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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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94

2023-11
#봄내인터뷰 #봄내를만나다
이유미 전시기획자
다 계획이 있는, 춘천으로의 여정
30주년 특별 기획

짧을 줄 알았던 이유미 씨의 타국살이는 12년 돼서야 끝났다. 

해외 통신원으로 뉴스를 전하던 삶은 춘천에서 전시기획자로 새롭게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인생이 예상했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지만, 돌아 보면 마치 계획된 삶의 여정처럼 보인다. 

떠난다는 것 그리고 돌아온다는 것, 그 어떤 결정에도 조금의 아쉬움이 묻어나지 않는다. 

지치지 않는 이유미 씨의 ‘춘천으로의 여정’을 들여다봤다. 





지난 10월 10일, 이유미 씨가 전시기획자로 참여한 <우안 매화전>이 열리고 있는 춘천문화예술회관 계단에서






이 유 미

전시기획자. 1981년생 춘천 출신. 

연세대학교에서 국어국문/신문방송 학사 과정을 마치고 극동방송에서 라디오 PD로 일했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YTN, KBS의 해외 통신원으로 일하며 10여년 살다가, 2년 전 한국에 돌아왔다. 

15살 중 학생 아들, 13살 초등학생 아들, 6살 유치원생 딸, 3살 어린이집원생 아들을 둔 

아이 넷의 엄마이자 유튜버, 전시기획자로 오늘을 살아가는 중. 









이유미 씨는 서울 소재의 외고로 진학하면서 고향인 춘천을 떠나게 됐다. 국어국문학, 신문방송학을 공부하면서는 우리말의 매력과 방송을 만드는 일에 빠져 라디오 PD가 됐다. 방송을 만들기 위해 사람을 섭외하고, 노래를 선곡하고, 프로그램을 편집하는 일이 행복했다. 그러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됐는데 남편은 어릴 적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로 이민 간 교민이었다.

“남편이 사우디에 있다가 잠깐 한국에 머물 때 저를 만나서 결혼했거든요. 결혼하고는 같이 사우디에 가서 살자고 설득했어요. 사우디의 수도인 리야드에 한국학교가 있어서 선생님도 할 수도 있고, PD로 일했으니 사우디의 국영방송에서 일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저를 설득했죠. 그래서 처음엔 1~2년만 살 생각으로 간 거예요.” 

그렇게 이 씨는 결혼 1년 후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2009년, 태어난지 두 달이 된 아들과 사우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우디는 나라의 80%가 사막이라 건조하고 일 년 내내 더운 데다가, 여성은 ‘아바야’라는 전통 의상으로 몸과 얼굴을 가려야 했기에 낯설고 제약이 많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탄탄한 교민 사회 덕분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는데, 1970년대 중동 건설 붐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건너갔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지은 건물과 도로는 튼튼하다’는 신뢰감에 한류 열풍이 더해져 어딜 가나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호의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이유미 씨는 리야드 한국학교* 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기도 하고 YTN와 KBS의 해외 통신원으로도 일하며 차차 적응해 나갔다. 또 차분하고 안정적인 목소리의 장점을 살려 아이 동화책 읽어주는 영상, 피아노 반주 강의 영상 등을 꾸준히 유튜브(채널명: 차근차근TV)에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친정엄마에게 오이소박이 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기록용으로 영상을 올렸지만, 구독자가 조금씩 늘어 지금은 1만 명이 넘었다. 일, 취미, 육아 모두 그 만의 속도로 정성을 다해 빚어갔다. 그러던 중, 다시 여정을 떠날 일이 생겼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이동에 제한이 생겼고 아이들은 1년 동안 학교에 갈 수 없었다. 결국 2021년 한국으로, 춘천으로 돌아왔다. 





* 리야드 한국학교 : 1970년대 후반부터 중동 지역의 건설, 사회 인프라 활성화에 힘입어 한국인 인력 진출이 증가함에 따라 체류민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해소할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 








< 사우디아라비아 전통의상을 입은 이유미 씨 가족 (막내가 태어나기 전)  >






< 이유미 씨의 라디오 PD 시절  >













사우디는 금지된 것이 많은 나라였기 때문에, 이유미 씨에게 춘천은 존재만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고개만 돌리면 강과 산이 늘 보이고, 문화예술로 가득 찬 춘천에서 하고 싶은 일이 넘쳤다. 넷째 막내가 어린이집에 가면서 이 씨는 배우고 싶은 일을 찾기 시작했다. 지난해 춘천문화재단에서 진행한 전시기획자 양성사업을 접하면서 ‘이거다!’ 싶은 느낌을 받았다. 6개월간 이론, 실무 수업을 듣고 실습까지 하는 과정이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밌고, 적성에도 맞았다고. 이 과정에서 이 씨는 춘천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고민하고, 연구하고, 그것들을 전시로 담아내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올해 2월 전시기획자로서 참여한 첫 번째 전시는 춘천 수몰민의 '잠겨버린 그리움'으로 가장 특별했다. 

“소양강댐 자료를 찾다 보니 올해가 완공된 지 50년이 되는 해더라고요. 댐이 생기면서 고향이 물속에 잠겨버린 수몰민들은 고향을 매일 그리워하지만, 삶이 치열했기에 그리움을 마음속에 잠그고 분주히 산 것 같아요. 그래서 수몰민의 이야기를 담은 문학 작가의 소설, 소양강변의 담은 사진, 수몰민이었던 화가의 그림까지 전시로 관람할 수 있게 준비했었어요. 실제 전시 기간에 추전초등학교를 졸업한 어르신들이 오셔서 장소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셨고, 옛날 사진도 보여주셨어요. 마음이 울컥하면서 앞으로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 이유미 씨의 사랑스러운 네 자녀 강준호, 강민호, 강단비, 강수호 >






춘천에 돌아온 가장 큰 이유에는 부모님이 있다. 모든 일을 응원해 주고 아이 키우는 데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부모님이 없으면 지금 하는 모든 일이 불가능 하기 때문에 힘이 되면서도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드는 이유기도 하다. “춘천에 친척들이 있기도 하고, 부모님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춘천에서 어르신을 만나면, 아빠가 아는 분일 수도 있고, 할머니가 아는 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사실 춘천사람은 다 가족 같아요.” 

지난 10월로 이유미 씨가 기획한 전시 3개가 끝났다. 이 씨는 이 전시들이 춘천에서 열리는 하나의 행사로 끝나지 않고, 춘천의 예술가와 춘천의 이야기가 널리 퍼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 바람이 꼭 이뤄지기를 응원하고 지지한다. “인물 한명 한명이 콘텐츠가 되고 나중에 춘천의 자산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춘천을 중심에 두고 춘천을 계속 이야기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