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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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98

2024-03
#교실에서 보낸 편지 #봄내를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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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키워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




3월. 또다시 새 학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의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더 나은 성장을 바라는 학부모님의 소망도 부풀지요. 

특히 저학년, 그중에서도 1학년 학부모님은 더하실 것 같습니다.


오래전에 가르친 제자 중에 지금은 감옥에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소식을 들었을 때 저도 모르게 아이의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오래전 얼굴이 아직 선명한 건 상담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감정 조절이 어려워 부모님께서 마음고생이 많으셨는데, 상담 오실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셨습니다. 주변에서 아이가 저렇게 되도록 부모가 되어 도대체 뭐 하고 있었느냐는 비난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담임인 제가 보기에 그분들은 할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을 하셨습니다. 자녀 교육에 애쓰시다 실패하는 경우는 있어도, 일부러 나쁜 아이로 키우는 부모는 없습니다.


요즘 <금쪽이> 관련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문제 행동을 하던 아이가 부모와 전문가의 노력으로 순화되는 사례가 나오지요. 프로그램의 취지가 아이 행동 변화를 보여주는 게 목적이니 그렇게 편집했겠지만, 33년째 교사로 살아오면서 부모가 훈육하기 어려운 수준의 아이를 꽤 보았습니다. 기질적으로 분노 조절이나 상대의 마음에 대한 공감이 어려운 아이로 태어나는 경우입니다. 사람들이 쉽게 ‘사이코패스’니 ‘소시오패스’라고 이름 붙이는 이런 아이들은 어느 사회나 일정 비율로 존재합니다. 이런 아이를 키우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키우지만, 아이가 계속 나쁜 행동을 한다면 어디까지 부모의 책임으로 돌려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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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자식은 부모 책임이지요. 

부모가 더 신경 써서 키웠으면 애가 그 지경이 되었겠어요?

제가 자식 키워보니 자식은 부모 하기 나름이더라고요.


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모범적인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 중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마음속으로 이런 말을 하고 싶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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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님의 아이에게 감사하셔야겠습니다.

운 좋으시게도 머리가 좋고 성격도 순한 아이가 자식으로 태어나주었으니까요.


한국인 출신 미국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청년이 다니던 학교에서 총을 쏴 여러 명이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방영된 뉴스에 대한 댓글은 부모에 대한 비난이 많았습니다. 먹고 사느라 바빠 자식이 몰래 총을 사고 범행을 계획하는 것도 몰랐느냐는 내용들이었지요.


그런데 미국 사람들의 태도는 사뭇 다르더군요. 범행을 저지른 청년도, 그 청년을 키운 부모도 결국 같은 희생자라고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바쁜 부모에게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자란 동양인 아이가 학교에서도 친구 하나 없이 외톨이로 지내며 사회에 대한 분노를 키우는 동안 손 내밀어 주지 않은 자신들에 대한 반성의 분위기도 보았습니다. 그 뒤로 학교는 주변의 외톨이를 찾아내 함께 어울리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범인의 부모를 위로하는 행사를 열었다고 합니다. 범죄가 발생했을 때, 범죄가 생길 수밖에 없는 사회 문화적 원인을 바꾸려 하기보다 범인의 개인적인 문제로 다루는 우리 문화가 아쉬웠습니다.


자식 키워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지요. 내 아이는 내가 원하는 맞춤형 인간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부모인 나는 신중한 성격이지만, 내 아이는 즉흥적인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나는 흥이 넘치는 부모지만, 아이는 고지식한 인간으로 자라기도 하지요. 나는 남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하지만, 내 아이는 사사건건 친구들과 갈등을 빚는 성품으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낳은 부모나 태어나는 자식 잘못이 아닙니다. 그냥 사람은 자신과 전혀 성향이 다른 아이의 부모 자식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떤 아이로 태어나든 잘 자라서 행복하게 살게 키우려 애쓰는 것뿐입니다.










송주현

만천초등학교 교사. <나는 1학년 담임입니다>, <착한 아이 버리기>, <초등학교 상담기록부> 저자. 33년째 아이들 가르치면서 함께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