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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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01

2024-06
#춘천은지금 #봄내를만나다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템플스테이
춘천의 템플스테이




‘디지털 단식’, ‘디지털 디톡스’라는 단어가 미디어에서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단어들이 낯설었다. 단식할 만큼 ‘디지털’ 과잉인가 스스로 되물었고, 이내 수긍했다. 나부터도 짬이 나면 도파민을 찾아 SNS를 헤매고 있었다. 관련 뉴스를 찾아보니, 서울에는 들어갈 때 휴대폰을 내고 나갈 때 찾는 카페가 인기 있고 정보 과잉에 질린 20대에게 ‘비움’과 ‘느림’을 경험하게 해주는 템플스테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춘천의 템플스테이를 찾아보니 청평사와 삼운사 두 군데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이곳이라면 디지털 단식도 가능하고, 바쁜 일상에 쉼표 하나 찍고 갈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춘천의 두 사찰을 찾은 봄내 기자의 템플스테이 체험기를 공유한다.









첫 템플스테이를 앞두고 막막했다. 종교인도 아니라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다녀와야 할지 걱정이 됐다. 먼저, 템플스테이를 체험하며 디지털 단식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가져가야 할 것과 가져가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생각했다. 휴대폰이 없다면 긴 시간 무엇을 하고 싶을까. 시를 읽고 싶었다. 천천히 문장을 곱씹으며 사색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도서관에 가서 황동규 시인의 시집을 빌렸고, 휴대폰 충전기는 집에 두고 출발했다.











청평사는 소양강댐에서 배를 타고 갈 수도 있고 시내에서 자차를 이용해 갈 수도 있는데 나는 차를 가지고 갔다. ‘청평사 관광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25분을 걸어야 청평사가 나온다. 짐을 별거 챙기지도 않았는데 가방이 너무 무거웠다. 뒤로 메는 가방, 옆으로 메는 가방의 무게가 체감상 10kg은 되는 것 같았다. 이것이 수행의 시작인가. 이 짐이 내 인생의 무게인가. 온갖 잡다한 생각을 하다 보니 거북바위를 지나고 구송폭포를 지나 숙소 앞에 도착 했다. 숙소를 안내받고 짐을 푸는데 담당 팀장님에게 다른 참가자가 날짜를 착각해 못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늘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나 한 명이였다. 묘한 해방감과 자유가 밀려왔다. 옷을 갈아입고 대웅전에서 인사 예절을 들었다. 절에서 이동할 때는 기본적으로 양손을 모으는 차수(흩어지는 마음을 한군데 모으는 동작) 로 다니고, 스님을 마주쳤을 때는 합장으로 인사하라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절하는 방법, 법당 출입 예절, 예불 방법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5시 30분에 맞춰 저녁 공양을 했다.











6시 30분이 되자 스님이 종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녁 예불을 하러 대웅전에 들어오셨다. 난 뒤에서 지켜보다가 108배에 도전하기로 했다. 108배는 절에 머무는 동안 아무때나 원하는 전각(법당)에서 해도 된다고 했다. 홀로 덩그러니 앉아있는 모습이 적적해 보였는지, 스님이 내게 말을 거셨다. “처음이에요? 속으로 읽지 말고 문장을 소리 내서 읽어봐요” 스님의 권유에 나는 108배가 낯선 사람들을 위해 만든 길라잡이 책자를 펼쳤다.




“내가 아는 모든 생명을 깊이 공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절합니다”를 시작으로 문장을 하나 읽고, 절 한 번 하고, 구슬 하나를 줄에 뀄다. 나를 백여덟 번 돌아보게 하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그렇게 대웅전 안에서 스님과 나는 각자의 수양에 집중했다. 나중에는 스님의 예불 소리가 내 108배를 응원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108배를 끝내고 나오니 청평사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문장을 읽으며 떠올렸던 내 고민과 다짐이 이 곳 구석구석에 내려앉은 것 같았다. 그래서 어스름한 청평사를 한 바퀴 돌고 숙소로 돌아왔다. 잠시 쉬고 나니 10시. 책을 읽을까 뒤적였지만, 108배의 여운이 짙어 책자의 문장을 다시 한번 되뇌었다. 그리곤 금세 잠이 들었다.












7시 아침 공양에 가기 위해 6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났다. 절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조경을 정비하는 분, 밭을 가꾸는 분, 아침 공양을 준비하고 내어주는 분들이 활기차게 움직였다. 한번도 안 깨고 푹 잔 덕인지 어제 저녁밥보다 많이 먹었다.








숙소에서 절까지는 걸어서 3분 정도 걸린다. 9시에 맞춰 ‘스님과의 대화’를 하러 가는 길이 살짝 긴장됐다. 일대일로 스님과 차를 마시다니, 너무 소중하고 특별한 기회 아닌가. 처음 보는 스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꽃 향이 나는 홍차를 내어주고 잠은 잘 잤는지, 처음 해본 템플스테이가 만족스러운지, 108배가 힘들진 않았는지 내 안부를 살펴주셨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가고 나는 평소 고민을 조심스레 꺼냈다. “스님, 가끔 제 정신이 과거의 집착과 미래의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걸 느껴요. 그럴 때면 정신을 지금으로 가져오기 위해 노력하긴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현재에 집중 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스님은 ‘알아차리는게 먼저’라고 하셨다. 지금 내 마음이 현재에 있지 않고 과거나 미래에 가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 대부분은 그것도 모른 채로 살아가고 있다고.





다음은 호흡명상을 알려주셨다. 심호흡을 세 번 하고 1부터 10까지 세면서 내 호흡에 집중해 보라고 하셨다. 쉬울 줄 알았는데 자꾸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와 집중 하기가 힘들었다. “다른 생각이 들어도 자책하지 마요. ‘다른 생각이 들었네’하고 알아차리는 순간 호흡에 집중하고 그러다 다른 생각이 들면 또 알아차리고 호흡에 집중하면 돼요. 생각이라는 건 영원히 지속되지 않아요. 생각을 잘 관찰해보면 두서 없이 일어났다 사라져요. 이걸 알아차리면서 깨어있는 것이 중요해요. 호흡에 오로지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잡념 없이 집중하는 힘도 커집니다. 그럼 사물을 있는 그대로 선명하게 보게 돼요.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내 선입견과 편견이었다는 걸 알게 되죠.”





스님과의 대화를 마치고 나니, 충만한 감정이 흘러내릴 정도로 꽉 채워진 기분이었다. 일상에 돌아가서도 이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다. 하루 동안 머물렀던 방을 정리하고 숙소 옆의 찻집에서 나의 첫 템플스테이를 되돌아봤다. 아뿔싸, 휴대전화를 안 보긴 했는데 빌려온 책도 안 봤네. 두 시간 동안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챙겨온 시집을 읽고 내려왔다.










삼운사의 템플스테이를 앞두고 나는 조금 자신감이 붙었다. 고작 한 번 다녀왔을 뿐인데, 특별히 무언가를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내면의 충만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 휴대폰을 보지 않는 것도 생각보다 할 만하다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삼운사에 문의를 해보니 내가 참여하려는 날짜에 ‘청춘 템플스테이’를 진행하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에 일반 참가자로 함께해야 한다고 하셨다. ‘청춘 템플스테이’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5월 한 달간 1만 원에 (보통 템플스테이는 사찰마다 다르지만 6만원에서 10만 원까지 참가비가 다양하다)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학업에 지친 대학생을 위해 올해 처음 시행해 보는 거라고. 첫 ‘청춘 템플스테이’에 참여 할 수 있다니! 이런 행운이! 사람이 많은 템플스테이는 어떨지 기대를 품고 토요일 오후, 삼운사로 향했다.











삼운사는 도심 안에 있어서 어린이나 어르신,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편하게 방문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사찰이 크고 넓어 4층 법당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후평동에 위치해 집 앞에 마실 나가듯 걸어갈 수도 있고 삼운사까지 가는 시내버스도 많았다. 아침부터 흐리더니 오후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이 비를 피해 단청 밑에 모여들었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 친구들이랑 온 사람, 연인, 자매 등 다양했다.





어색한 기운은 팀장님이 나오면서 사라졌다. 한 명씩 이름을 불러 숙소를 알려주셨다. 숙소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모두 2층 금불대교실에 모였다. 우리는 22명이었다. 가장 멀리서 온 사람을 묻자 안동, 김해에서 온 참가자들이 대답했다. 그리고 불교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삼운사가 자리 잡은 봉의산은 예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봉황의 정기와 명당의 기운이 있다는 것, 인도 왕자였던 석가모니가 출가해 35살에 깨달음을 얻은 것 등의 강의를 듣고, 4층 법당으로 올라갔다. 삼운사 앞을 지나친 적은 많지만, 내부에 들어와 본 건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규모가 거대했다. 법당 예절에 따라 옆문으로 들어갔는데 얼마나 넓은지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걸어가는데 한참이 걸렸다. 벽면을 채운 벽화와 천장의 단청 구경에 두리번거리면서 우리 모두 나란히 대열을 맞춰 앉았다. 법당에서는 벽화의 의미와 법당 예절까지 듣고 5시 30분에 맞춰 저녁 공양을 했다.












7시에 다시 모여서 소원등을 만들었다. 작은 등을 조립하고 아래로 떨어지는 잎에 소원을 적는 거였다. 날씨가 좋았으면 바로 등을 달았을 테지만,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다음날 오전에 달기로 하고 모두의 소원을 하나씩 들어봤다. 참가자들이 대학생이어서인지 시험 합격, 편입 성공, 다이어트 성공, 좋은 인연, 가족 건강이 대부분이었다. 그중 인상 깊었던 소원들이 있었다. ‘망설이지 않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좁은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용기를’. 내 스무 살의 방황이 생각나 그들을 마음 속으로 응원했다.





4층 법당에 다시 올라가 함께 108배를 올렸다. 팀장님은 소원등의 소원은 ‘나를 위한 소원’으로 적었지만, 108배는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경험을 해보면서 공덕을 쌓는 시간이 될 거라고 하셨다. 서른다섯 명을 생각하며 복을 빌고 마지막엔 나의 기도를 올리라고 하셨다. 총 36명을 위한 기도로 이루어진 108배였다. 한 명을 생각하며 절을 세 번 하고(삼 배) 구슬 세 알을 끼웠다. 서른여섯 번을 반복했다. 각자의 속도대로 108배를 마치고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화려해진 삼운사를 둘러보고 숙소에 복귀하니 10시였다.










친구, 연인, 형제끼리 온 참가자들은 밤새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지 절반 정도만 아침 공양에 왔다. 재밌는 점은 참가자를 고려해서인지 메뉴에 빵과 요구르트가 있었다.





둘째 날 첫 일정은 아침 명상이었다. 오디오 안내에 따라 5분 명상을 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전날에 만들었던 소원등을 마음에 드는 위치에 달았다. 이미 나무에는 수십 개의 소원등이 달려있었다. 다른 사람의 소원도 구경하고 일광욕도 하며 자유시간을 보냈다. 춘천에서 온 20살 두 친구는 SNS에서 템플스테이에 참여할 대학생을 모집하길래 신청했다고 했다. 수험생 때부터 오고 싶었는데 만 원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해서 이때다 싶었다고. 처음 와봤는데 생각보다 108배가 할만했다고 했다. 또 남양주에서 온 20살, 22살 자매 역시 템플스테이에 처음 참여해 봤다고 했다. 세상은 시끄럽고 매일 이야기가 쏟아지는데, 그런 일상과 분리된 느낌이라 차분해서 좋았다고. 특히 108배가 가장 좋았는데 잡념이 사라지면서 지난 시간들을 돌아볼 수 있었고 ‘내가 이렇게 행복을 빌어주고 싶은 사람이 많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다고 했다.






마지막 일정은 차담이었다. 교법사님은 오감을 활용해 차를 마셔보라고 하셨다. 차를 손으로 감싸 쥐었을 때 느껴지는 온기, 잔을 코끝에 가까이 붙였을 때 맡을 수 있는 향, 목 넘김 후 느껴지는 맛, 여기에 마음도 곁들이면 더 좋다며 각자 좋은 생각과 함께 마셔보라고 하셨다. 이번 템플스테이 여행이 ‘몸의 여행’만이 되지 않도록, 평소 하던 생각과는 다른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마음의 여행’까지 되길 바란다고. 교법사님과 우리 스무명은 둘러앉아 한 시간 더 차를 마셨다. 템플스테이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 각자 고민은 무엇인지 등의 대화를 나누고 마무리했다.





삼운사는 2007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18년째 템플스테이를 운영 중이고, 청평사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한지 이제 1년째라 앞으로 프로그램을 차차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템플스테이를 다녀와 보니, 머무르며 느끼는 감정도 중요하지만 다녀온 이후 어떻게 살아갈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답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어지럽혀진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언제나 깨어있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단 다짐을 했다. 정신적 피로도가 높거나 나태, 무기력한 사람 그리고 도파민 디톡스를 원하는 사람들한테 ‘나를 위한 행복 여행 템플스테이’를 추천한다.








청평사   244-1195

삼운사   253-6542

템플스테이 정보    templest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