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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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93

2023-10
#교실에서 보낸 편지 #봄내를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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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 산다는 것



지난 7월 한 고등학교에서 진로의 날 특강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교사를 꿈꾸는 서른여 명 앞에서 교사의 장단점과 제가 만난 아이들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습니다. 강연을 준비하며 오픈채팅방을 통해 현직 선생님들께 설문을 했는데요. 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지 여쭈었는데 어떤 대답이 있었을까요? 

‘인내’와 ‘책임’도 많았지만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 답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전국의 선생님들은 아이들앞에 서는데 ‘사랑’이 가장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학생들과 나누며 저는 행복했습니다. 의사는 아픈 사람을 만나고 판검사는 죄지은 사람을 만나지만 우리는 매일 아이들을 만난다고. 도종환 시인의 <어릴 때 내 꿈은>을 함께 낭송하며 학생들은 교사의 꿈을 한 뼘 더 키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2주 후 비보를 들었습니다. 국민 모두가 슬퍼하고 충격을 받은 선생님의 뉴스였습니다. 선생님들의 억울한 죽음이 잇따라 보도되었습니다. 매일같이 시달리고 고통 받는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제주변에서도 저도 겪었던, 교사라면 매년 겪어야만 하는 그런 일들이었습니다. 전 아이들에게 교사라는 직업을 추천한 일을 후회했습니다.


교사로 산다는 건 무엇일까요? 임용시험을 준비하며 일기에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초롱한 눈망울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꼭 선생님이 되고 싶다. 아이들과 삶을 이야기하고, 함께 웃고 울고,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

네. 조금은 환상에 젖어 교사를 꿈꿨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눈망울은 매일 초롱초롱 빛나지도 않고요. 불 꺼진 교실에 들어가면 모두 엎드려 있지요. 사랑을 주겠노라 아침마다 다짐하지만 마음 밭이 이미 말라버린 것 같아 박박 긁어내도 찾기 어려울 때가 많지요. 

그래도 가끔 아이들에게서 수업이 재밌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더더 가~끔 손편지라도 받으면 말랐던 사랑이 다시 차오르곤 합니다.

하지만 교사의 마음을 가물게 하는 건 도처에 있습니다. 아이들 사이의 갈등은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다른 차원으로 진화한 듯합니다. 학부모의 민원도 예전보다 잦아졌습니다. 참기 힘든 폭언을 듣는 일도 많습니다. 교원평가에 보이는 몇 개의 악플은 자존감을 무너뜨립니다. 교장, 교감은 교사가 알아서 해결하라며 떠넘기고, 교육청과 교육부에서는 ‘불법 집단행동’을 엄벌하겠다는 공문만 내려 보냅니다. 모든게, 모든게 교사 개인의 책임입니다. 행복과 보람보다는 모욕과 환멸을 더 느끼지요.


9월 2일 전국에서 선생님 30만 명이 모였습니다. 우리나라 교사 수가 50여만 명인데 말이죠. 9월 4일에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수많은 선생님들이 잠시 수업을 멈추었습니다.  많은 학부모와 시민들께서 지지해주셨습니다. 교육을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습니다. 

글쎄요. 여전히 교직 관련 뉴스에 달리는 ‘편하게 일한다’, ‘교사가 하는 게 뭐냐’는 댓글처럼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요. 괜찮습니다. 대부분 선생님들은 그렇게 편하지도 않고, 일도 많이 하니 오히려 상처받지 않습니다. 다만 우려되는 건 사랑이 말라버릴까하는 겁니다. 우리 안의 사랑이 결국 다해버려 비가 내려도 더 이상 회생할 수 없는 사막이 되어버리면 어쩌나하는 걱정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지 못하면 학교는 뭐가 되나, 우리는 뭐가 되나 하는 고민입니다.

따스한 이야기만 전하려했던 <봄내>에 이처럼 궂은 이야기를 풀어 죄송한 마음입니다. 공자께서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살아가게끔 하는 것’(애지욕기생-愛之欲基生)이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저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아이들도, 많은 보호자께서도 교사 또한 살아가기를 바라실거라 믿습니다.

아이들에게 더 웃어주고, 삶에 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 수업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멈추겠습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학교에 비를 내리는 일입니다.






김병현

강원애니고등학교 교사. 

문학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공명할 때 가장 신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