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조양동 6-86번지 공터 앞에 주민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10여명의 주민들과 공사 기술자들은 트럭에 실린 나무 자재와 페인트, 공구들을 바닥에 내렸다. 김영자 조운동 2통장은 “폐기되는 건축현장 자재로 재활용 분리배출장을 만들러 왔다”며 공사 내용을 설명했다.
주민들은 다 지어진 분리배출장 외벽에 오일스테인을 칠하는 등 분리 배출장 조성에 참여했다. 공사에 쓰인 재료는 나무와 페인트, 못과 나사 등 건축자재다. 멀쩡하지만 현장에선 사용하지 않고 버려지는 소중한 자원이다.
이 공사는 지난 9월 2일 만천리에서 문을 연 공감건축협동조합의 첫 프로젝트다. 윤건웅 공감건축협동조합 대표는 “공사 현장에서 나온 폐자재가 50%가량 활용됐다. 공사비 절감과 함께 건축폐기물을 마을주민 편의시설에 재활용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냈다”고 말했다. 폐목재를 활용한 공사는 새 목재로 만드는 것보다 2배 이상의 노동력이 들어간다. 그는 “누군가가 가공했던 흔적이 있고 그것을 고려해서 만들어야 하므로 작업이 쉽지 않다. 하지만 못이 박힌 자국들, 곡선들을 어르고 달래듯이 다듬어 새로운 작업에 들어맞도록 하는 과정이 무척 즐겁다”고 웃음을 지었다.
공감건축협동조합은 건축시공 후 남겨진 중고품, 반품 불가 건축자재를 재활용해 탄소 중립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만든 공간이다. 인테리어 종사자, 건축학도, 건축사 등 건축계 시민 5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건축현장에서 쓰레기로 분류돼 버려지는 폐자재를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윤 대표는 “우리 모두 건축업에 20년 이상 몸담았던 사람들이다. 건축자재들이 현장에서 무분별하게 버려지는 것을 보며 늘 한 켠에 죄책감이 있었다”며 “춘천에서 지역민으로 성장했으니 노년에는 좋은 일하며 의미 있게 보내야겠다는 마음으로 뭉쳤다”고 말했다. 이들은 합판, 가구, 문짝이 버려지는 자재들을 재활용하면 환경도 보호하고 자원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겠다고 판단 후 바로 실행에 옮겼다.
< 만천리 '공감건축' 매장 한 켠에서 춘천시민 무료제공 코너를 운영 중이다. >
공감건축협동조합 사무실에는 폐자재 순환 매장도 함께 운영되고 있다. 양호한 품질의 건축 폐자재를 선별해 공사에 활용·판매하거나 시민들에게 무료 기증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필요한 자재를 저렴하게 사려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효자동에서 원룸을 운영하는 최승근(82)씨는 “고장이 잦은 문고리나 수도꼭지를 사러 왔다”며 “시중가의 30% 정도로 살 수 있어서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공감건축은 개장 1개월 만에 4t의 폐자재를 모았다. 이 가운데 1t은 판매됐다. 폐기물은 통상 무게로 재기 때문에 입·출고 기록은 무게를 달아 기록한다. 윤 대표는 “1kg당 800원의 폐기비용이 드는데 버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익이다. 거기에 판매에 재활용까지 더하면 3배 이상의 가치와 효과가 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공감건축과 폐자재 수거와 기부를 약속한 건축업체는 20여 곳이다. 건설 현장에서는 폐목재를 돈을 들이지 않고 처리하고, 공감건축은 재활용할 수 있어 서로가 윈윈인 셈이다.
공감건축은 폐자재와 폐제품 수거·판매에 그치지 않고 가공·생산·시공까지 업사이클링의 모든 과정을 원스톱으로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윤 대표는 “버려지는 자원의 절반은 다시 쓸 수 있다는 믿음으로 춘천을 넘어 대한민국 새활용* 문화의 중심 거점으로 성장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 새활용 :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 등에 디자인과 활용성을 더하여 가치를 높인다는 뜻의 업사이클(Up-Cycle)의 우리말 표현
만천리에 위치한 공감건축 사무실 겸 매장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