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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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95

2023-12
#교실에서 보낸 편지 #봄내를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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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안녕



길가에 낙엽이 가득합니다. 거리를 아름답게 채색하던 나뭇잎도 이제 다 떨어지고, 봄의 이름을 한 도시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 작별을 준비합니다.

교사는 매년 이별하는 사람입니다. 1년 동안 열렬하게 사랑하고 미련 없이 보내주어야 하지요. 그런 생각을 하면 늘 쓸쓸해집니다. 고3 담임을 오래맡다보니 졸업도 많이 경험했지요.

교문 앞에는 꽃집들이 늘어서고 아침부터 학생과 가족들로 북적입니다. 입김을 내뿜는 얼굴은 모두 웃고 있네요. 3년 동안 정든 학교, 친구들을 엄마, 아빠, 할머니, 동생에게 소개하며 조금은 들뜬 표정입니다. 졸업장과 졸업앨범을 받고 이제 진짜 마지막 종례를 하면 몇은 울고 몇은 돌아보지도 않고 교실을 나섭니다. 

꽃다발을 들고 한바탕 사진을 찍으며 북적이던 교실이 이제 텅 비었습니다. 저는 혼자 남아 책상 줄을 맞추고 책상서랍에 구겨 넣고 간 가정통신문이나 낡은 교과서 등을 치웁니다. 내일이면 아이들이 다시 올 것 처럼요. 온기가 한꺼번에 사라져버려 그런지 더 춥습니다. 일 년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느낌입니다. 졸업을 이렇게 추운 날에 하는 건 이별이 그토록 뜨겁기 때문일까요.


교사의 일 년은 나무 같습니다. 봄이 되면 은행나무는 손톱만한 잎을 틔우는데 3월의 아이들이 꼭 그렇거든요. 낯선 환경에서 올망졸망 앉아있는 아이들은 곧 나뭇잎처럼, 손톱처럼 자라납니다.

한 여름이 되면 잎이 무성한 나무처럼 아이들도 한창입니다. 서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다투고, 또 화해 합니다. 선생님도 아이들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지요.

특히 고3의 여름은 유독 길고 힘듭니다. 여름방학도없는 셈이거든요.

가을이 오면 울긋불긋 물드는 나뭇잎처럼 아이들도 저마다의 색을 펼쳐냅니다. 자신의 고유한 색이 가을이 되면 비로소 드러나는게 아닌가 싶은데요. 이때쯤이면 아이들도 여기저기 합격 소식이 들리거든요. 복도 끝부터 “합격했어요!”하며 달려오던 예린이를 잊을 수 없습니다. 원하는 진로, 진학에 실패하는 아이들도 있지요. 구겨진 나뭇잎 같아 함께 웁니다. 합격의 영광보다는 불합격의 좌절이 더 마음을 차지하지요. “괜찮아. 인생 길어! 넘어져도 꼭 다시 일어나자!” 작은 응원으로 아이들이 자신의 색을 찾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이제 12월입니다. 나뭇잎이 우수수 나무를 떠납니다. 마치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아이들 같습니다. 신나게 공중을 나는 나뭇잎을 보면 후련하고 또 섭섭합니다. 나무에게는 또 이별이니까요.

찬 겨울이 추억의 자리를 깨끗이 닦아 놓으면 또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한용운 시인의 말처럼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어야지요. 하지만 이별의 슬픔은 만남의 설렘을 늘 압도합니다.

3년을 내리 가르친 아이들이 졸업한 날, 회식 자리에서 선배 선생님을 붙잡고 펑펑 운 적이 있습니다. 혹독한 세상에서 나는 무얼 가르쳤나, 최저임금이 얼만지, 주휴수당이 뭔지 알려주고 근로계약서 쓰는 법이라도 가르쳐주었어야 했는데. 임금을 떼이면 어떻게 대처 해야하는지 알려줄걸.

10년이 지난 지금, 제 걱정과는 다르게 그 아이들은 저마다의 세상을 즐겁게 여행하는 것 같아요. 자신의 색깔로 말이죠. 교사의 가장 큰 보람입니다.

작은 재주로 매년 아이들에게 노래를 만들어주고 있는데요. 졸업식에 선생님들과 공연을 하기도 했지요. 

올해도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며 노랫말을 적어봤습니다. 3년 동안 힘들게 기숙사 생활을 한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을 하고 싶었거든요. 따뜻한 이별을 준비하며 마지막으로 전합니다.


그래 아닌 척했지만 어느새 사랑했나봐

점심시간 산책길 푸른 잔디 운동장

사무치게 타는 노을

별처럼 총총 빛나는 꿈을 함께한 친구들

기숙사 잠 못드는 밤 나누던 수많은 얘기들

너희와 함께한 모든 날, 모든 순간 좋았지

우주는 정복하지 못해도 언제든 뒤돌아봐

이제는 세상에 넘어져도 울지말고 일어나

우리를 생각해 안녕 우리학교 안녕 애들아








송주현 

강원애니고등학교 교사.  

문학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공명할 때 가장 신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