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검색 닫기

VOL.400

2024-05
#앉아서 세계속으로 #봄내를품다
-
있는 그대로 봄의 도시, 달랏



나짱에서 슬리핑 버스를 타고 도착한 달랏. 기대가 많았다. 고지대에 위치해 1년 내내 기온이 온화하다는, 그래서 '영원한 봄의 도시'라는 별명을 지닌 달랏. 커다란 호수가 있고, 인구 30여만의 중소도시라는 것까지 춘천과 닮았다. 아니나 다를까. 달랏은 2019년 춘천과 자매결연을 맺은 자매도시다.

작은 호텔에 짐을 풀고 산책을 나섰다. 오토바이와 차, 보행자가 뒤섞인 길을 건너며 이십 분 정도 걸으니 쑤안 흐엉 호수다. 둘레가 5km 정도 되는 꽤 커다란 인공호수인데 베트남어로 '봄의 향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색색의 조명이 켜지고, 오리배들이 정박해 있는 게 꼭 공지천과 닮았다. 감상

에 젖는 것도 잠시, 엄청 큰 쥐가 곁을 스쳐 간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쓰레기가 함부로 버려져 있고, 죽은 물고기들도 둥둥 떠 있다.

다음날, 호숫가를 따라 달랏 기차역까지 걸었다. 도시의 민낯이 보다 자세히 보인다. 호수로 합류되는 습지에서 쓰레기와 하수가 끊임없이 흘러 들어간다. 둑에는 쓰레기 무더기가 이어져 있고 냄새도 심하다. 개들이 쓰레기를 뒤진다. 달랏, 생각보다 더러운걸. 

밤에는 마트에서 도시락을 사 람비엔 광장에서 호수 야경을 보며 저녁을 먹으려 했다. 도시락 뚜껑을 여는 순간, 손가락만 한 바퀴벌레들이 떼 지어 돌아다닌다. 으악! 여기서 뭘 먹는 건 아니다 싶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도 쥐와 바퀴, 쓰레기는 계속 나타난다. 아, 생각보다 실망인데.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여기 왜 왔지?"

달랏의 첫인상이 무색하게 호텔 사장님은 무척 다정했다. 내외분 모두 한국어를 조금 하시는데 매일 과일도 주시고, 근처의 맛있는 식당도 소개해

주셨다. 언덕 골목길은 정감 있었고, 저녁에는 선선해서 딱 걷기 좋았다. 숙소에서 낮잠을 자면 평화롭게 새가 지저귀었다. 하루는 구름사냥을 나섰다.





고산 지대에 올라 일출과 함께 산 아래 깔린 구름을 감상하는 여정이다. 택시를 타고 새벽 5시쯤 도착하니 어슴푸레 하늘이 밝아지며 환상적인 색이 세상을 물들인다. 발아래로는 운해가 가득하다. 운 좋게 일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매일 뜨는 해인데 특별하다. 현지인들도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소중한 순간을 담는다. 여기서 먹는 컵라면은 얼마나 또 꿀맛인지. 살면서 이런 풍경을 또 볼 수 있을까?

다딴라 폭포에서 캐니어닝도 했다. 로프 하나에 의지해 계곡을 따라 급류와 암벽을 타고 폭포를 내려오는 레포츠다. 영어로 진행된 투어에 반 이상은 못 알아듣고 정신없이 물을 먹었지만, 어쨌든 끝까지 해냈다. 여행을 하니 살면서 못해본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세상이 신기하고 하루가 소중하다.

생각해 보니 달랏은 그냥 그렇게 존재했던 거다. 수만 년 넘게 구름 위로 해가 떠올랐을 것이고, 폭포는 세차게 떨어졌을 거다. 며칠 머물다가는 여행자 처지에 이 도시를 함부로 평가해도 될까? 기대도 실망도 내 안에 있었던 거다. 더럽게 보일지언정 호수와 광장은 저녁마다 시민들이 모이는 소중한 휴식처였다. 이 소박한 마을에 쓰레기를 잔뜩 버린 건 우리 같은 관광객일지도 모른다. 달랏의 이상한 매력에 예정보다 이틀을 더 머물렀다. 친절한 호텔 사장님은 손수 전화를 걸어 우리의 버스 여정을 변경해 주셨다. 이제 지도도 안 보고 숙소 주변을 산책하고, 식당에서 주문도 척척하고, 신호 없는 횡단보도를 오토바이 사이로 물 흐르듯 건널 수 있다. 그러는 동안 달랏은 봄의 향기를 더 진하게 풍겨 왔다.

호찌민으로 가는 슬리핑 버스에 누워 이 글을 쓴다. 낯선 도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이 긴 여행이 끝나면 세상도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있는 그대로.




달랏 구름사냥


다딴라폭포





김병현 

지구별 여행자. 삶을 벗어나는 관광이 아닌 삶을 경험하는 여행을 지향합니다.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것보다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