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가을> 교과에 가게 놀이가 나옵니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공부하는 과정이지요.
사회성을 키우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내 물건을 팔려면 친구의 마음을 얻어야 하니까요.
가게 놀이는 아이를 기업인의 마음으로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여기에 약간의 장치를 한다면 경제 개념과 돈의 가치도 배울 수 있겠지요?
일단 구입하면 환불 불가(물건을 신중하게 고르라고)
물건 살 돈은 1,000원 안 넘게 가져오기.(통화량 조정, 인플레이션 방지)
장사가 잘 되면 친구를 '알바'로 고용할 수 있음.(단, 임금 협상을 사전에 해야 함)
사려는 친구가 많고 적음에 따라 가격을 올리거나 내릴 수 있음(수요/공급의 법칙)
싸게 산 물건을 다른 친구에게 웃돈 얹어 판매 가능(도매/소매)
이런 놀이가 처음인 아이들이라 아침부터 교실이 들썩였는데요. 관찰하니 다양한 모습의 아이들이 보였습니다.
만 6년을 살아온 아이들이지만, 자라오면서 각자 익힌 경제 개념이 보이는 순간이었지요.
먼저 경제 개념을 학습하지 않은 아이 모습부터 볼까요?
팔고 나서 괜히 팔았다며 물러달라고 조르는 아이
친구들 물건은 팔리는데 자기 물건은 안 팔린다며 투정하는 아이
깎아달라는 요구에 너무 쉽게 응하는 아이
자기가 번 돈이 많다며 친구에게 나눠 주는 아이
돈 주고 산 물건을 친구에게 그냥 주는 아이
돈이 남았다며 100원짜리 물건을 굳이 300원을 주고 사려는 아이
이 아이들은 팔 물건(재화, 상품)이나 돈(화폐, 가치 교환 수단)을 '나의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 안 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별 고민 없이 줘버리네요. 또 돈이 오가는 시장을 정말 '놀이'로 여깁니다.
평소 교실에서 연필이나 지우개를 잃어버리고도 찾지 않거나 친구에게 줘버리고 새 걸로 사려는 모습과 비슷하군요.
하지만 어른 못지않은 경제 개념과 시장원리를 터득한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보다 먼저 물건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호객으로 관심을 끄는 아이
안 팔리는 물건은 가격을 낮추고 인기 높은 물건은 가격을 올리는 아이
깜박 잊고 물건을 안 챙겨왔지만, '알바'로 돈을 벌어 그 돈으로 물건을 사서 경매에 올리는 아이
물건이 인기가 없자 친구들에게 방문 판매를 시도하는 아이
물건이 잘 팔려 바빠지자 친구를 알바로 고용해서 계산을 맡기는 아이
돈이 아직 남았지만, 필요 없는 물건은 안 사겠다고 말하는 아이
이 아이들에게 어른의 경제 활동 모습이 보입니다. 종잣돈을 마련하려고 알바를 선택하거나,
반대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친구를 고용하고 수요에 따라 가격이 변동됨을 이해하는군요.
장사가 잘되는 곳을 찾아 옮겨가고 다양한 판매 방법을 모색할 줄도 압니다. 돈의 가치를 이해하기에
욕망을 조절할 줄도 알아서 필요 없는 물건을 구매하지 않을 줄도 압니다. 같은 1학년인데 이렇게 다르군요.
가게 놀이 끝난 뒤 경매 놀이도 해보았습니다. 팔고 싶은 것 한 가지를 골라 친구들 앞에서 설명하고
100원부터 시작해서 100원씩 호가를 올리는 방식입니다. 역시 이 상황에서도 가격을 고민하지 않고
계속 응찰해서 비싼 가격을 주고 낙찰받았으면서도 잠시 놀다 친구에게 줘버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친구들을 설득해 높은 호가를 유지하는 아이가 보이는군요. 가정에서 평소 경제 교육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송주현
소양초등학교 교사.
<나는 1학년 담임입니다>, <착한 아이 버리기>, <초등학교 상담기록부> 저자. 32년째 아이들 가르치면서 함께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