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교실. 아침 활동을 끝내고 글자 공부를 막 시작하려고 하는데 한 아이가 교실 문을 빼꼼 열고 서서 아부하는 웃음을 흘리며 저를 부릅니다.
“선생님, 달팽이 교실에 데리고 와도 되나요? 오늘만요. 히히.”
책가방은 어깨끈이 흘러내려 팔에 대롱대롱. 콧물은 줄줄. 그런데도 뭐가 좋은지 표정이 환하네요?
“달팽이?”
아이는 뻐기듯 가방을 열더니 블루베리 담았던 통을 꺼내 쭉 내밉니다. 열어보니 방금 뜯은 배춧잎이 고이 깔려 있고 그 위에 달팽이가 떡하니 앉았네요. 말끔한 집을 등에 지고 길게 뻗은 더듬이에서 위엄마저 느껴집니다.
“와, 멋진 달팽이네.”
순식간에 아이들이 몰려듭니다. 아이고,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데. 이거 어쩌지요?
“야, 이 달팽이 어서 잡았냐?”
“잡은 거 아니거든. 데려왔어.”
“야, 달팽이가 강아지냐? 데려오게.”
“데려왔으니까 데려왔다 그러지. 맞죠, 선생님?”
“응. 키우는 거라면 데려왔다는 표현이 맞아. 근데 어디서 데려왔어?”
“우리 아빠가 마당에서 데려왔잖아요. 히히.”
저는 분위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려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달팽이를 데려온 아이는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네요. 멍한 표정에 시선은 달팽이가 올려져 있는 창틀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달팽이는 이따 보고 어서 공부하자고 말하려다 아차, 오늘은 왠지 봐주고 싶어 집니다. 그런데 잠시 뒤, 또 들릴락 말락 저를 부르네요?
“선생님, 근데요.
달팽이 배춧잎이 마르면 안 돼요.”
“아, 그래?”
“네, 달팽이가 죽을 수도 있어요.”
“아이고, 그래?”
“화장실 가서 물을 좀 뿌려가지고 올게요. 히히.”
아이는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벌써 화장실로 내달립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연필을 내던지고 우르르 따라가네요. 아이고, 공부는 어쩌나? 달팽이 때문에 큰일입니다. 저는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자리에 앉히고 공부를 이어가 봅니다. 그런데 달팽이 주인 아이가 또 한 마디 합니다.
“선생님! 공부 너무 많이 하면 안 돼요.”
“아, 그래?”
“네. 달팽이가 스트레스 받잖아요!"
“아, 그런가?”
“그렇죠. 저도 스트레스 받는데. 달팽이도 받겠죠.”
“아, 그래?”
"그리고 애들 아직 달팽이 다 못 봤단 말이에요. 야, 니들 아직 다 못 봤지?"
그러자 여기저기서 호응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계속 공부를 밀고 나가면 원망을 듣겠네요. 아이들도 짜기라도 한 듯 저를 향해 입을 비쭉거리고 눈을 흘기네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귀여움입니다. 저는 선심을 쓰듯 공부 주제를 살짝 바꿔 그럼 달팽이에게 편지 쓰기 공부를 하자고 합니다. 그러자 아이들 표정이 밝아지네요. 아이들은 저마다 달팽이를 들여다보고는 자리에 가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근데 다른 아이보다 유독 정성스럽게 쓰는 아이가 있더군요. 바로 달팽이를 가져온 아이입니다.
달팽이는 습한 곳에서 잘 자라는데 요즘 비가 안 와 걱정인가 봅니다. 달팽이가 마당으로 무사히 돌아가려면 어서 비가 와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애원하는군요. 마음이 잘 담긴 좋은 글입니다. 오늘은 달팽이가 선생님이네요.
송주현
만천초등학교 교사. <나는 1학년 담임입니다>, <착한 아이 버리기>, <초등학교 상담기록부> 저자. 33년째 아이들 가르치면서 함께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