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에는 먹으러 가야 한다. 보통 관광은 시각視覺이 절대적이지만 미식 여행은 미각, 후각은 물론 식감을 느끼는 촉각과 씹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청각까지 오감을 즐겁게 한다.
처음 접하는 음식이 어떤 맛일지 기대하는 마음은 덤이다.
타이완은 더운 나라여서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것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밖에서 사 먹는 게 보편적이다. 외식문화가 발달했고, 음식의 종류나 조리법도 다양하다. 타이완의 수도 타이베이에는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특색 있는 음식이 가득하다. 중화권 음식 중에도 가장 담백한 편이어서 부모님이나 어린아이 모두 좋아할 만한 요리가 가득하다. 고수나 향신료를 쓰는 경우가 있지만 깻잎이나 미나리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면 나름대로 맛이 좋다.
진정한 식도락 여행을 위해서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아침 식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곳에는 새벽부터 아침 장사만 하고 문을 닫는 가게들도 많다.
또우장(豆漿)을 파는 가게에 들어섰다. 야외에 천막과 간이 테이블이 있는 식당인데 현지인들이 가득하다. 또우장은 일종의 두유로 속이 빈 꽈배기인 요우티아오를 여기에 찍어 먹는다. 따뜻하고 고소한 풍미가 속을 든든하게 한다.
또우장과 이름이 비슷한 또우화豆花도 있다. 연두부와 팥, 떡등을 설탕물에 담가 먹는 간식인데 따뜻하게도 차갑게도 먹을 수 있다. 어떤 재료를 올리냐에 따라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먹거리만큼 볼거리가 많은 타이완에서 여행으로 지칠 때 한 그릇 먹으면 다시 힘이 난다.
이제 샤오룽바오小籠包를 먹을 차례다. 작은 대나무 찜통을 ‘샤오룽’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작은 만두를 쪄낸 것이다. 진한 육즙을 담은 만두소가 얇은 피와 어우러진 음식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채 썬 생강과 초간장을 곁들여 먹는데 입안에서 뜨거운 탕즙이 터지면 혀가 덴다. 숟가락에 곱게 올리고 옆면을 살짝 베어 탕즙을 빨아먹은 후 나머지를 먹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만두보다 원체 작아 여러 판을 먹을 수 있다.
곱창 국수는 여러 매체에서 소개되어 우리나라에도 유명하다. 시먼딩에 있는 유명한 가게에는 늘 여러 명의 한국인이 줄을 서 있다. 전분 가득한 국물에 곱창과 얇은 면이 들어있다. 고수와 소스는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궂은 날씨에 일일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길이었는데, 거센 비바람에 시달리며 쌀쌀해진 몸에 곱창 국수를 넣었다. 숟가락으로 후루룩 떠먹으면 온몸에 뜨거운 기운이 퍼진다. 대부분 자리에 서서 먹는데 그 불편함이 입맛을 더 돋우기도 한다.
면 요리라면 우육면도 빠질 수 없다. 기름기가 적어 깔끔한 맛을 내는데 크고 넓적한 고기가 아낌없이 들어있다. 소고기가 질기지 않아 가벼운 치악력으로 부드럽게 씹힌다. 현지인이 많이 가는 식당에서는 한 테이블에 자연스럽게 합석해서 먹기도 한다. 빨간 국물의 홍샤오紅燒 우육면이 일반적이지만 칭둔淸焞 스타일로 맑고 개운한 우육면도 있다. 시간이 된다면 타이난이라는 도시에도 꼭 가보길 권한다. 우육면이 유명하다.
해가 지면 또 갈 곳이 있다. 바로 야시장. 타이완에는 크고 작은 야시장이 정말 많은데 타이베이의 스린야시장, 닝샤야시장, 라오허제 야시장 등이 유명하다. 본격적인 맛과 냄새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이다. 닭가슴살을 널찍하게 펴서 튀긴 지파이, 생마늘과 함께 먹는 소시지 샹창, 바삭하고 쫄깃한 식감의 토란볼과 녹진하고 담백한 굴전도 꼭 먹어야 한다. 윌을 데리고 맛있는 식당을 찾아다녔던 때가 생각났다.
영국 친구 윌은 원어민 교사로 나와 친하게 지냈다. 한국에 처음 온 그에게 맛있는 음식을 소개하고 싶었다. 춘천에서 막국수는 먹어봐야지. 서툰 젓가락질로 막국수를 한 입 머금은 그가 깜짝 놀랐다. 당연히 따뜻한 요리를 기대했나 보다. 면을 차갑게 먹는다는 게 낯설다고 했다. 뚝뚝 끊어지는 면의 식감도 처음 접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름이 되자 그는 내게 먼저 막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 슴슴하고 달콤하고 알싸한 맛을 윌은 기억하고 있을까.
사람은 다양한 감각으로 장소와 시간을 기억한다. 이 지면을 가득 채워도 다 담을 수 없는 타이베이의 수많은 음식처럼 춘천에도 맛있는 음식이 정말 많은데, 춘천은 여행자에게 어떤 맛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나는 또 어디에서 어떤 새로운 맛을 보게 될까.
김병현
지구별 여행자. 삶을 벗어나는 관광이 아닌 삶을 경험하는 여행을 지향합니다.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것보다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