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횡성의 어느 골목, 뜨문뜨문 늘어선 집들 끝에 큰 나무 한 그루를 품고 자리잡은 집 앞을 지나며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살 때 널 낳았는데.”
동대구역 옆에 위치한 큰 병원을 지나며 다시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태풍이 올라오던 날 새벽에 저기서 널 낳았는데.”
충청도 논산에 나지막한 아파트들이 모여 있는 단지를 바라보며 저는 말합니다. “여기 살 때 친구들이랑 소독차 따라다니면서 자주 놀았는데.”
아버지께서 군인이셨던 탓에 어렸을 때부터 거의 1년에 한번씩은 이사를 다녔습니다. 북에서 남으로, 동에서 서로. 초등학교만 하여도 다섯 군데나 옮겨 다녔죠. 그런 저에게는 특별히 고향이라 부를 만한 곳이 없습니다.
대부분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질문에 태어난 곳이나, 어린시절 추억이 가득해 지금까지도 반가운 이들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대답을 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태어난 곳에서의 기억은 전무하며, 지금은 아는 이는 커녕 정겹던 풍경마저도 모두 바뀌어 마냥 낯설기만 한 곳들 뿐입니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아온 덕분에 대한민국 곳곳에 서린 추억들은 많지만, 그들 중 어느 하나 고향이라 부르기 힘든 곳들 뿐이었죠.
하지만 마땅한 고향 없이 돌아다닌 삶이었던 덕분에 그만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개구리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장수풍뎅이를 잡으러 다니기도, 책에서만 보던 반딧불이를 하굣길에 직접 만져보기도 하였던 지난 여름날, 남쪽지방에도 눈이 허벅지까지 쌓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만들어준 어느 겨울. 다신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친구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한 반가움 이상의 감정과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 등. 다양한 경험이라는 아카이브는 지금까지도 가슴 깊숙이 남아 많은 것의 영감과 원동력이 되어주었죠.
올해는 ‘예술가의 일상수집’이라는 이름으로 이곳 춘천에서의 나날을 꺼내어보았습니다. 곳곳에 서려 있는 이곳의 맛과 냄새를, 풍경을, 습관을 그리고 언젠가의 굳은 다짐을요. 늘 그 자리에 변하지 않고 있어왔기에 크게 특별한줄 몰랐던 이곳에서의 일상을 번역하여 기록했습니다.
습한 강바람이 불어오던 산책길에서의 다짐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작업을 놓지 않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몇 년 전의 새벽 소양강 풍경은 멈춰버린 몸과 마음을 단단히 만들었죠. 점점 짙어지는 이곳의 푸른 하늘은 잊었던 방향감을 잡아주었고, 불이 타오르던 뜨거운 축제날의 기억은 간과하고 있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무언가를 일깨워주었습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강물과 호수 만큼이나 잔잔했던 곳에서의 날들. 이제는 정착해버려 옛날과 같은 다양함의 아카이브가 더는 촘촘해 질 수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제 시각으로 번역된 춘천에서의 날들은 보다 근사한 기억들로 남아 있었습니다. 한층 깊어진 기억의 파편들. 아직 이곳을 고향이라 부르기엔 조금 섣부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꽤나 괜찮은 무언가를 간직하고 있는 곳임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지난 20대를 든든히 지지해주었다면, 앞으로 시작하게 될 30대의 삶은 새로이 번역된 이들을 바탕으로 순탄히 헤쳐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어느덧 한장만이 남아버린 올해의 달력이 당신에게도 의미 있게 넘어갈 수 있길 바라요.
* <예술가의 일상 수집>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성원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김수영
회화작가. 10여 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살아온 탓에 표준어와 사투리가 섞인 억양을 쓰지만, 어엿한 15년차 춘천인.
우리를 둘러싼 것들이 만들어내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이야기들을 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