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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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05

2024-10
#도란도란 #봄내를꿈꾸다
정 나누며 살아가는 터줏대감, 혈동2리 정용현 이장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마을을 지키는 나무처럼, 신동면 혈동리에는 전통찻집으로 시작해 25년간 사람들을 맞이한 공간이 있다. 한때는 ‘주막거리’라는 이름으로 술과 배가 고픈 이들에게 정까지 듬뿍 담아 채워주었고, 지금은 ‘바람꽃’이라는 이름의 카페가 되었다. 세월이 켜켜이 쌓인 이곳에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복고풍 소품들이 가득했다. 중장년층에게는 시간 여행을 하듯 과거의 기억을, 젊은이들에게는 고요한 상념의 시간을 선사하는 공간이다.

혈동 2리의 정용현 이장은 여섯 남매 중 막내아들로 부모님을 모시며 살고 있었고, 아내는 백일 된 아들을 업고 1999년 살고 있던 사랑채에 찻집을 열었다. 지금처럼 서울로 향하는 길이 잘 뚫려있지 않던 시절, 혈동리의 도로는 차로 붐볐다. 허기진 손님들의 요청으로 수제비, 동동주와 해물전 등을 팔면서 만인의 주막이 됐다. 예부터 한양에 걸어가며 쉬어갈 수 있도록 7개의 주막이 길 위에 있었기에 혈동리는 객들의 쉼터로 유래 깊었다고. 연못이 있는 정원은 2,000평에 달하는데 꽃과 나무가 잘 어우러진 조경으로 아름답다. 그 많은 수집품을 다 품을 수 있었던 것도 이곳의 넓은 부지가 한몫했다. 지금은 많이 정리했지만, 손님과 물건을 주고받으며 쌓은 정도 잊을 수 없다.

“60년을 쓰시던 색소폰을 주신 적 있어요. 팔아도 돈이 됐을 텐데 여기 놓으면 예쁘겠다며 선뜻 주시더라고요. 걸려있는 현판도 모두 손님들이 갖고 오셨어요.”

단골들의 애정이 가득한 장소이기에 혹시 헛걸음할까 싶어 가게 문을 쉬이 닫질 못한다. 멀리까지 찾아와 주니 고마운 마음에 뭐 하나라도 더 나눠고 싶어서 직접 수확한 농산물 한 봉지씩 손에 들러 보낸다. 카페 맞은편에 위치한 과수원에서 나오는 복숭아는 전부 손님들 차지다. 잘 익은 복숭아를 골라 손님들에게 깎아드리는 일은 무더운 여름, 소소한 즐거움이다.

잘 가꾸어진 정원뿐 아니라, 주변 도로까지 깔끔한 이유는 정용현 이장의 손길이 닿아있어서다. 쓰레기 매립장이 있다고 행여나 마을까진 더럽다는 오해를 살까 싶어 혈동 2리 이장으로서 부지런히 관리한다고. 그는 “토박이로 살아오던 터전에 처음 쓰레기 매립장이 생긴다고 했을 때 반대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마을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항상 고민하고 제안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재활용품을 활용해서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는 체험장이 있었으면 해요. 사람들이 마을을 많이 찾을 수 있도록요”라고 덧붙였다.

33 가구가 살고 있는 마을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정을 쌓으며 살아왔던 토박이의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