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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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92

2023-09
#봄내인터뷰 #봄내를만나다
인도에서 온 이퍼 나게쉬 씨
춘천에 산다는 건, 내 존재감을 느끼는 것
30주년 특별 기획







이과 출신의 연구원. 출근하면 가장 먼저 커피부터 마시는 K직장인. 퇴근 후엔 아내와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아빠. 대룡산을 좋아하는 거두리 주민. 이 모든 수식어는 인도에서 온 이퍼 나게쉬 씨를 설명하는 단어다. 평범하고 평화롭게 춘천에 녹아있는, 이퍼 나게쉬 씨를 만났다. 







이퍼 나게쉬 

1978년생 인도 뭄바이 출신. 춘천에 21년째 거주 중인 춘천 시민.

박사 과정을 밟으러 2003년 강원대학교에 오면서 춘천과 연이 닿았다.

현재 거두농공단지에 위치한 바디텍메드의 중앙연구소 항원개발팀 부장.






이퍼 나게쉬 씨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좋아했다. 식물, 동물, 미생물 등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를 들여다보고 탐구하는 것이 재밌었다. *20대 초반, 나게쉬 씨는 인도에서 생명공학 석사 과정까지 마치고 식물병리학 박사 과정 공부를 위해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인하대학교에서 공부 중이던 친구가 ‘한국도 연구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서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친구의 설득에 한국에 있는 여러 대학에 원서를 넣었고, 세 군데에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게쉬 씨는 그중에서도 강원도 춘천에 있는 강원대학교를 택했다. 당시 그가 살고 있던 도시는 인구 밀도가 세계 1위인 뭄바이였다. 한정된 공간에서 많은 사람과 뒤엉켜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여유로운 환경을 원했고, 산과 강이 풍요로운 춘천을 택하게 된 것. 그렇게 2003년 스물다섯,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 인도와 한국은 같은 아시아 대륙이지만 문화와 환경, 종교 등 다른 점이 많다. 교육받는 나이 또한 우리나라보다 약 3년이 빠르다. 6살에 학교에 입학하고, 대학교도 3년이면 졸업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인도에는 한국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20년 전에는 한국의 위상과 영향력이 지금과 달랐기 때문에 나게쉬 씨 또한 한국 역사나 문화에 대해 전혀 모르고 한국에 왔다. 그런 그에게 가장 큰 ‘컬쳐 쇼크(문화 충격)’는 ‘언어’였다. 인도는 평상시 대화할 땐 힌디어를 사용하지만, 학교 수업과 시험은 영어로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도 당연히 영어를 사용하는 줄 알고 왔는데, 한국어로 진행되는 수업에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처음에는 언어 때문에 힘들었지만 한 학기가 지나고부터는 완벽 적응을 할 수 있었는데, 적응을 도운 일등 공신이 바로 선배들이었다. 



“같은 전공 선배들이 정말 잘 해줬어요.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 주고, 기숙사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직접 와서 해결해 주고, 주말마다 저와 놀아줬답니다. 하하. 그리고 당시 철학과 교수님이 타지 생활하는 외국인들을 잘 챙겨줬는데, 특히 중도 유원지에 많이 데려갔었어요. 중도가 개발되기 전에는 캠핑하기 좋은 환경이었거든요. 여러 외국인이 있다 보니 각 나라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시간을 보냈어요. 한 달에 한 번은 꼭 소풍을 갔던 것 같아요. 소중한 추억이에요. 그분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한국에 적응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이후 나게쉬 씨는 인도 문화를 공유하는 모임에 나가면서 지금의 아내 김민영 씨를 만났다. 당시 서울에 살던 김 씨를 만나기 위해 춘천에서 기차를 타고 청량리역에 내려 또 지하철로 갈아타고 김 씨가 사는 곳까지 가는 데 다섯 시간이 걸렸다고. 2012년 결혼하면서 아내는 춘천에 오게 됐고, 나게쉬 씨는 학업 때문에 오게 된 타국에서 가정까지 꾸리게 됐다. 이로써 그에게 춘천은 진정한 두 번째 고향이 됐다.



나게쉬 씨가 몸담고 있는 바이오 기업 바디텍메드는 지난 코로나 팬데믹 때 중요한 역할을 했다. 코로나 진단 키트에 필요한 원료를 개발하고 항체진단키트와 항원진단키트 등 여러 기술력으로 주목받았다. 항원개발팀에서 나게쉬 씨는 동료들과 바이러스의 특성을 연구하고 분석해,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파악하는 일을 한다. 이런 정보는 백신 개발이나 진단 키트 제작에 꼭 필요한 기술이다. 10년 전, 나게쉬 씨가 입사했을 때만 해도 직원이 50명이었는데 지금은 500명이 넘는다. 또 해외 여러 나라에 공장을 설립할 만큼 성장했다. “우리 회사는 향후 3년 안에 연 매출액 목표를 2천억으로 잡을 만큼 큰 회사이고, 매출의 95%가 수출이에요. 회사의 위치가 꼭 대도시일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어요. 오히려 소도시의 여유를 즐길 수도 있고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도 훌륭하죠. 춘천에 이런 기업들이 더 들어오면 좋겠어요.





 < 2019년에 찍은 가족 사진 >





 < 나게쉬 씨의 집 마당 풍경과 직접 만든 화덕 >





나게쉬 씨는 좋아하는 것을 부지런히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다양한 식물 키우기를 좋아하는데 요즘은 바나나 나무, 파파야 나무, 파인애플, 무화과나무, 백향과(패션프루트)에 공을 들이고 있다. 회사에서 돌아오면, 집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마당에서 한참을 살펴보는 일까지 끝나야 비로소 퇴근이다. 식물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좋고, 열매를 맺거나 꽃을 피우면 선물 받은 것처럼 기쁨이 크다고. 또 마당의 화덕도 직접 만들었다. 서울에서 불맛 나는 화덕피자를 처음 먹어봤는데, 어린 시절 불에서 구운 짜파티(인도의 주식으로 납작하게 밀대로 밀어 구운 통밀 빵)가 기억나 만들게 됐다. 재료를 조금씩 공수해 혼자 만들었기 때문에 완성까지는 1년이 걸렸다. 주말이면 짜이(인도의 향신료가 들어간 홍차와 우유를 섞은 차)를 만들어 먹고 춘천 곳곳의 단골 식당도 즐겨 간다. 춘천이 좋은 이유를 묻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춘천은 작은 도시라 그런지, 내 존재감을 느끼게 해줘요.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게 느껴져요. 어떤 장소는 부모님이랑 같이 산책했던 곳, 어떤 장소는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추억을 만든 곳, 이렇게 내 역사와 강하게 연결돼 있어서 특별하답니다.” 









 < 나게쉬 씨가 기르는 특이식물, 풀루메리아 >




 < (왼쪽부터) 파파야 나무, 타마린드 나무, 커리잎 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