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 작가가 작고한 지 2년이 되었다.
이외수는 이 나라에서 가장 주목받던 소설가였다. 그가 쓴 소설들은 섬세했고 감성적이었고 도발적이었다.
이외수가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될 때, 그와 나는 한겨울을 자취방에서 보냈다. 나는 그에게 80매 분량의 원고지를 주었다. 여기다 써. 한 장이라도 버리면 안 돼. 네가 메꿔야 할 원고지 칸은 딱 그것뿐이거든. 그는 차가운 방바닥에 원고지를 놓고 엎드려 글을 썼다. 딱 파지 두 장이 나왔다. 나는 그가 쓴 공무원 글씨체 같은 원고를 읽었다. 제목은 <견습 어린이들>이라고 되어 있었다.
소설의 첫머리는 이랬다.
춥다.
그해 우리는 연탄불을 자주 피우지 못하고 살았다. 우리의 좁은 방은 당연히 냉골일 수밖에 없었다. 그날 그는 밤새워 글을 쓰면서 이를 갈았을 것이다.
이듬해 이외수와 나는 헤어졌다.
나는 교육대학에 자퇴서를 내고 전국을 쏘다녔다. 지독히도 추웠던 겨울날, 나는 강원도 탄광촌 골짜기를 배회하며 어머니를 외쳤다.
어머니가 메아리로 답해 주었다. 괜찮다 괜찮아. 그래서 나는 인제군 남면 시골로 돌아와 공무원이 되었다.
3년 후, 갑자기 이외수가 나를 찾아왔다. 그의 모습은 흡사 야귀 같았다. 머리는 산발한 채였고 비틀거릴 정도로 잔뜩 취해 있었다.
그가 불쑥 내민 ‘세대’란 이름의 월간지엔 중편소설 당선작 <훈장>이 무겁게 실려 있었다.
아직도 나는 기억한다. 나직하나 신음 같은 그의 목소리를.
-이 ‘훈장’, 네게 맨 처음 달아주고 싶었어.
그리고 약간의 노기 어린 말투로 말하기도 했다.
-넌 나쁜 놈이야. 화가가 되고 싶은 나를, 주절이 이야기꾼으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내 아버지의 별명은 미친개였다. 덕분에 내게 붙여진 별명은 미친 강아지였다.
이렇게 시작된 <훈장>은 세간의 관심을 들끓게 했다.
문학계는 경악했다. 이외수의 몽환적인 문체는 사람들의 메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셨다. 그리고 작품이 나오는 족족 그의 소설 들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래서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선 이외수의 이야기가 주된 화젯거리였다.
그 후 이외수는 다방면으로 활동했다. 소설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그림도 그려 전시도 하고, 트위터의 황제가 되더니, 드라마 연속극의 주요 배우로 등장하기도 했다.
물론 소설 작품들은 출간되자마자 최고의 인기를 누리곤 했다.
*
이제 나는 훈장 속 마을을 찾아 떠난다.
품걸리.
그곳에 가려면 소양댐에서 배를 타야 한다. 소설 <훈장>에선 80여 명이 탈 수 있는 큰 배였지만, 나는 12명만 탈 수 있는 쾌속선에 올랐다. 날은 쾌청했다. 옛날 배로 한 시간 사십 분이 소요된다고 소설엔 나와 있다.
여러 마을을 돌아 돌아 품걸리까지 닿는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20분이면 충분하다. 직선으로 갈 뿐만 아니라 그만큼 배가 빠르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품걸리로 향하는 쾌속선
주인공 원일은 품걸리로 가는 여객선을 타고 배 안에서 한 사내를 만난다. 그 사내가 앉은 곁에는 수국 한 다발이 놓여 있다. 원일은 사내와 종이컵으로 술을 나누어 마시며 이야기한다. 사내의 이야기론, 폐를 앓던 아내가 작년에 죽어 품걸리 기슭에다 묻었다고 한다. 댐 건설이 완공되고 담수를 시작하자 물이 서서히 차올라 그만 아내의 무덤이 호수 속에 잠겨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의 아내는 수국을 매우 좋아했다. 사내는 수국 꽃잎을 뜯어 호수에 잠긴 아내의 무덤 어디쯤에다 뿌린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그러나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실제로 이외수 작가는 수국을 유난히도 잘 그렸다.)
원일은 사내와 헤어져, 낚시하는 소년에게 품걸국민학교로 가는 길을 묻는다. 소년이 가리키는 쪽으로 마을이 보인다. 원일은 걸음을 옮긴다.
품걸리는 유월의 꽃들로 가득차 있었다
우리는 계곡에서 낚시꾼들이 버린 비닐을 수거하고 있는 할머니를 만났다. 커다란 폐비닐을 혼자서 수거하다니. 말을 건네자 할머니가 천진하게 미소 지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할머니의 고향이 소양댐 상류인 인제군 원통임을 알게 되었다. 아 그럼, 이외수도 나도 인제 사람인데….
알고 보니 할머니는 품걸초등학교 바로 옆에 사신다 했다.
할머니와 헤어져 우리는 포장된 길을 걸었다. 마을 집들은 깔끔했고, 유월의 꽃들이 눈부시게 피어 있었다. 붉은 장미, 황국, 양귀비꽃, 작약과 모란꽃들이 바람에 하늘거렸다. 집집마다 꽃밭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눈은 선량했고, 입가엔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낯선 길손에게 모두 하나같이 친절했다.
마침 들깨 모종 일을 하고 있던 김호성 전 이장님을 만났다. 그는 동네 사람들과 모종판에다 상토를 채우고 있었다. 김호성 님은 춘천 봄내길을 개척한 분이다. 품걸리 오지마을길은 이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우리는 이외수 소설 <훈장>의 무대인 품걸초등학교와 품안분교 길을 김호성 님에게 물었다.
낚시꾼들이 버린 비닐을 수거하는 할머니와 김호성 님
품걸초등학교는 폐교되어 없어졌고, 대신 그 자리에 품안마을 팬션이 들어섰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그것도 방치되어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했다.
“품안분교 가는 길은 시오랑 고개를 넘어야 해요. 지금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길이 사라져 버렸지만.”
김호성 님의 말을 뒤로하고 우린 품안마을길로 접어들었다. 30여 분쯤 걸었을까. 정말 품안마을 표지석이 나타났다. 운동장은 잡초가 무성했고 오렌지빛 지붕의 하얀 건물은 고요했다. 고양이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았다. 햇살만이 투명하게 적막을 껴안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훈장>을 마음속으로 뒤적였다.
비록 <훈장>은 소설이지만, 소설 속 주인공(사실은 이외수 자신이다)이 간 길은 반드시 있으리라 확신했다. 이외수는 여기 품안리를 분명히 다녀간 적이 있었을 것이다. 8년 전인가, 이외수와 나는 느랏재 넘어 품안골이란 외진 곳에서 밤낚시를 한 적도 있었다.
품걸리 마을길 모습
우린 옛 품걸초등학교를 떠나 시오랑 고개를 찾아 떠났다. 나로선 숙연하고 어쩌면 설레는 길이기도 했다. 이외수가 얼마나 외로웠으면 품걸리에서 품안까지 무려 5시간이나 걸린다는 그 길을 밤새워 걸었을까.
밤길을 걷던 소설 속 원일, 아니 이외수는 마을 사람들이 말하는 오솔길이 아니라 산판길 같은 길을 걸었다고 소설엔 나와 있다. 그렇다면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는 잠시 궁리해 보았다. 여기서 길을 멈출 순 없다. 시월엔 소설 속의 길을 다시 걸어보자는 의욕이 나를 은근히 부추겼다.
나는 산과 싸웠다. 산의 고요와 싸웠다. 산짐승들의 울음과 등 뒤로 서리는 참혹함과 싸웠다.
두 개의 산을 넘어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길은 좀 평탄해져 있었다.
어디선가 밤새가 울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내게로 오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 <훈장> 부분
9월이나 시월쯤 나는 이곳을 다시 찾을 것이다.
이외수의 길도 나의 길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위)옛 품걸분교 모습과 현재 모습
최돈선
시인. 춘천시 둘레엔 1개 읍, 9개 면이 있다. 나는 그곳이 궁금하다. 그 고요한 곳에 현자는 있을 것이다. 당산목 같은 우직한 당신의 사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