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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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94

2023-11
#춘천은지금 #봄내를만나다
맨발의 춘천
맨발 걷기에 빠진 사람들






최근 춘천의 주요 등산로 곳곳에선 가지런히 놓인 신발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처음엔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하지만 놀랄 필요는 없다. 신발 주인이 맨발 등산을 위해 벗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중장년층 사이에서 대유행인 맨발 걷기 열풍이 춘천에도 휘몰아치고 있다.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걸어본 사람은 없다는 맨발 걷기의 매력은 무엇일까. 궁금하면 일단 신발부터 벗어보자. 






<안마산 등산로(왼쪽)와 애막골 산책로>





‘어씽(Earthing)’을 아십니까? 


맨발로 산에 오르는 이들은 예전에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보는 이들은 ‘기인’이나 ‘특이한 사람’으로 바라봤다. 맨발 등산이 ‘유난스럽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등산화를 신더라도 충분히 운동이 되고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등산로에서 친근하게 신발을 벗은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어떤 매력이 사람들의 신발을 벗게 했을까. 맨발 걷기는 어씽(Earthing)으로 불린다. 지구를 뜻하는 ‘Earth’와 유지한다는 ‘ing’의 합성어다. 땅과의 접촉으로 치유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숲길이나 산책로를 맨발로 걸으며 땅의 에너지를 직접 체험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 7월 한 공영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된 후 인기가 크게 늘고 있다. 장소만 적당하면 비용도 들지 않고 신발만 벗어도 실행할 수 있어 건강을 중시하는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열기가 뜨겁다.




<등산로 곳곳에 신발이 놓여있는 까닭은?>





제가 한 번 맨발로 걸어봤습니다. 


13일 오전 9시 춘천교대 캠퍼스를 찾은 20여명의 시민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운동장 앞으로 모였다. 이들은 운동장 앞 사열대에 운동화를 벗은 뒤 줄을 맞춰 가지런히 정리했다. 이후 흙으로 이뤄진 운동장을 한발 한발 걸어 나갔다. 

동호인들을 따라 신발을 벗고 운동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해방감이 밀려왔다. 백발 어르신은 “맨발로 걸으면 밤에 잠이 잘 와요”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매일 밤잠을 설치는 나로서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이날 춘천교대 운동장을 맨발로 거닌 이들은 맨발걷기운동본부 춘천시지회 회원들이다. 현재 320명의 회원이 걷기 좋은 장소를 공유하며 함께 활동하고 있다. 맨발 걷기 회원들은 자신들이 직접 체험한 효과에 대해 늘어놨다. 맨발 걷기로 활력을 찾은 사람들이 표정에는 건강한 자부심이 넘쳤다.


김서원(60,지내리)씨는 “뇌경색을 앓았는데 후유증으로 눈앞에 안개가 낀 것처럼 항상 뿌연 상태였다. 불을 켜나 안 켜나 안 보이기는 매한가지라 밤에도 불을 끄고 살았는데, 지금은 선명하게 잘 보인다”고 했다.

이인호(74, 석사동)씨는 “허리협착증이 완화돼서 행복하다”며 맨발 걷기는 쾌면, 쾌식, 쾌변! 3쾌를 달성하게 해 주는 운동”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지난 15일 오전 10시, 안마산을 찾았다. 전날 내린 비로 땅은 축축했다. 비 오는 날 접지는 평소 마른 땅보다 3배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접지* 는 내 몸 안에 활성산소(양이온)를 땅에 주고 광물질인 흙에 생성된 음이온과 방사에너지를 내 몸이 흡수하는 효과다. 






* 접지 : 땅에 닿음. 또는 땅에 댐. 원래 인간은 맨발이었고, 흙을 밟으면서 진화해왔으나 신발이 생기면서 접지과정이 없어지고 말았다. 땅과의 접속, 이를 통해 지구와 하나 되는 것, 이것이 어씽의 본질이다. 





입구에는 먼저 출발한 맨발러들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트래킹화를 벗은 뒤 나무 밑에 던져두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차가운 기운이 발바닥을 시작으로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숲의 청량한 기운을 오감으로 체감한 순간이다. 

흙의 촉감을 느끼며 한 걸음씩 내디뎠다. 안마산은 황토가 많은 산이라 땅이 폭신했다. 발바닥은 금세 황토색으로 물들었다. 황토 한 숟가락에는 2억 마리의 미생물이 살고 있어 인체의 신진 대사를 촉진하고 독소 제거 및 분해, 정화작용 등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왠지 신발을 신었을 때보다 더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잠시 후 샘터와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맨발 걷기를 하던 김희경(64, 석사동) 씨는 “평소에 몸이 잘 붓는 편인데 맨발 걷기 한 뒤로는 부종이 생기지 않는다”며 “신발을 신고 걷던 길을 신발을 벗었을 뿐인데 건강도, 마음가짐도 달라졌다”고 했다. 

 




<맨발걷기운동본부 춘천시지회 회원들이 춘천교대 운동장을 걷고 있다>





맨발로 걸을수록 산이 더 잘 느껴졌다. 밟히는 돌 하나하나의 크기가 발바닥에 다 느껴진다. 평소 마사지를 좋아하는 덕분인지 아픔보다는 지압 되는 느낌이 컸다. 나무뿌리가 드러난 곳을 발의 아치로 밟아 꾹꾹 눌러주니 시원함이 배가 됐다. 

나무 사이로 볕뉘* 가 비쳐 발을 갖다 댔다. 태양의 포근한 기운이 혈관을 타고 머리끝까지 퍼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맨발 걷기는 내가 자연으로부터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흙과 직접 접속하여 ‘헌 집 주고 새집 다오’하는 물물교환이 이루어지는 일종의 교감 과정이었다.  






* 볕뉘 : 작은 틈을 통하여 잠시 비치는 햇볕  






플라시보 효과를 믿는 당신이라면 


맨발 걷기의 기능은 크게 2가지다. 첫 번째는 발바닥의 지압 기능, 두 번째는 어씽(Earthing)이라는 접지 기능이다. 습관적인 두통이 사라졌다거나 만성피로, 불면과 우울증 개선, 피부가 매끄럽고 혈압이 안정되었다거나, 심지어 암세포가 점점 줄어 사라졌다거나 하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대부분 주관적인 얘기라서 어디까지 사실인지 판단하긴 어렵다. 

혈액순환에 좋고 면역력을 높인다 등 맨발 걷기의 이로움을 일일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맨발 걷기가 몸에 좋은 줄은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좋아질 거라는 믿음과 기대 그리고 왜 좋아질지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한 논리가 버무려져 우리는 효과를 얻게 될 지도 모른다. 하루만 걸어도 꿀잠을 잘 수 있다고 하니 밑져야 본전 아닌가. 맨발 걷기는 믿는 만큼 삶이 건강해지는 운동이다. 무엇보다 제대로 준비하고 걸어야 한다. 맨발로 걸으면 체중이 발목과 무릎 관절에 고스란히 집중되다 보니 통증이 생기거나 연골/인대 등이 손상될 수 있어서다. 등산이나 하산 시 특히   주의해야 한다. 또 당뇨 환자들은 발에 상처나 물집이 생기면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미리 파상풍 예방주사를 맞을 것을 권유한다.  





<공지산 황톳길에서 맨발걷기 중인 춘천 시민들>





어씽춘천, 봄내맨발로 조성 


맨발 걷기가 인기를 끌면서 지원조례를 만든 자치단체만 전국에 30여곳에 이른다. 춘천시도 10월 4일 맨발로 걷는 산책로인 ‘봄내 맨발로’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봄내 맨발로는 맨발 걷기의 춘천판 명칭이다. 우선 올해 공지천과 석사공원 두 곳에서 맨발 길을 시범 운영한 후 내년부터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시범 구간은 공지천 호반교~효자교(1.3km)와 석사동 호반체육관 입구(0.2km) 인근이다. 추후 충혼공원 (0.5km), 우두공원(1.0km), 옛 캠프페이지 내 기후대응도시 숲(1.5km) 등 5개 길이 추가된다. 총 7.4km 구간으로 총 5억 2,0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정미경 맨발걷기운동본부 춘천지회장은 “교대운동장은 모래가 있어서 걷기 좋은 맨발 걷기의 성지이고 애막골 산책로 등 춘천에도 접지할 수 있는 등산로가 있지만 안전하게 관리된 어씽길 이 필요했다”며 “봄내맨발로가 조성되면 더 많은 시민이 맨발 걷기로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맨발 걷기는 하나의 트렌드이자 문화현상이 되고 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맨발 걷기에 한 번 빠져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