. 호식총이란 호랑이에게 습격당한 사람들의 무덤을 말한다. 태백산맥엔 91개소의 호식총이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호랑이 남획으로 하여 호랑이는 멸종되고 말았다.
전시장엔 설악산에 서식하는 마지막 반달곰의 박제가 시선을 끈다. 밀렵꾼에 희생된 이 반달곰은 1983년에 발견되었다.
반달곰의 등과 왼쪽 관절 그리고 엉덩이 부분에 엽총의 탄흔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다.
현재 비무장지대에 극소수의 반달곰이 관찰되고 있다고 하는데 멸종위기의 동물로 분류된다.
어디 호랑이와 반달곰뿐인가.
여우가 사라진 지는 오래됐고, 따오기는 동요만 전하고, 표범은 시베리아에 가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곳 동물도 위기에 처해 있기는 마찬가지다. 우리의 새들은 안전한가. 개똥벌레는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을까.
설악산엔 곰에 얽힌 기구한 여인의 이야기가 지금도 전한다.
인제 설악산 기슭 어느 마을에 우물집 여인이 있었다.
그 우물집 여인의 남편은 설악산을 누비는 사냥꾼이었다. 그는 최고의 총잡이였다. 그는 사냥한 곰 가죽옷을 해 입고 설악산 눈밭에 엎드려 동물들을 기다렸다. 그때 먼 데서 다른 사냥꾼이 곰을 향해 엽총을 쏘았다. 이 오인사격으로 그는 죽었다.
젊은 여인은 홀몸이 되어 씨받이로 여기저기를 전전했다. 아들을 낳아주기로 했으나 모두 여자애만 낳았다.
남아선호사상이 뿌리 깊었던 당시여서 여인은 성이 다른 여자애들을 데리고 이 집 저 집에서 쫓겨났다.
나는 그 여인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젊었을 때 우리 집과 그 여인의 집은 지척에 있었다.
그러니 나는 그 여인이 아직도 궁금하다.
사냥꾼과 곰과 씨받이 여인.
얼마나 기구한 운명인가.
<상생> 이형재 作, 2024
어느 날 이 조각가에게 영감이 떠올려졌다.
상생!
서로 의지하고 서로 보듬고 서로 사랑하라는 음성이 숲해설가의 마음에 메아리쳤다.
그때부터 퇴근하면 화강암을 깎고 쪼고 다듬기를 석 달이 지났다. 드디어 두 그루의 나무가 서로를 보듬어 품은, <상생>이란 작품이 탄생했다.
이 작품은 지금 춘천 MBC 2024년 한국 현대조각 초대전에 출품되어 있다.
화강암의 단단한 질감에서 따뜻한 감성과 침묵의 은은한 향기를 느끼는 이가 있다면, 그이는 어쩌면 마음속에서 ‘나무의 성자’를 깨닫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최돈선
시인. 춘천시 둘레엔 1개 읍, 9개 면이 있다. 나는 그곳이 궁금하다.
그 고요한 곳에 현자는 있을 것이다. 당산목 같은 우직한 당신의 사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