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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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01

2024-06
#교실에서 보낸 편지 #봄내를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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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공부를 잘한다는 것

모든 부모님은 아이를 공부 잘하게 키우고 싶어 합니다. 아, 물론 제 앞에서는 공부 못해도 좋으니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말로 상담이 시작되지요. 하지만 상담이 길어질수록 속내는 드러납니다.


- 아이가 책을 싫어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아이가 맞춤법을 못 떼서 걱정이에요.

- 영어 학원을 다니는데 영어가 안 늘어서 걱정이에요.


아이들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고 있습니다. 어떤 글이 많이 읽히는지를 보여주는 통계기능이 있더군요. 그걸 보고 놀랐습니다. 아이들의 사회성, 배려, 공감 능력을 키워주는 글보다 공부법 관련 글들이 훨씬 많이 읽혔더군요. 다들 공부에 관심이 많으신 듯합니다.


똑똑한 아이 = 공부를 잘하는 아이 = 성적이 좋은 아이?


저학년 아이들은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왜 그런 생각을 할까요?


- 저는 책을 많이 읽어요. 집에서 맨날 두 권 이상 읽어야 하거든요.

- 엄마랑 춘천박물관에 또 갔어요. 작년에도 갔었는데.

- 학습지를 해요. 선생님 오시는 날은 죽었어요. 숙제를 해야 되니깐.


<아는 게 많은 아이 = 똑똑한 아이>를 부모님 시각으로 바꾸면 이렇겠군요. <아는 게 많게 키운 아이 = 성적 잘 나오는 아이> 교실에서 이 등식은 일치할까요? 가르치는 처지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는 아는 게 많은 게 아니라 끝까지 잘 듣는 아이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잘 들을까요? 퀴즈를 내보겠습니다. 쉬운 문제지만 끝까지 잘 듣지 않으면 어려운 문제를요. 문제를 한 번만 들려줄 거라고 말하고 천천히 또박또박 들려줍니다.


<더듬이가 있고 날개가 노란색, 하얀색, 검은색 등 여러 가지인데 아름다워요. 벌과 함께 꽃에 많이 날아와요. 정답은 두 글자로 모두 받침이 없어요. 정답이 무엇인지 국어책 13쪽의 맨 위 오른쪽 구석에 답을 쓰세요.>





아이들은 정답이 '나비'인 걸 다 압니다. 바로 몇 분 전에 나비에 대해 배웠거든요. 자신 있는 표정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급했군요. '나비'라는 정답을 쓰고 싶은 마음이 앞서다 보니 '국어책 13쪽의 맨 위 오른쪽 구석에'라는 말까지는 못 들었네요. 첫 문제에 대한 정답을 맞힌 아이는 21명의 아이 중 3명이군요. 집중해서 듣는다는 게 그만큼 어렵습니다.


<선생님은 남자일까요, 여자일까요? 정답을 국어책 110쪽에 나오는 그림 중 단풍나무를 찾아 그 아래에 쓰세요.>


이 문제 역시 쉽습니다. 하지만 답을 알아냈다고 생각하는 순간, 뒤에 이어지는 다른 내용은 잘 안 듣습니다. 결국 똑똑한 아이는 끝까지 잘 듣거나 읽는 아이입니다. 문제가 끝날 때마다 저는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 줍니다.





"똑똑하다는 건 아는 게 많은 게 아니라 끝까지 잘 듣는 거야."


이 말이 반복될수록 아이들도 변해갔지요. 10개의 퀴즈가 지나가자 모든 아이가 정답을 맞혔습니다. 끝까지 듣기 연습이 된 셈입니다. 고작 30여 분의 활동이었고, 아이들 특성상 곧 원상태로 돌아가겠지만, 이 경험이 집중에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가정에서도 이런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양말을 서랍에 정리하거나 설거지 한 접시를 크기별로 선반에 정리하게 하는 거지요.

퀴즈를 내는 동안 정답을 맞히지 못해 속상해하는 아이가 있더군요. 책도 많이 읽고 배우는 것도 많아 답을 아는데 인정받지 못했다면서요. 매정하지만, 저는 같은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똑똑하다는 건 아는 게 많은 게 아니라 끝까지 잘 듣는 거야."


상대의 말을 끝까지 정확하게 못 듣는 아이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지시형, 단답형 대화가 오가는 양육 환경이 문제라고 합니다. 가정에서 부모님 말씀을 끝까지 안 듣는 아이가 학교에서는 문제를 끝까지 듣기는 어렵습니다. 얼마나 안정적인 환경에서 유아기를 보냈느냐가 공부에 영향을 미치는 셈입니다.





<교실에서 보낸 편지>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성원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송주현

만천초등학교 교사. <나는 1학년 담임입니다>, <착한 아이 버리기>, <초등학교 상담기록부> 저자. 33년째 아이들 가르치면서 함께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