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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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94

2023-11
#교실에서 보낸 편지 #봄내를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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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아이의 살림 걱정



어느덧 학년말이 다가옵니다. 그래서 <1학년 때 갖고 싶었는데 못 가져서 2학년 때는 꼭 갖고 싶은 것>에 대해 말해보기로 했습니다. 이럴 때 예상되는 답은 장난감이나 핸드폰처럼 생활과 경험에서 나오는 것들일텐데요. 예상대로 대부분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한 아이가 불쑥 집을 갖고 싶다고 말하는군요. 의외의 주제라 그런지 아이들 대화가 분분했습니다. 


"집? 야, 너 그거 돈 엄청 많아야 해. 삼천만 원 정도 있어야 할걸." 

"(다른 아이가) 야, 삼천만 원으로 안 돼. 선경이네 축사에 있는 소 다 팔아도 못 살걸. 요즘 집값이 얼마나 비싼지 아냐? 선경아, 맞지?" 

"(선경이가) 얼마 전에 우리 아빠가 송아지 이백만 원 받았어." 

"헐. 이백만 원? 와, 쩐다." 

이백만 원이 많다는 건지 그 반대라는 건지 잘 몰라 다시 물어보려는데, 집이 필요하다고 한 아이가 갑자기 목청을 높입니다. 

"야, 우리 내년 봄에 전세 올려줘야 하니까 그렇지. 아니면 이사 가야 해!" 

"헐. 넌 유치원 때 이사 왔으면서 또 이사 가냐?" 

"야, 그럼, 전세 올려줄 돈이 없는데 어떡하냐?" 

"니네 엄마 아빠가 돈 벌겠지, 걱정하지 마. 으이구." 

"야, 우리 엄마 아빠 돈 많이 벌어도 안 된다니까! 고모랑 할머니가 돈을 가져가서." 

"헐. 고모랑 할머니가 돈을 가져갔어? "


뭔가 풀리지 않는 듯한 대화에 아이들 표정이 가라앉습니다. 그러자 한 아이가 위로하려는 듯 말합니다. 


"야, 그러면 효자동으로 이사 가. 우리 작은 아빠가 거기 사는데 아파트 엄청 많대. "


마냥 어려 보이지만, 1학년 아이들도 돈 걱정을 합니다. 이때 느끼는 불안은 어른의 그것보다 큽니다. 그걸 조금이나마 덜어보려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 거겠지요. 그래서 저는 본의 아니게 아이들 사정을 알게 됩니다. 


"우리 아빠가 어제 아저씨들이랑 술 먹고 왔단 말이에요. 근데 아빠가 술값을 다 냈잖아요, 글쎄. 엄마가 아빠한테 막 뭐라 그랬단 말이에요. 그랬더니 아빠가 엄마한테 그만 좀 하라 소리질러서 엄마가 울었죠." 

"할아버지가 술 잡숫고 오토바이 타다가 꼬라박았단 말이에요. 다리가 똑 부러졌죠. 아빠가 돈이 없는데 또 사고쳤냐고 할아버지한테 뭐라 그랬죠. 할머니가 울었잖아요."

"우리는 쪼끄만 집에 여섯 명이나 사는데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오는 어떤 애는 엄청 좋은 집에 살더라고요. 그래서 엄마한테 우리도 저런데 이사 가면 좋겠다 그랬단 말이에요. 그랬더니 엄마가 가고 싶으면 너 혼자 가서 살아, 이러잖아요." 


아이들 대화를 듣고 마음이 아픈 이유는 대화 속 어른들의 모습이 가난하지만,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부모의 모습이 아니라 더 약자인 다른 가족(엄마, 할아버지, 아이)에게 전가하거나 잘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아이의 마음을 수용해 주기보다 빈정거림으로 대해서 아이가 상처받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게 하고 긍정의 힘을 알려주는 게 교육일 텐데 돈 때문에 상처받은 아이들 앞에서,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막막합니다. 

높은 빌딩이 많고 물자가 넘쳐나는 이 풍요로운 나라에서 부모님은, 이 사회는, 국가는 어째서 겨우 1학년 밖에 안 된 아이들이 돈 걱정을 하게 만드는 걸까요. 형편이 어려워도 아이에게 곤궁함을 드러내는 대신 지금은 어렵지만, 엄마 아빠가 열심히 일해서 우리 식구 모두 잘살게 될 거라고, 그러니 너도 건강하게 자라라고 말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말을 듣고 자라난 아이는 삶에 대해 희망을 품고 성장할 수 있을 테니까요. 








송주현 

소양초등학교 교사.  

<나는 1학년 담임입니다>, <착한 아이 버리기>, <초등학교 상담기록부> 저자. 32년째 아이들 가르치면서 함께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