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 장군의 젊은 시절 일화 중에 기생 천관녀와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 한때 천관녀를 아껴 그 집에 자주 드나들었으나, 김유신의 모친이 이를 알고 “방탕한 생활을 그만 두라”며 아들에게 눈물로 호소하였다. 다시는 천관녀를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어느 날 타고 가던 말이 천관녀의 집으로 주인을 잘못 인도했다. 김유신은 바로 큰 칼로 말을 베어 죽인 뒤 안장까지 버리고 걸어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다.
천관녀는 비록 연인에게 버림받았지만 실연을 계기로 자기 집을 천관사라는 절로 개조하고 스님이 되었다니 그리 불행한 삶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정작 불쌍한 것은 말 못 하는 짐승으로 태어나 주인의 습관대로 충실히 길을 안내했을 뿐인 김유신 장군의 말이다. 칼 맞아 죽으면서도 내가 칭찬받지는 못할지언정 왜 죽어야 하는지 도무지 영문을 몰랐을 것이다.
2018년 무술년, 새해를 맞이해 유익한 습관을 새로 들이거나 최소한 낡고 못된 습관 한 가지는 버리고 싶은 분들이 많을 것이다. 새벽운동, 다이어트, 외국어 공부가 전자이고 과한 음주, 흡연 같은 것은 후자에 속한다. 그러나 습관내지 버릇은 쉽게 들지 않는 대신 몸에서 내보내기도 무척 어렵다.
2006년 미국 듀크대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가 매일 하는 행동의 40%는 그때그때의 의사결정이 아니라 습관에 따른 것이다. 자기 자유의지로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미 익혀둔 버릇에 일상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삶이란 얘기다.
김유신 장군의 말은 인간의 습관 탓에 억울하게 희생당한 경우다.
사람의 뇌는 에너지를 매우 많이 소비한다. 뇌는 몸무게의 2%에 불과하지만 몸 전체가 쓰는 열량의 20%나 쓴다. 때문에 인간은 뇌가 에너지를 되도록 적게, 효율적으로 쓰게끔 진화했 다. 대표적인 비결이 바로 습관이다.
‘어떤 자극도 주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두면 뇌는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거의 모든 일을 무차별적으로 습관으로 전환시키려 할 것이다.
습관이 뇌에게 휴식할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 습관의 힘>, 찰스 두히그 지음).
뇌가 에너지를 절약하느라 다양한 버릇을 만드는 것까지는 좋다. 문제는 우리 뇌가 좋은 버릇, 나쁜 버릇을 구별할 줄 모른다는 점이다. 고금에 걸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습관을 고치려 애썼고, 버리지 못한 습관 때문에 자책해 왔던가.
성경은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잠언)고 했고, 프랑스 작가 폴 부르제(1852~1932)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같은 짓을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착란이다’(리타 메이 브라운, 미국 작가)는 뜨끔한 경고가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후회하기 싫으면 그렇게 살지 말고, 그렇게 살 거면 후회하지 마라” 고 일갈하였다.
좋은 버릇이든 나쁜 버릇이든 ‘신호→반복행동→보상’이라 는 ‘습관의 고리’가 되풀이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버릇이 어떻게 시작되고 순환하는지 찬찬히 관찰하는 게 나쁜 버릇을 고치는 첫 단계라고 충고한다.
새해 첫 달은 누구나 마음이 새롭다. 나를 자괴감에 빠뜨리던 못된 습관과 이별하기 알맞은 달이다. 작심삼일(作心三日) 이라며 지레 포기하지 말자. 일년 내내 사흘 간격으로 작심하면 결국 습관 개조에 성공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제 버릇 개 주나’라는 속담도 있으니 이번에야말로 묵은 나쁜 버릇을 개에게 넘겨주자. 마침 개의 해이니 잘 받아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