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검색 닫기

VOL.393

2023-10
#예술가의 일상 수집 #봄내를품다
-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나요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제는 하루의 시작과 끝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10월, 뜨겁던 햇볕이 고집을 조금 꺾어준 덕분에 낮으로도 걷기 좋은 날들이 이어지죠. 어느새 달라진 공기의 톤에 올해의 끝도 그리 머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남은 날들을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슬슬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어떤 밈에서는 10월을 한국에서 입고 싶은 옷을 마음껏 입을 수 있는 유일한 달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고, 많은 활동들이 이루어지죠. 특히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10월은 전시나 공연을 상연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물론 올해는 저도 그러한 흐름에 편승하여 전시를 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모든 일들이 그렇습니다. 시작하기 전까지는 지레 겁을 먹고 두려워하기 마련이죠. 제게는 특히 전시 일정이 잡힌 순간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불안감이 찾아옵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학부 때부터 꾸준히 전시를 이어왔다고 하지만 엄습하는 불안감을 이겨낼 방법을 달리 찾을 수가 없었죠. 아무리 첫 단추를 잘 끼웠다고 한들 끊임없는 자기 검열과 의심에 시달립니다. 갤러리 관계자들과 수차례 미팅을 진행하며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요동치는 마음은 좀처럼 잠잠해질 줄을 모릅니다. 오히려 부정적인 상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점점 덩치를 키워 저를 덮칩니다. 앞으로 선보일 전시가 몇 번인데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이 감정을 앞으로 수십년을 안고가야 할 것을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해집니다. 그럼에도 이 직업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만한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 추측해봅니다.








재작년 겨울, 상상마당에서 전시를 마친 뒤였을 겁니다. 

“수영은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가는 원동력을 어디서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전시를 잘 마무리 지은 뒤 기력을 회복 중이던 저에게 친구가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던 저는 대답했죠. ‘관객들의 반응’이라고. 실제로 전시 기간 동안 공간에 머물며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작업을 하는 동안 품었던 생각들, 저마다의 감상 등을 이야기하게 되죠. 그러다 한번씩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위안을 얻어가는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전시 준비하는 동안 오랜 기간 저를 감싸고 있던 불안은 이를 보상하기라도 하는 듯 벅차오르는 감정으로 바뀌어 남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 큰 불안이 찾아올 것을 알지만 다시 붓을 쥐게 만들죠.




친구의 질문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오랜 기억을 꺼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살랑 불어오던 이맘 때의 강바람을 맞으며 울먹이던 소년이 내뱉던 말을. 아버지께 꼭 멋있는 사람이 되어 보일 테니 믿어달라던 그 소년이 되고 싶었던 사람의 모습을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 일상을 조금은 다채롭게 포장해줄 수 있는 사람.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때론 차갑기도, 때론 포근히 감싸주기도 하는 이야기를 만드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남은 기간 열심히 준비를 하여 지난 계절동안 속에 품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당신에게 멋있게 선보이겠다 다짐을 해봅니다.












김수영

회화작가. 10여 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살아온 탓에 표준어와 사투리가 섞인 억양을 쓰지만, 어엿한 15년차 춘천인.

우리를 둘러싼 것들이 만들어내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이야기들을 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