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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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01

2024-06
#최돈선의 둘레마을 이야기 #봄내를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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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한 송이 꽃이 피어 있었네



5월 2일 아침 9시 57분. 우리는 오봉산을 오른다. 일행은 다섯이다.

오봉산은 산림청이 선정한 우리나라 100대 명산 중 하나로 꼽힌다. 높이는 779m. 다섯 봉우리가 솟아있다 하여 오봉산이라 불린다. 원래 이름은 청평산이다. 다섯 번째 봉우리를 넘어 해탈바위를 통과하면, 계곡 바로 아래쪽 기슭으로 청평사가 자리하고 있다.


일행 중 팀장님이 앞장을 서고, 네 번째 걷는 내 뒤로 사진작가 윤현 님이 따른다. 나를 편의상 ‘천천히’로 부르련다. 윤현 이분은 사진을 담아야 하기에 맨 뒤에 있을 수밖에 없지만, 산행을 하면서 시종일관 ‘천천히’를 요모조모 도와주었다.

군대서 UDT대원으로 복무한 분이다. 늘 안전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천천히’는 걸음도 느리지만, 무슨 볼거리가 그리 많다는 것인지 이것저것 참견질이다.

나란히 ‘한 씨’여서 여기에선 두 ‘한한’ 님이라 부르련다. 이분들은 마치 날아다니는 선녀 같다. 사뿐사뿐 그 걸음이 너울진 파도를 넘나들 듯이 걷는다. 팀장님은 산행의 달인이어서 일정한 보폭으로 묵묵히 걷는다. 

자, 이렇게 우리 다섯은 오봉산을 오르고 내리고 숲의 터널을 나아간다.

이 오봉산의 특징은 철쭉꽃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4월에 왔다면 온통 분홍색 꽃의 바닷속을 거닐었을 터이다.





동그란 이파리가 다섯 개로 쫙 펼쳐진 이 나무는, 4월 중순이면 발그레한 분홍빛으로 온통 산을 물들인다.

이 분홍꽃은 우리나라만의 특징인 듯싶다.

그래서일까. 

우린 김소월 시인의 ‘산유화’를 생각한다.

산유화는 특정한 존재의 꽃 이름이 아니다. ‘산에 피는 꽃’이란 뜻이다.

산유화는 노동요이기도 한데, 풀피리나 퉁소로 신나게 불어 젖히는 ‘메나리 가락’을 이름한다. 

김소월의 시 ‘산유화’를 우리나라 민요조의 대표적 서정시로 꼽는 이유는, 우리 가락이 겨레의 마음속 깊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소월의 시 산유화는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 꽃이다.

나는 윤현 사진작가가 외로운 꽃 한 송이를 카메라에 조심스레 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정말 혼자서 피어 있는 꽃이었다.

그토록 번성했던 철쭉꽃의 때가 지나고 누가 철쭉꽃임을 알 수 있으랴 싶은 곳에, 그 꽃은 피어 있었다. 고독했고, 아름다웠고, 처연했다.


이 고고한 철쭉나무는 전생의 무엇이었을까. 누구나 다투어 피던 꽃잔치를 슬쩍 비키어, 꽃들이 소멸한 공허의 자리에서 슬며시 한 송이 꽃을 피워낸 뜻은?

무슨 사연이, 무슨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일까. 아니다. 없다.

그냥 그렇게, 거기에 있고, 그냥 그렇게 때맞춰 피었을 뿐이다. 그게 자연의 순리가 아닌가. 윤현 작가의 숨결이 닿았는지 분홍 철쭉꽃은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듯싶었다.


1봉을 오를 때가 가장 긴 시간이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1봉이란 표지석을 보았을 때, 나는 하나,라고 조용히 읊조렸다.





‘오름’이란 말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 ‘오름’이란 말엔 내림이란 동행자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올랐으면 그만큼 내려와야 한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조지 말로리란 사람이 있었다.

1921년 그는 에베레스트 최초의 원정대에 참가했다. 그러나 실패였다. 두 번째엔 10명의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1924년 마지막 원정을 떠날 때 기자가 물었다. 왜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려 하느냐고.

그러자 말로리는 귀찮은 듯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산이 거기 있으니까.”

이 말은 두고두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 되었다.

말로리의 시신은 1999년 5월 1일 발견되었다. 실종된 지 75년 후였다.


동양의 사상엔 산을 정복한다는 말은 쓰지 않는다.

노자의 무위無爲엔 ‘자연의 흐름에 따라 물 흐르듯 행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균형과 조화, 순리가 자연의 바탕에 숨 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려가고 오르고, 내려가고 오르고를 반복하다 어느새 5봉에 다다랐다.

인생도 이렇게 높낮이가 있고, 음악도 이렇게 높낮이의 선율이 있으므로 아름다운 걸까.


오다가 우린 마른 고목을 보았다. 고목은 이 산의 역사였다. 고목은 고독자여서 방랑하는 순례자를 침묵으로 굽어보곤 했을 것이다.

그러면 순례자는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자신의 길과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오다가 우린 길 위에 뻗어있는 나무뿌리를 밟았고, 그 나무뿌리는 반질반질 윤이 났다. 저렇게 빛나는 뿌리 속엔 자기희생의 고통이 감춰져 있는 법이다.

그 고통과 인내를 사람들은 알고나 있는 것일까.

오다가 우린 바위산을 오르고 내렸다.



마른 고목



바위는 굳건했고, 바위는 묵언수행 중이었다. 어디선가 독경소리가 들리는 듯도 싶었다.

오봉에서 바라본 신록의 산과 소양댐 호수가 오후의 햇살에 반짝였다. 신록은 싱그럽게 짙푸른 냄새를 끼쳐왔다. 녹색의 파도가 바람에 밀려 코끝을 자극하자 오랜 산행에 지친 산객들의 심신이 쇄락해졌다.


이제 내려가야 한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해탈문에 다다랐다. 내려가는 길에 놓인 바위틈이 사람 한 몸 겨우 통과할 정도의 폭이어서 그 바위를 해탈바위라 한다 했다.

해탈이란 번뇌의 얽매임에서 풀리고 미혹의 괴로움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고 국어사전에 풀이되어 있다. 한 단어로 말하자면 ‘나를 깨달음’이고, ‘마음의 자유를 얻는 길’이다.

하지만 해탈문을 통과하자 두 갈래 길을 만났다. 어느 쪽으로 길을 잡아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팀장님이 일행 중 누구도 가보지 않은 계곡 쪽을 택했다. 우리도 묵묵히 팀장님의 발걸음을 따라 내려갔다.

험난했다. 게다가 곳곳이 공사 중이었다. 산일을 하는 인부들도 보이지 않았다.

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은 법이다. 얼마쯤 하산을 했던 것일까. 축축한 물기가 밴 계곡을 조금 내려가니 맑은 물들이 고여 흐르기 시작했고, 계곡은 점점 짙푸름으로 어두워졌다. 작은 폭포와 이끼 낀 큰 바위들, 진락공 세수터, 식암폭포를 지나 아름다운 선경의 계곡을 만났다.

언제 어디서 이리도 맑고 큰 물이 나온 것일까. 그런데 문득 나는 또아리를 튼 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얼핏 보아 뱀 같았다. 그 옆으로 넓적한 큰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가 혹시 공주바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뱀은 나무가 되어 있는 듯했고, 바위는 공주의 형상으로 어른거렸다. 아, 어쩌면 공주와 뱀의 전설이 사실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해탈문


뱀나무와 공주바위



청평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55분.

계곡은 이미 그늘이 졌어도 청평사 앞의 야광나무는 섬광처럼 눈부셨다.



청평사


구곡폭포





최돈선

시인. 춘천시 둘레엔 1개 읍, 9개 면이 있다. 나는 그곳이 궁금하다. 그 고요한 곳에 현자는 있을 것이다. 당산목 같은 우직한 당신의 사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