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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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01

2024-06
#앉아서 세계속으로 #봄내를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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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도시 페낭



백 년 넘은 영국식 건축물과 한자 간판이 즐비한 거리. 향내 가득 중국 사찰 옆 이슬람 사원의 기도 소리, 조금 더 걸어가면 알록달록 힌두교 사원이 있고, 화려한 인도 의류와 장신구 파는 상점. 신기하게 구경하는 서양인들.



페낭거리



말레이시아 페낭에 왔다. 그중에서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옛 시가지 조지타운을 여행한다. 페낭은 쿠알라룸푸르 서북쪽 300km 부근에 있는 도시다. 1786년 영국이 이 지역을 식민 통치하며 인도, 중국에서 많은 노동인구가 들어왔고 그들의 후손이 뒤섞여 살고 있다. 당시 중국인들은 세금을 피해 바다 위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수상가옥이 지금까지 남아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거리에는 벽화가 가득하고 교회부터 이슬람, 힌두, 도교 사원까지 이웃해 있는 게 신기하다. 길거리만 걸어도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느낌이다.



수상가옥



돔 형식의 지붕이 특징인 이슬람 사원을 방문했다. 아름다운 외관과 달리 내부에는 막상 아무것도 없어 당황스럽다. 널찍한 예배당만 있고 그림이나 조형물도 없다. 이슬람에서는 우상숭배를 엄격하게 금지해 성화나 성상마저 만들지 않아 그런 듯싶다. 회백색의 이슬람 사원과 달리 힌두교 사원은 총천연색의 향연이다. 무지개색을 층층이 쌓은 탑에 그들이 믿는 신들을 모두 형상화하여 그림으로도 그리고 조형물로도 만들었다. 꾸밈과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데 그들의 경험 세계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것을 다 쏟아부었다는 생각이 든다.

도교 사원에는 중국계 사람들이 기복과 안위를 빌며 향을 피운다. 실존 인물과 신선들을 형상화해 사원을 꾸며 놓았다. 이를 믿는 길가의 상점들은 가게마다 작은 사당을 만들고 향을 꽂아 놓았다.



회색빛 이슬람 사원


힌두교 사원



페낭은 음식문화도 다양해 여러 상점에서 음식을 주문해 먹는 호커 센터(일종의 푸드코트)가 발달했다. 세계 모든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식 도시로 유명한데 선의의 경쟁 덕분인지 다 맛있다. 아쌈 락사라는 음식을 먹었는데 꼭 꽁치 김치찌개 맛이다. 무엇을 먹어도 내 경험에서 비슷한 걸 끄집어내게 된다.

이곳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과 문화를 지키면서 공존한다. 작은 조각들이 하나의 모양을 이루는 모자이크 도시 같다. ‘다양’이라는 단어를 도시로 만든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오케스트라는 악기마다 고유의 음정을 정확하게 낼 때 어우러지는데 다문화 사회도 그런 것 같다.





비행기에서 친해진 현지인에게 물었다. 

“이토록 다른 사람들이 모였는데 갈등은 없나요?”

인도계 힌두 여성인 와니가 말했다.

“어쩔 수 없이 갈등도 있지만 지금은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살아가요.” 

소수자에 대한 차별 인식을 측정하는 <세계 가치 조사>에 따르면 '다른 인종과 이웃이 될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답한 비율이 스웨덴은 2.8%, 미국은 그 두 배인 5.6%였다. 한국에서는? 무려 34.1%가 그렇게 답했다. 인간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막연하게 두려워하기 마련인데, 대부분은 대상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알면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다. 다름을 수용한 이 나라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하철 한가운데에 있는 Priority seat(우선 좌석)였다. 노약자, 장애인, 임신부 등을 위한 자리인데 ‘배려석’이라는 이름으로 양 끝에 있는 우리나라와 사뭇 달랐다. 다름에 대한 인정이 소수자, 약자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진 건 아닐까?

여행은 계속해서 다름을 확인하는 과정인 것 같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이해가 어려워도 존재 자체를 인정하게 된다. 낯섦 속에서 닮은 점을 찾고, 모두 이어져 있음을 역설적으로 깨닫는 것. 그렇게 여행을 통해 나의 세계를 넓혀간다.





김병현

지구별 여행자. 삶을 벗어나는 관광이 아닌 삶을 경험하는 여행을 지향합니다.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것보다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