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연탄을 가득 실은 리어커가 언덕을 오르는 모습. 생연탄에 불이 붙을 때까지 번개탄 연기와 냄새로 가득 찼던 부엌에 대한 기억까지 중장년층이라면 연탄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연탄을 때던 시절에는 창고 가득 연탄이 쟁여져 있으면 겨우내 마치 큰 부자가 된 듯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 연탄 1장 가격은 라면 1봉 값에도 못 미친다. 값이 저렴해 서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난방 연료다. 여전히 춘천에는 1,000여가구가 연탄을 난방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연탄값 부담 때문에 추운 겨울을 힘겹게 나는 이웃들이 있다. 

<후평1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회원들이 연탄을 나르고 있다. >

연탄은 무겁다

“옆으로 천천히 넘겨주세요. 180, 181, 182” 

지난 10일 오전 10시 후평1동 봉의산 자락 아래 위치한 골목길. 

춘천연탄은행이라고 쓰인 1t 트럭에 연탄 1000장이 빼곡히 실려 있었다. 언덕 위에서 전진과 후진을 수차례 거듭한 트럭이 좁은 계단 끄트머리에 가까이 붙었다. 한 사람도 지나가기도 힘든 좁은 골목에 노란색 조끼를 입은 20여명이 줄지어 섰다. 빨 간 목장갑을 낀 이들은 연탄을 옆에서 옆으로 하나씩 전달했다. 

200여 개의 연탄이 모두 옮겨질 때까지 이들의 가쁜 숨소리는 계속됐다. 이들은 연탄봉사에 나선 후평1동 지역사회보장협의 체 회원들이다. 손바닥과 얼굴에는 연탄 가루가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허리를 숙이며 연탄을 옮긴 탓에 여기저기서 ‘아이고 허리야’ ‘생각보다 무겁네요’ 등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날 배달한 연탄은 모두 2000장. 후평1동에 있는 정보통신회사 동양아이텍 직원들이 기부한 연탄이다. 이 회사는 직원들의 월급 끝 전 떼기와 회사의 매칭 기부를 통해 매년 연탄 2000장씩을 기부하고 있다. 

연탄 나눔은 올해로 9년째다. 오후에는 장학리에서 동양아이텍 직원들의 봉사가 이어졌다. 화락봉사단이라고 적힌 조끼를 나눠 입은 이들은 곧바로 연탄 지게를 매고 연탄 배달에 나섰다. 전상영 춘천연탄은행 국장은 봉사자들과 늘 연탄배달을 함께 한다. 전 국장은 “쉽게 쉽게 드니까 쉬운 줄 알지 만 안 아픈 곳이 없을 정도”라며 “그래도 연탄에 의지해서 겨울을 나는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힘든 건 하나도 문제가 안 된다” 라고 말했다. 

“총 6장 올렸습니다” 출발신호가 떨어졌다. 연탄 1장은 3.65kg. 사람의 체온과 닮은 무게다. 연탄 6장은 지게 무게까지 합쳐서 대략 23kg 정도다. 9년째 연탄배달 봉사활동에 참여했다는 정경하(42, 거두리)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봉사활동을 해왔는데 직장에서도 계속 이어 할 수 있어서 좋았다”라며 “연탄을 나르면서 우리가 함께했다는 마음에 직원들끼리 서로 더 단단해지는 것 같다”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연탄 배달 봉사하는 춘천도시공사 직원들 >

연탄 지고 나르고...차곡차곡 쌓이는 선한 마음 

“연탄이 없으면 겨울나기 어렵지. 늘 신세만 지고 고맙지, 말로 표현 못 해.” 

다음날 오후 춘천의 옛 도심인 교동의 낡은 주택가. 건장한 남성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춘천도시공사 야구동 호회 ‘히어로즈’ 회원들이다. 강영덕 동호회장은 “연탄 후원과 봉사자 수가 줄어서 진짜 필요한 곳에 연탄배달이 안 되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면서“동아리 회원들에게 기부와 봉사를 제안 했더니 모두 좋아했다”라며 연탄봉사에 참여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회원들은 동호회비를 모아 올 해 처음으로 연탄 500 장을 기부했다. 봉사자들이 손수 준비해 온 파란 조끼와 우비 를 입는 동안 먼저 오늘의 연탄을 배달할 집을 확인했다. 주민 윤연화(72, 교동) 씨는 정해창 춘천연탄은행 대표를 보자마자 덥석 손을 잡고는 “기름값이 비싸서 연탄난로로 겨울을 보내야 하는데 이렇게 매번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이어 윤 씨는 대문 옆에 놓아둔 10kg 쌀을 가리 키며 “저희 부부가 도움을 많이 받고 사는데 고마운 마음을 전 하고 싶었어요. 가져가서 잘 써주세요”라고 하자 정 대표가 “밥 맛있게 만들어서 급식소에 오시는 분들께 잘 대접하겠습니다” 하고 답했다. 배달할 곳들이 골목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서 연탄 트럭이 들어 갈 수가 없었다. 이런 곳은 연탄 지게를 이용해야만 한다. 봉사 자들은 등에 지게를 지고 쉴 새 없이 연탄을 날랐다. 비좁은 골 목 한켠에 윤 어르신이 준비한 귤과 피로회복음료, 믹스커피가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어르신이 피로회복제를 들고 “이거 하나씩 드시고 하세요. 고마워서 어쩌나” 하고 말하면 봉사자들은 “따는 것도 힘드셔요. 저희가 먹을게요”라고 하거나 “어이! 여기 잔치가 벌어졌어. 먹고 해!”라며 동료들을 소환했다. 주민들의 집 창고에는 연탄이 차곡차곡 쌓였다. 20여 명의 봉사자들은 능숙하게 손발을 척척 맞춰 연탄을 날랐다. 

차례대로 오르막길을 지나 집 앞에 도착하면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봉사자가 연탄을 받는 식이었다. 어느새 텅 비어있던 연탄창고 가 검은 연탄으로 가득 찼다. 이상숙(75, 교동) 씨는 “겨울에 전기 장판 하나로 버티는 우리에게 연탄은 너무나도 소중하다”며 “얼마나 감사한지, 고마운 마음이 안들 수가 없다”고 말했다.

 <춘천연탄은행 정해창 대표가 주민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850원의 온기가 꺼지지 않도록... 사랑의 손길 

춘천에 살면서 연탄을 때는 가정이라면 겨울에 한두번씩 만나 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춘천연탄은행이다. 춘천연탄은행은 전 국 31곳의 연탄은행 중 한 곳이다.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면서 춘천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연탄은행이 속속 문을 열고 사랑의 연탄을 나르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연탄 기부는 뚝 끊겼고, 어려운 이 웃은 더 늘어났다. 봉사자들의 활동도 줄어들어 일손도 부족하다. 치솟는 연탄값은 더 큰 부담이다. 2016년까지만 해도 연탄 1장 값은 600원 안팎이었다. 그러다 2018년 800원까지 오르더니 올해는 850원 수준이다. 연탄은행이 처음 문을 연 2002 년 300원과 비교해 세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예년과 같은 규 모로 후원금이 들어오더라도 공급할 수 있는 연탄 후원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어려운 고비가 있을 때마다 춘천시민들이 함께 해 주셨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어서 늘 감사하고 고마워요. 올겨울에도 시민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려요” 정해창 춘천연탄은행 대표는 올겨울 연탄 보릿고개를 넘으려면 시민들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번 겨울, 벌겋게 달아오른 연탄 밑불이 위에 새로 놓이는 연탄에게 불꽃을 넘겨주듯이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사랑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주변에 관심을 기울여보면 어떨까. 

< 그림 이관수 >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 안도현의 詩 '연탄 한 장' 중 -

춘천연탄은행   주소 : 춘천시 동면 하일길 188   연락처 : 251-7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