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다가오면 바빠지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재래시장과 대형마트. 명절음식과 제수용품 준비로 일주일은 들썩이는 이곳들 중 더욱더 눈에 띄게 바쁜 곳이 있으니, 바로 팔호광장 인근의 동부시장 지하이다.
동부시장 지하에는 현재 메밀부침집 4집과 튀김집 2집, 떡집 3집 등 모두 9집의 가게가 한 데 모여 장사를 한다. 처음에 자리 잡았던 튀김만두집이 전과 튀김집으로 변한 것 외에는 처음 자리 잡았던 그대로다. 주인이 바뀐 집도 있지만 분위기는 비슷하다.
춘천 동부시장의 주소는 운교동 183번지(도로명 동부 시장길 8). 도심 팔호광장에서 중앙로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다. 1969년에 개장했을 때만 해도 동그란 원형건물 형태에 가운데 천장이 뚫려 슬라브 지붕이 얹혀 있었다. 지붕 아래에는 노점이 자리했고 이곳에서 전영숙(84· 춘천부침 창업주)씨가 1975년경부터 부치기 장사를 처음 시작했다.
장사하는 이들 모두 의리가 있었고 한 형제 같았다. “중앙시장에서 자리 좁다고 쫓아내면 동부시장 와서는 아주 형제 같다(전영숙)”고 하던 시절이었다. 건물이 새롭게 들어서기까지 1년 넘게 자리를 잃어야 했던 사람들은 근처 길에 포장을 40~50개 치고 함께 장사를 하며 힘든 시절을 이겨냈다. 다행이도 ‘메물(메밀)부치기’ 장사가 잘 되던 때였다.
1988년 주상복합건물 공사로 지하가 있는 6층 건물로 새로 들어섰다. ‘음식점은 지하에서’라는 규칙이 정해지 자 원형 시장 시절, 부식가게를 운영하던 김기자(75·팔 호부침 창업주)씨도 이곳에 합류했다. 각각 메밀 부치기 가게 4집, 튀김 가게 4집, 떡집 4집이 들어섰다. 지금은 튀김가게 2집, 떡집 1집이 줄었고 튀김도 만두에서 명절용 음식으로 메뉴를 바꿨다. 부치기 가게만 해도 처음엔 이름도 없었다. 자리도 뽑기로 뽑아 각각 3평씩 4집이 나눠 가졌다. “장사가 잘 된 건 모두가 모여 있었기에 가능했다(용혜경)”는 설명도 이어졌다.
한동안 재래시장이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대형마트가 들어서고 자동차를 타고 장을 보러가는 게 익숙해 질 무렵이었다. 그래도 흔들림이 덜 했던 이곳. “엄마들이 바빠지니까 오히려 장사가 잘 됐던 것 같다”고 말한다. 집안의 큰일은 해야 했지만 직장 생활로 시간은 없던 ‘워 킹맘’들이 주요 고객이었다. 2002년 ‘웰빙’바람이 불면서 지하에도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가세했다. 메밀이 건강에 좋다는 이유였다. 매스컴에서도 여러 번 다뤄지면서 이곳의 인지도가 조금씩 올라갔다.
동부시장 지하의 쉬는 날은 1년에 단 두 번, 설과 추석 명절 당일이다. 그 외에는 대개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동부시장 지하에 불이 꺼질 날은 없다. 윤달이 껴 있거나 아주 춥거나 더운 때가 비수기이기는 하나 알바를 둘 지언정 문을 닫지는 않는다.
일 년에 가장 큰 대목은 설과 추석 명절. 이때를 앞두고는 가족까지 동원돼 밤을 샌다. 그렇게 만들어도 물량이 부족해 오후 4시면 한참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명절만 되면 이렇게 줄을 서서까지 사 갈 정도로 이곳이 북적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로 주인은 달라도 우리가 모두 한데 뭉쳐 있어서 그럴 것”이라는 용혜경씨의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interview
지하 상인들의 말 · 말 · 말
동부시장 지하
가 게 9집(메밀부침 4집, 떡집 3집, 튀김전집 2집)
휴 일 2일(설과 추석 명절 당일)
여는시간 주중 오전 7시30분, 주말 오전 7시경
닫는시간 오후 7시경 *명절과 같은 대목 때는 밤새 불이 켜있기도 하다
가 격 메밀부침·메밀전병 1장당 1,200원
떡 절편의 경우 1kg당 6,000원 한 말에 6만원
튀김·전 100g당 2,500원(맞춤제사음식 25만원)
구호부침
이명옥(63)
나이 먹고도 오래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 과감하게 뛰어든 게 올해로 11년.
이명옥씨는 “메밀전병에 김치소를 더해 쫀득쫀득함을 살린 게 이 집의 특징” 이라고 말한다.
☎ 252-0523
팔호부침
용혜경(54)
친정엄마(김기자·75)가 하던 자리를 물려받았다. 옛 원형시장 시절 부식 집을 운영했고 동부시장 지하로 들어오며 가게를 시작했다.
지하의 아홉 집 중 유일하게 2대째 이어지고 있는 집. 동부시장의 산증인이다.
용혜경씨는 “집집마다 제사가 줄면서 오히려 부침 집을 찾는 이가 늘었다”고 말한다.
☎ 253-6235
춘천부침
안정희(53)
창업주 전영숙(84)씨의 가게를 이어받아 메밀 부침을 한 지 올해로 15년째이다. 명절을 앞두면 온가족이 모두 나와 일을 돕는다. 물론 다른 가게들도 마찬가지.
☎ 256-0083
춘천부침 창업주 전영숙(84)씨
마흔 둘 동부시장 노점 시절에 시작한 ‘메물(메밀)부치기’ 장사를 건강이 나빠져 예순 여덟에 ‘접었’지만 아직도 오후가 되면 가게를 들른다. 장사하던 그때를 “어려웠지만 시장사람들 모두 정 많던 시절”이라고 말하는 그이다.
동부부침
최종순(54)
시어른이 하시던 자리를 물려받아 지난해 4월부터 이곳에서 메밀전을 부치고 있다. 이곳에 자리 잡기 전에는 후평1단지 시장에서 13년간 전을 부쳤다. 최종순씨는 “힘들다는 마음보다 일할 수 있다는 게 더 큰 즐거움” 이라고 말한다.
☎ 257-2850
동부튀김
김복동(64)
이곳에 자리 잡은 지 올해로 20년이 넘었다. 가게 주인이 바뀌고 실제 일을 하는 이들이 두세 번 바뀌는 사이에서도 가장 오래 자리를 지켰다.
튀김만두 가게였던 집을 명절에 쓰이는 전으로 메뉴를 바꾸어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찾는 사람이 많아 몇 년 전부터는 제수용품도 함께 판매한다.
☎ 241-8855
맛자랑튀김
이순옥(59)
잔치음식 이벤트회사를 운영하며 거래처로 오갔던 이곳을 13년 전 인수했다. 이전 사장님이 초기부터 명절에 쓰이는 전을 만들고 있어 그대로 이어갔다.
최고의 맛을 자랑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맛자랑’이란 상호를 달았다.
☎ 254-6698
동부떡집
유봉도(81)
서울에서 살 때 20여 년간 떡집을 운영했고 춘천에 와 다시 시작했다. 지금은 큰 며느리에게 일을 물려주고 소일거리 하듯 들른다. 찰시루떡을 자랑한다.
☎ 254-0777
강릉떡집
서동자(55)·김정혁(28)
이름난 강릉떡집을 지난해 인수했다. 서동자씨 는 “떡이 좋았고 직장 다니던 아들이 함께 하겠다고 해 과감하게 시작했다”고 한다. 햅쌀로 떡 맛을 유지하며 3시간 전까지는 당일 주문이 가능하다.
배달은 든든한 아들 몫.
☎ 254-3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