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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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94

2023-11
#예술가의 일상 수집 #봄내를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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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여러분'이었던 그 날

#1. 2013년 11월 7일 오전 7시 30분


도보로 10분 조금 안되는 거리에 위치한 시험장까지 아빠와 함께 걸어갑니다. 명동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늘 소양2교까지 나가던 평소와는 다른, 반대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보통과는 다른 하루의 시작에 마치 일탈을 하는 것만 같아 심장이 더욱 두근거렸죠. 긴장되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듯합니다.


그날은 시험 유형이 달라 왁자지껄한 후배들의 응원소리나, 매일 만나던 친구들과의 잡담 따위는 없었습니다. 덤덤하게 나누었던 아빠와의 인사가 전부였죠. 그렇게 뒤돌아 입실하려는 순간 낯익은 얼굴이 보였습니다. 방학 보충 수업 때나 잠깐 뵈었던 수학 선생님께서 나와 계셨죠.

“고생 많았어. 후회 하지 않을 만큼만 열심히 하고 나와.”

학교에선 늘 무뚝뚝해 보이던 얼굴에 미소가 살며시 번지며 말씀해주신 한마디였습니다.







#2. 2013년 11월 7일 오후 4시 35분


세계지리 답안지까지 걷고 난 뒤, 짐을 챙겨 시험장 밖으로 나섰습니다. 오늘 단 하루만을 위해 그동안 달려 왔다니… 오늘이 지나면 마냥 홀가분할 것만 같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허탈함과 이유 모를 공허함만이 몸 전체에 가득했죠. 울렁거리는 감정에 싸여 발걸음을 옮깁니다. 우선 집에 가서 잠이나 자야겠습니다.

“야! 김수영”

교문 건너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초점 잃은 눈빛으로 걷고 있던 저를 부릅니다. 부모님께서 끝나는 시간에 맞춰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죠. 채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공허함이 어느샌가 가득 채워져 사라져 있었습니다. 







#3. 2023년 11월 누군가의 이야기  


우리 대부분의 기억 속 어딘가에는 ‘수험생 여러분’이었던 날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서른을 앞둔 지금의 저 역시도 한때는 ‘수험생 김수영’이었죠. 지금은 그날 아침은 무얼 먹었는지, 시험장에는 어떤 옷을 입고 갔는지도 기억 나지 않을 정도로 빛이 바랬지만, 그날의 따뜻했던 기억만큼은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코가 시릴 정도로 추운 날씨에 든든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었던 학교 선생님의 한마디가. 언제부터 기다리고 계셨을 지 모를 부모님께 느꼈던 죄송함과 포근함이 가끔씩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살아가다 지친 저를 일으켜주는 원동력이 되어주곤 하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란 가끔 크고 작은 위안을 주곤 합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이나 상황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나아가야할 방향을 잡게 되기도, 자신감을 얻게 되기도 하죠. 다양한 이들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며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혹시 10년 전 수험생이었던 사람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빛 바랜 기억을 꺼내어봅니다. 제가 느꼈던 따뜻한 순간들을 적어 보내드립니다.


많이 힘들고도 외로웠을 당신에게 참 잘 이겨냈다고 말해주고 싶은 밤입니다. 








김수영

회화작가. 10여 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살아온 탓에 표준어와 사투리가 섞인 억양을 쓰지만, 어엿한 15년차 춘천인.

우리를 둘러싼 것들이 만들어내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이야기들을 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