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검색 닫기

VOL.400

2024-05
#최돈선의 둘레마을 이야기 #봄내를품다
-
댐으로 가는 길

춘천은 세 개의 댐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호반의 도시다.

춘천댐은 화천강의 물길을 가두고 소양강댐은 양구 인제 소양강의 물길을 받아서 가둔다. 이 두 댐의 수로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의암댐이 모두 받아서 품는다. 이 인공호수는 하늘을 받아들이고, 산을 받아들이고, 아침이면 안개 같은 구름꽃을 피워낸다. 드디어 봄이 왔다. 4월이다. 아직 산은 대부분 회색빛에 잠겨 있다. 하지만 군데군데 산벚꽃 붉은빛이 연두색 산을 엷게 물들인다.


이런 날 나는 댐으로 가기로 마음먹는다.

오늘따라 벚꽃 활짝 틔운 길을 나는 걷고 싶다. 화르르 쏟아져 내리는 꽃비에 나는 흠뻑 젖어보고 싶다.





댐으로 가는 길에 한 통의 카톡 편지를 받는다. 개나리미술관 소식이다. 거기에 화가들이 샛노란 개나리처럼 웅성웅성 모여있을 것이다. 한동안 못 보았던 얼굴들을 만난다는 설렘에 개나리미술관으로 향한다.

그러나 웬걸! 화가들은 없고 덩그러니 그림과 조각품만 고즈넉이 잠겨 있다. 묵상하듯 앉아있던 정현경 관장이 홀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이한다.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개나리미술관 모습


관장은 ‘사이로 숲’으로 가라고 손짓한다. 그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대룡산을 가리킨다.

그곳에 가면 화가들이 있을 것이고, 저녁 무렵 이 개나리미술관으로 올 거라 했다.


나는 대룡산 기슭으로 떠난다. 대룡산은 여전히 기운이 서늘하다. 비원 祕苑 같은 숲 사이를 지나자 탁 트인 넓은 마당이 펼쳐진다. 큰 건물과 한 채의 작은 목조건물이 보인다. 마법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난로 옆에 긴 나무 탁자를 사이에 두고 화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투명한 유리 주전자 안에 두 송이 꽃이 화사하게 담겨 있다. 아니, 피어 있다고 해야 하나? 그 꽃이 금색 빛깔을 서서히 우려낸다. 금잔화 꽃차다. 서숙희 화가가 특별히 대접하는 이 금잔화 꽃차는 달콤하고 향긋하다. 허브잎이 곁들여진 차이기 때문이란다. 몇 모금 마시면서 화가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오늘 <사이로 숲>이 처음 문을 여는 날이라 한다.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니 동화의 세계처럼 세상이 밝아 보인다. 햇빛은 맑다. 동화 같은 나무집도 전시장 건물도 목수가 손수 지은 것이다. 그런데 목수가 자리에 없다. 김영훈 판화가는 그에 대한 호칭을 목수라 부르지 않고 목공예작가라 부른다. 

판화가 김영훈, 화가 이재복, 목공예작가 원유선이 마음을 합쳐 만든 미술관이다. 목공예작가는 추운 겨울 동안 난로에 불을 활활 피워놓고 뚝딱뚝딱 <아트스페이스 사이로>를 만들었다. 화가 둘이 그를 도왔다.

한겨울에도 난로의 불꽃이 따뜻하게 주위를 녹였다. 이제 그 불꽃이 벚꽃을, 모란꽃을, 참꽃을, 개나리꽃을 톡톡 피워내고 있다. 신비한 일이다.

서늘한 불꽃이 대룡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꽃들아, 꽃들아. 이들이 초록을 불러오고 이들이 4월의 훈풍을 불러오고, 이들이 호수의 물결을 가르는 지느러미의 물고기를 불러온다. 이제 댐으로 가야 한다. 자리를 일어나 미술관 내부의 그림을 감상한다. 나무, 숲, 안갯속의 집들이 벽에 걸려 있다.

저 먼 데 댐이 있다. 그곳으로 가야 한다.





위에서부터 춘천댐, 의암댐, 소양강댐



나는 마음의 지느러미를 턴다. 벚꽃 터널을 지나면 오르막길이다. 소양강댐으로 오르는 길은 구름이 먼저 반긴다.

이 댐이 생기기 전, 나는 청평사 가는 길을 걸은 적이 있다. 1960년대 말, 춘천교육대학을 다니던 나는 자갈길을 밟으며 무심히 구름 따라 길을 걸었었다. 자그락자그락, 자갈 밟는 그 소리가 지금도 귓가를 맴돈다. 

강 따라 걷는 길은 연어 떼처럼 계곡을 따라 청평사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어 있다. 그 길은 이제 물에 잠겨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당시 <청평사 가는 길>이란 제목으로 짧은 시 한 편을 쓴 적이 있다.


청평사 가는 길

하얀 자갈길

바람 불어 구름 떠가는 언덕

구름 잡으러 길 떠난 

파아란 동승의 길


물은 높아졌고, 댐 아래 협곡은 더욱 낮아졌다. 댐 위에서 내다보면 저 멀리 콧구멍다리가 보인다. 저 다리도 이제 곧 사라지리라 한다. 추억은 하나둘 자신의 이름을 지우며 잊히어 간다.



소양강댐에 위치한 소양강 처녀



소양강댐을 올 때마다 나는 한 사람을 찾는다. 소양강 처녀다. 이름은 모르지만, 그 처녀는 늘 그 자리에서 호수를 등지고 있다.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누가 만든 조각품인지 작가의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조각품은 솜씨를 보아하니, 10여 년 전 작고한 김훈 작가의 작품이라 추측한다. 그러나 그는 죽었고 확인할 길이 없다. 누가 이 작품의 주인공을 안다면, 아니 이 작품을 만든 이가 자신이라고 불쑥 나타난다면, 나는 그와 얼싸안고 밤을 지새우며 막걸리를 나눌 것이다.

그만큼 이 소양강 처녀는 슬프고 아름답고 처연하다. 그곳을 지나는 이마다 쓸쓸한 나그네를 자처하며 이 조각상 앞에 머문다. 그리고 먼 먼 날의 여인을 회상한다. 그렇게 소양강 처녀는 풋풋한 날의 일기장을 뒤적이는 추억의 앨범이 되었다.



소양강댐에서 바라본 풍경



소양강댐은 자갈과 흙으로 만들어진 사력댐이다. 댐 길이가 500m요, 댐 높이가 123m이다. 수도권 인구의 물 문제를 해결함은 물론 시설용량이 20만 kw여서 전기생산에도 꽤 큰 역할을 한다.

1973년 10월 댐이 완공되자, 당시 소양강댐 물이 상류인 관대리와 부평리로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을 마을은 빈집만 남고 천천히 집과 자두나무와 살구나무가 잠겨갔다. 마당에 물이 차고 논도랑에 물이 스며들고부터 갑자기 물결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쏘가리, 붕어, 잉어, 메기, 퉁가리, 동자개, 가물치 등이 펄떡펄떡 튀었다. 산기슭으로 주거를 옮긴 마을 사람들은 삽과 곡괭이와 지게 작대기로 도랑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를 때려잡았다. 이 장면을 본 어떤 이는 물고기의 대학살이라 표현했다. 물론 그 말을 뱉은 자가 나였지만.

아니, 족대가 없어도, 싸리 바구니 하나만 있어도, 어른 팔뚝만 한 물고기를 손쉽게 건질 수 있었다. 거의 20여 일을 그렇게 풍요의 만선(지게 소쿠리에 한가득 물고기를 진 모습)이 산기슭과 논바닥을 오르고 내렸다.

그리고 수위가 높아지자 물고기들은 깊숙이 잠적해 버렸다. 평화가 찾아왔고, 기슭으로 옮긴 집집마다 장대에 꿰어진 물고기들이 햇볕에 말라갔다. 마치 풍요의 어촌을 보는 느낌이었다.


벌써 50년 전 일이다.

반세기가 지나고 그곳에 남은 마을 사람들은 어부가 되었다. 그들을 우린 수몰민이라 부른다. 어부들은 자신의 마을을 기억했다. 어부들은 돌담과 초가와 복숭아나무와 벚꽃을 상상했다. 그물을 치며 강아지와 고양이와 어린 시절 딱지 치던 아이들을 그리워했다. 밤이면 꿈을 꾸었다. 그물에 집 한 채가 고스란히 딸려 나왔다. 그 그물로 추억을 매일 밤 낚았다. 아이들이 올라왔고, 선생님이 올라왔고, 어머니와 아버지, 천식을 앓던 할아버지가 올라왔다.

그렇게 어부는 늙었고, 이제 그들마저도 이미 죽었거나 허리 굽은 노인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걸어서 청평사로 가는 자갈길을 상상한다. 저 호수 밑바닥에, 깊이깊이 잠긴 자갈길이 나를 안내한다.

나는 어느샌가, 삶이란 하나의 눈물겨운 기억임을 새삼 깨닫는다.





최돈선

시인. 춘천시 둘레엔 1개 읍, 9개 면이 있다. 나는 그곳이 궁금하다. 그 고요한 곳에 현자는 있을 것이다. 당산목 같은 우직한 당신의 사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