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서 사는 우리들은 우리가 사는 지역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요? 춘천은 머물고 싶은 도시인가요, 떠나고 싶은 도시인가요? 지역소멸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정주여건* 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방법이 있을 텐데요. 여기 그 근본은 ‘교육’이라고 말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춘천의 아이들이 우리 지역을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 공 교육 현장에서 풀어내는 일. 전국에서 가장 선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춘천만의 <지역화 교과서>들을 소개합니다.
* 정주여건: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삶을 영위하는 환경의 정도
왼쪽부터 유아, 중학교, 초4, 초3용 춘천 지역화 교재 4종
“‘네가 살아온 마을’ 어떤 점이 좋고 어느 곳이 좋아?”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단박에 내놓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학생 시절 ‘우리 마을’에 대해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얻지 못한 탓이다. 요즘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에는 ‘우리 고장의 모습’, ‘우리가 알아보는 고장 이야기’ 등 기초자치단체에 대한 이해를 돕는 단원이 있다. 이 같은 국정교과서에는 표준화된 내용이 실리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고장의 옛이야기’ 단원의 경우 춘천에 사는 학생은 ‘용인시’의 사례를 배우게 된다. 각 지역 맞춤 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에 교육 현장에서는 교과 성취 기준에 맞춘 보조교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처럼 학생들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높일 수 있도록 개발된 보조교재를 ‘지역화 교재’라고 한다.
「안녕? 우리 춘천!」은 2021년 춘천에서 처음 나온 마을 교과서다. 춘천에 지역화 교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춘천학연구소 김헌 학예연구사가 2020년 춘천시와 춘천교육지원청에 적극적으로 교재 개발을 제안하면서 만들어졌다. 그는 “춘천의 아이들이 우리 지역을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보자고 했죠. 지역을 이해해야 지역을 좋아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래야 성인이 되어서도 내가 이 지역에 계속 정주해도 좋겠다고 선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무엇보다 공교육 현장에서 구현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죠”라고 말했다.
부안초 3학년 학생들이 그린 우리 고장의 모습
지명 유래를 알아보는 학습 카드
지역화 교재 집필을 담당한 최문혁, 안진형, 최소운, 심순경 선생님
「안녕? 우리 춘천!」은 초등학교 3학년이 1학기 사회 교과를 학습할 때 교과서 대신 쓸 수 있도록 개발한 ‘춘천중심 지역화 교재’다. 교과서는 ‘김소양’, ‘나호춘’, ‘강파란’, ‘이아지’ 등 4명의 캐릭터가 춘천의 어제와 오늘을 알아가며 지역의 생활 모습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형식으로 꾸몄다. 집필에 참여한 후평초등학교 김수연 선생님은 “아이들이 아는 장소나 들어본 지명들이 책에 나오니까 수업 참여도가 높다” 라며 “학습 동기를 불러 일으키고 수업 활동하기 좋은 자료라는 피드백을 많이 받는다”라고 말했다.
춘천 지역 43개 초등학교 3학년 학생 2,700명의 사회과 수업용으로 개발된 이 교재는 학생들의 흥미 유발을 위해 스티커, 퀴즈 등 게임요소를 도입, 일러스트를 활용해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춰 독창적으로 편집했다. 집필을 주도한 춘천문 화원은 교과서의 완성도, 내용의 충실도, 지역 내 파급력 등의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교육부로부터 ‘교육기부 우수 기관’으로 선정됐다. 덕분에 교재 개발 확대에 탄력이 붙었다. 오는 3월부터는 유치원생 동화책 「춘천닭갈비」, 초등 4학년 사회과 교재 「봄봄」 및 중학교 ‘진로와 직업’ 교과 연계 지역화 교재 「춘천잡(Job)학사전」까지 교실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된다.
4명의 캐릭터인 나호춘, 김소양, 강파란, 이아지
지역화 교과서는 전국적 추세다. 강원도 18개 시군도 모두 시도 중이다. 그렇지만 학교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연결 고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춘천시, 춘천교육지원청, 춘천문화원 춘천학연구소가 힘을 합쳤다. 춘천만의 교재가 필요하다는 현장의 의견, 단순한 예산지원이 아닌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지역 교육과정을 함께 고민한 춘천시청, 만들어진 책이 아이들 한명 한명의 손에 들려 교실안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게끔 주도적으로 움직인 춘천교육지원청, 우리 지역만의 특별한 교재 개발을 연구한 춘천학연구소, 세 기관의 협업 작품이다. 그래서 「안녕? 우리 춘천!」은 상징적인 교재다. 지역교육에 있어 지자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잘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초4 지역화 교과서 「봄봄」에 실린 삽화
온라인에는 춘천 관련 영상 자료와 전자책, 지도, 사진 등 교과서에 수록하지 못한 다양한 자료가 담겨있다.
몇 시간 되지도 않는 사회수업, 그것도 지역에 대해 고작 몇 단원을 배우는 게 뭐 그리 영향이 있겠느냐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과연 그럴까? 자신이 사는 마을(지역)을 알거나 마을에서 배우는 과정은 한 사람이 성장해 지역에 자리를 잡고 살거나 이바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강엽 춘천교육지원청 교육과장은 “학생들이 자기가 사는 지역에 대해 배우고 지역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며 “자기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감수성을 키운 아이들은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라고 했다.
「로컬씨 어디에 사세요?」를 쓴 서진영 작가는 지역교육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안녕? 우리 춘천!」 은 표면적으로는 지역의 아이들을 위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춘천이라는 지역과 춘천 사람들 간의 끈끈한 연결고리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 설령 지금의 아이들이 춘천을 떠나게 되더라도 언제든 다시 돌아오게 할 따뜻한 품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라고.
내가 살고있는 고장에 대해 탐구하며 지역 감수성을 키우는 아이들
벌써 4권이 된 춘천의 지역화 교과서는 애향심을 품고 춘천을 떠나갈 미래의 아이들을 언젠가는 모천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연어들의 ‘회귀본능’ 같은 구실을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