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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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96

2024-01
#도란도란 #봄내를꿈꾸다
#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연극 뿌리는 사람들 "노만가출사건"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적이 있나요 ♬


연극이 끝난 후라는 노래의 도입부 가사를 들으면, 조명이 꺼진 무대를 한 번쯤 홀로 지켜보고 싶어진다. 그러나 관객이 그런 경험을 해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연극을 만드는 데 참여하는 스태프라면 가능할까. 평소 연극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던 차에 기회가 닿아 지난 9월 연습 기간부터 11월 3일 봄내극장 공연까지 살펴볼 수 있었다. 


연극 ‘노만가출사건’은 부산에 살던 파키스탄인 노만이 가출해 거제도에서 6일 만에 발견됐던 실화에서 시작돼 만들어진 극이다. 극 중 노만은 한국에서 태어난 일본인이다. 부산 사투리를 쓰는 전학생 윤정에게서 다른 전학생 노만으로 차별의 시선이 옮겨지는 과정이 그려진다. 다문화와 엄석대가 존재하는 교실 속에서 타자가 되지 않기 위해 친구를 저버려야 하는 잔인한 이해관계가 35분의 러닝타임 속에 녹아 있다. 다소 교훈적으로 느껴지는 이 극은 바로 초등학교 범 교과 주제 ‘다문화의 이해’와 연계된 교육 연극이다. 그래서 2번의 극장공연 외에도 춘천시의 16개 초등학교를 직접 찾아가 무대를 세운다. 아이들의 표정과 반응을 현장에서 지켜보면 공연 관람 한 번으로 얼마나 깊은 사고를 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초등학생들이 포스트잇에 남기는 메모는 어른들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왕따를 주도하는 학생을 단순히 힐난하기보다 성적 제일주의만 내세우는 집안 사정을 읽고 “언제나 네가 1등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방관자처럼 읽혔던 극 중 캐릭터에게는 뭐가 그리 좋냐고 분노하기도 한다. 단순히 극 중에서 일어난 일을 분리해 생각하지 않고 우리 반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기도 한다. 교과서를 만난 한 편의 공연 이후 아이들의 다양한 반응을 현장에서 만나니 낙숫물 같은 문화의 힘을 읽는다. 일상을 침투하는 한 방울의 문화 생활이다. 연극을 잘 보지 않았다는 학생의 인터뷰에선 반 친구들과 다 같이 공감하며 관람한 경험의 흥분도 느껴졌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어린 관객의 예상치 못한 성숙함에도 놀랐지만, 스태프로서 배우들의 성장에도 눈길이 갔다. 춘천팀과 서울팀 더블 캐스팅으로 운영되었는데, 춘천팀에는 아직 몇 번의 공연을 경험했으나 더욱 경력이 필요한 배우도 함께했다.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두터운 경력의 배우들을 유심히 살피며 실력을 쌓고자 연습하는 매일 매일의 시간이 켜켜이 쌓였다. 세 달간 연극 제작 과정을 기록해 보니 관객 입장에선 가질 수 없는 애정도 피어난다. 조명이 꺼지는 그 순간까지 치열하게 달렸던 수많은 이들의 발자국. ‘연극이 끝난 후’ 노래의 화자가 무대 위의 정적에서 고독을 느꼈다면, 이번에 불 꺼진 무대는 마치 발아를 기다리며 씨앗을 덮는 흙의 장막 같다. 초등학생 관객과 연기자들에게 춘천 연극의 뿌리가 고요히 내릴 것을 떠올리면 어쩐지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