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천 년 전
1970년 어느 초여름, 천전리 지석묘군인 샘밭 고인돌로 한 소년이 나타났다. 그 소년은 춘천 시내에서 세 시간여를 걸어왔다.
타박타박….
온몸이 땀투성이인 소년은 작은 손길로 검은 덮개돌을 어루만졌다. 때로는 귀를 기울여 무슨 소린가를 듣는 듯했다.
소년은 오래도록 주변을 빙빙 돌면서 하얗게 말라붙은 돌꽃을 쓰다듬었다. 쓰다듬으면서 움푹 파인 성혈을 세심히 관찰했다.
수업 중에 선생님의 말씀이 소년에겐 아직도 귀에 쟁쟁했다.
“춘천 샘밭엔 청동기시대 유적지가 많단다. 부족국가 맥국의 후손들이 거기 살지.”
소년은 널찍한 덮개돌 위로 올라가 누웠다. 소년은 3천 년 전 사람들을 상상했다.
“나는 누구일까.”
3천 년 전의 소년이 지금의 소년이 되어 고인돌 위에 누워 있는 것만 같았다.
“저쪽 소년이 지금의 나일까?”
그 후 소년은 틈나는 대로 고인돌을 찾았다. 그렇게 소년은 마음속에 사색의 나무를 키웠다. 그는 청년이 되어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화가가 된 소년은 그림을 그렸다.
1995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임근우란 이름의 청년화가가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림의 제목이 독특했다. 당시의 TV와 신문은 이 청년 화가 임근우의 그림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Cosmos-고고학적 기상도’
청년 화가는 이렇게 말했다.
“춘천 샘밭의 고인돌에 누워 저는 생각했어요. 나는 누구일까. 그때 저는 먼 3천 년 전의 소년과 지금의 소년이 같다는 걸 느꼈지요.”
천전리 지석묘군인 고인돌과 고인돌 돌꽃 이끼 그리고 임근우 화가
임근우는 강원대 미술교수가 되었다. 그는 고인돌과 원시인류와 현생인류를 그렸다. 임근우의 그림을 대하면 누구나 “행복해요”라고 말하곤 했다. 머리에서 복사꽃이 피고, 원시와 현대가 서로 어울려 무릉도원에 함께 있었다.
배우 황신혜 씨는 아침마다 거실에서 임근우의 그림을 맞이한다. 이 그림을 보면 무언가 행복한 느낌이 파도처럼 밀려오기 때문이란다.
소년 임근우는 이제 세계적 화가가 되어 복사꽃 편지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3000년 전의 소년 임근우.
샘밭은 그렇게 오랜 신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 아침못
빙어의 계절이다.
얼음처럼 투명한 물고기여서 빙어氷魚라 부른다. 춘천호와 소양강은 겨울이면 빙어낚시가 한창이다.
샘밭 저수지에도 빙어 낚시꾼이 몰린다.
얼음을 동그랗게 깨고 그 구멍으로 낚시를 드리우면 아주 미세한 까닥거림이 온다.
툭 채면 빙어가 올라오는데, 이곳 아침못 저수지 빙어는 씨알이 굵지 않다.
저수지가 그리 크지 않은 탓일까.
아침못 빙어낚시
우리나라 빙어의 원조는 제천 의림지 공어이다.
공어公魚는 일본 어족으로 바닷물고기이다. 이 물고기가 1900년 초에 함경남도 한 하구에서 채집되었다.
이 물고기를 제천 의림지에 넣어 부화했는데, 이것이 바닷물고기가 민물고기가 된 연유라고 한다. ‘내장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물고기’라 하여, 공어를 빌공, 물고기어자를 써서 공어空魚라는 이름으로 풀이하기도 했다.
그 공어가 또다시 소양호에서 빙어라는 이름으로 다시 바뀌게 된 것은, 환경에 따른 이름 짓기의 변형이다. 거기엔 강원도 찬물에 서식하는 얼음고기란 뜻이 담겨 있다. 또한 얼음을 깨고 겨울에만 잡히는 물고기이니, 얼음고기인 빙어라 부르는 게 옳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름이라고 모두들 수긍한다.
해마다 겨울이 오면 소양강 상류 인제 부평리에선 빙어축제가 열린다.
빙어는 회로도 먹지만, 대부분 튀김으로 많이 먹는다.
아삭하고 달고 고소한 식감이 혀 끝에 버드나무 잎처럼 감돈다.
빙어낚시는 구멍치기 낚시라 하여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놀이이다. 낚시로 잡은 빙어를 작은 얼음연못에 풀어놓으면, 오글오글 빙어들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모습이 제법 볼만하다.
출출하면 뜨거운 컵라면 후루룩 거리는 그 맛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순간 낚시찌의 움직임에 따라 또 다른 한 손으로 챔질 하는 미세한 떨림, 그것 또한 한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청량감이다.
아침못은 샘밭 들판을 적시는 중요한 저수지이다. 공식 명칭은 조연저수지인데, 사람들 사이에선 우리말 아침못으로 불린다.
맥국의 터인 이 들판을 아침못 물이 흘러내려 맥국의 곡창지대를 적신다. 아침못은 맥국 사람들의 젖줄인 셈이다.
3천 년 전의 청동기문화로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온 신북읍은 춘천 지역의 중요한 문화자산이기도 하다.
- 류기택 시인
그는 샘밭 시인으로 늘 샘밭을 소재로 시를 쓴다.
나는 류기택 시인과 소양댐 아래에서 만났다. 돼지수육 한 접시를 놓고 우린 막걸리를 마셨다.
그의 시 ‘소양강댐’은 단 두 줄 뿐이다.
막았던 강을 열면
참았던 불안이 다투어 빠져나갔다
오래 침잠된 소양강 물이 수문을 열자 일제히 참았던 불안이 쏟아져 내린다는 말이다. 무엇이 불안한 것인지는 시인의 눈과 가슴으로 들을 필요가 없다. 우리 모두는 강을 막아 댐을 만든 존재이므로.
무엇을 가둔다는 건 불편하고 불안한 일일지도 모른다. 댐은 속박이고 가둠이고 고임이니까.
나는 시인의 미소 지은 얼굴을 본다.
언뜻 시인의 눈빛이 빛난다. 겨울 눈꽃이 반짝이듯, 시인은 그저 하얗게 웃기만 한다.
류기택 시인은 그냥 시인이다. 아무런 수사修辭도 필요 없는, 그냥 그대로의 시인이다. 겨울날 상고대처럼 그는 맑은 사람이다.
누가 이 사람을 공수특전단 용사였다고 믿으랴. 정직한 언어의 자수가刺繡家요 겸손한 이 시인을.
누가 이 사람을 미의 건축가라 믿으랴. 단지 살기 편하게 지었을 뿐인데요,라는 이 시인을.
먼 길을 가서 그와 만나는 날은, 나도 ‘행복’이란 단어 하나를 가슴에 품는다.
아주 단순한 말이지만, 무언가 그 말에 의미를 부여할 때 그 단어는 은은히 빛을 발휘하는 법이다.
나는 이 사람도 3천 년 전, 맥국의 시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보았다.
이 사람은 맥 부족의 족장이었거나 아니면 태양의 빛을 받아 신령의 뜻을 전하는 주술사였거나.
그의 말은 시가 되고, 그의 눈빛은 순백의 혼이 되고, 그가 품은 뜻은 더없는 행복을 주리라는.
나의 이 상상이 다만 부질없는 짓일까.
어디선가 들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가 싶었다. 류기택 시인도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나는 약간 취기가 돌았다.
그의 눈빛도 그윽해졌다.
우린 아무 말 없이 악수하고 헤어졌다.
류기택 시인
최돈선
시인. 춘천시 둘레엔 1개 읍, 9개 면이 있다. 나는 그곳이 궁금하다. 그 고요한 곳에 현자는 있을 것이다. 당산목 같은 우직한 당신의 사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