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슈퍼밴드 최종우승팀인 4인조 록밴드 ‘호피폴라’에서 우아한 연주로 첼로의 매력을 한껏 뽐냈던 이는 춘천 출신 첼리스트 홍진호다. 정통 클래식 연주자로 시작했지만 첼로를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나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단박에 실력파 참가자로 인정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현재 그는 유키구라모토, 조수미, 선우정아, 노영심 등과의 협연, 자작곡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만능 첼리스트로 독보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 올해 춘천에서 열릴 4번의 마티네 콘서트를 앞두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를 지난 14일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만났다.
운명처럼 다가온 첼로
“아직도 그날이 생생해요. 옆방에서 짐승 울음소리 같 은게 들렸는데 사로잡혔죠"
홍진호의 부모님은 LP 수집가였다. 덕분에 어린 시절 부터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듣고 자랐다. 어느 날 드보르작의 첼로협주곡이 나오고 있었는데 쾅쾅쾅 베이스가 울리는 3악장 도입부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소름이 끼쳤다. 엄마에게 달려가 이게 무슨 악기냐고 물었다. 첼로라는 악기라고 하셨다. 무작정 첼로를 시켜달라고 했다. 그때가 12살이었다. 한달 넘게 반대하던 그의 부모님은 아들의 고집에 못이겨 취미삼아 해보라며 35만원짜리 첼로를 사줬다. 그리고 당시 춘천시립 교향악단 첼로 수석이었던 이상순에게 연이 닿았고 그에게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다. 공부를 곧잘 했기에 부모님은 과학고에 진학하기를 바랐다. 그가 예고 입시를 준비하겠다고 하자 부모님은 또다시 반대하고 나섰다.
우여곡절 끝에 홍진호는 서울예고, 서울대를 거쳐 독일 뷔어츠부르크 국립음대 석사·최고연주자 과정을 밟은 ‘정통 클래식’의 길을 걸었다. 클래식계의 촉망받는 첼리스트인 홍진호는 꼿꼿하고 빈틈없는 자세, 저명한 첼로 콩쿠르를 휩쓴 연주 실력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음악적 방향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대중음악과 만나면서다.
홍 진 호
첼리스트. 1985년생 춘천 출신. 슈퍼밴드로 유명해지기 전 약 12년 동안 정 통 클래식 연주가로 활동했다. 서울예고,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후 독일 뷔어츠부르크 음대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그는 이탈리아 Ferdinando Garimberti(in Milano 1954) 악기로 연주하고 있다.
혼자하는 음악도 좋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의미없어
홍진호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계기는 2019년 열린 JTBC<슈퍼밴드>를 통해서다. 그는 2019년 유학에서 돌아온 후 클래식 음악 팬층이 두텁지 않은 공연계의 현실을 체감했다. “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필요해지기 시작했어요. 첼로 소리를 더 많은 사람이 들어볼 수 있겠다는 마음에 출연을 결심했는데 첫 방송 나가자마자 욕을 엄청 먹었어요. 선생님, 친구들 모두 ‘너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고 걱정을 많이 하셨죠. 그런데 대중들이 클래식 악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는 걸 확인하면서 다들 마음을 열어주셨어요” 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슈퍼밴드 초기에는 포기하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 음악이 생활 그 자체였던 대중음악 뮤지션들을 존중하게 됐고 비로소 즐거움을 느꼈다고 했다. 호피폴라 멤버 들은 어떻게 하면 첼로의 매력을 최대한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해주었다. 멤버 모두 홀로 튀기보다는 그 속에 녹아들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함께 연주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 후부터 그의 삶은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다. 오롯이 첼로 하나로 2000석 규모 클래식 공연장을 관객으로 가득 채우는데 성공했으며 피아니스트 유키구라 모토는 ‘홍진호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음색을 지닌 연주자’라며 상찬했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궤적을 닮은 첼리스트
정통 클래식 전공자가 장르를 넘나드는 아티스트의 길을 걷고 있다? 기시감이 일었다. 그에게서 엔니오 모리꼬네가 겹쳐 보였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트럼펫 연주 자로 시작해 정통 클래식, 엘리트 음악을 했던 이탈리 아인으로 알다시피 지금은 영화음악의 거장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스승조차 그를 비난했고, 미국 아카 데미는 반세기가 넘도록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에게 꽃길을 돌아 험지를 꿋꿋히 개척하는 모습이 엔니오와 닮아 보인다고 하자 민망하다며 크게 웃었다. 그는 “맞아요. 최근 엔니오 모리꼬네의 전기영화에 감정이입을 했어요. 클래식 연주자가 대중음악에 가까워지면 악기만이 갖고 있는 섬세함을 잃을 수 밖에 없어요. 마이크 없이 어쿠스틱홀에서 연주하는게 부족할 수 있죠. 하지만 대중과 호흡하는 연주에서 느끼는 희열과 영감이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다양한 음악을 모두 잘 해내기 위해서는 꾸준히 연습하는 길 밖에 없죠”라며 각오를 다졌다. 홍진호는 클래식 전공을 했지만 클래식 연주만 하지 않는다. 그가 연주하는 첼로는 어떨 때는 솔로 악기로써 오롯이 모든 걸 표현해내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대중음악의 한 파트로, 그리고 국악과 어우러지기도 한다. 어떤 장르와 만나도 색다르게,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 간다. 이렇게 장르를 넘나드는 첼리스트가 된 이유에 대해 “가장 큰 이유는 재밌어서” 라고 답했다.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계속 시도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도.
내가 아름다운 곳에서 살았구나
춘천에서 나고 자란 그는 춘천이라는 도시가 특별하다는 것을 독일 유학을 가서 깨달았다. 유학 생활을 하던 뷔어츠부르크에서 1시간 기차를 타면 하이델베르크라는 소도시가 나온다. 춘천과 많이 닮았서 자주 찾곤 했다. 그는 “얼마 전 독일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을 춘천으로 초대했는데 여기 꼭 유럽 같다고 하더라” 면서 “최근에 공연하거나 부모님 뵈러 춘천에 자주 오는데 내가 참 아름다운 곳에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품성기량시대, 좋은 사람이 좋은 연주를 한다
어쩌면 모든 것을 순화시키는 듯한 그의 겸허한 어법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홍진호와 인터뷰를 하면서 느꼈던 점은 품성이 재능만큼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와튼 스쿨의 조직심리학 교수 애덤 그랜트는 최근작 ‘히든 포텐셜’에서 바로 그 ‘인성의 신비’를 탐구 했는데 홍진호의 잠재력을 끌어낸 것은 다름 아닌 그의 품성이었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클래식과 다른 음악과의 콜라보가 가능한 이유는 내가 꼭 주인공이 아니어도 된다는 마음, 함께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는 마음 덕분일 것이다. 그의 연주가 대중들에게 와닿은 까닭도 같은 이유일 거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음악가로서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를 물었다. “첼로 연주를 들었을때 제 소리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음색으로만 알아챌 수 있는 존재감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홍진호의 연주가 궁금하다면
유튜브 채널 ‘홍진호 Jinho Hong’ * 4월 춘천 공연에서 직접 들어보기(봄내 26쪽 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