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검색 닫기

VOL.392

2023-09
#도란도란 #봄내를꿈꾸다
#연극 #아버지와 살면 #아트팩토리 봄
일상으로의 회복 의지
문화 리뷰


마음 슬프게 하는 일의 종류는 많다. 잠시 스쳐 가는 생채기 같은 사건부터 일어설 수조차 없게 만드는 사고까지, 살아가면서 예기치 않은 일들이 수도 없이 기다리고 있다. 아픔의 경중을 따지기는 어렵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전쟁의 커다란 고통에는 모두가 공감한다. 전쟁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모두의 역사에 자리하고 있다. 


춘천 실레마을에 위치한 도모극장에 8월 3일부터 6일까지 연극 <아버지와 살면>이 올랐다. 이노우에 히사시 원작으로 아버지 다케조와 딸 미쓰에가 등장하는 2인극이다.이들은 히로시마 원자폭탄 ‘리틀보이’의 피해자들이다.


극의 시작부터 천둥 번개에 트라우마를 겪는 딸 미쓰에는 아버지가 열어주는 옷장에 숨는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존재가 그녀가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만들어 낸 허상임을 알 수 있다. 태양 두 개의 온도였던 ‘번쩍’의 날에 아무래도 살아남은 것이 이상한 그녀는 아버지가 사랑의 응원단장으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연애를 시작하거나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이 과분하다고 여기며 부딪힌다. 비극을 겪은 생존자로서 행복할 수 없다는 나와, 사랑을 하며 행복해지고 싶은 나의 갈등이다.


아버지 다케조는 아무리 흔한 설화에 묻으려 해도 피폭자의 이야기를 숨기기는 어렵다면서 송곳처럼 따가운 전쟁의 참혹함을 알린다. 작가 이노우에 히사시 역시 <아버지와 살면>을 쓰면서 전쟁을 어찌 이야기에 담아야 할까에 대한 고찰이 느껴진다. 시종일관 무겁지 않고 엉뚱한 아빠와 단호한 딸의 유쾌한 조합은 눈에 띄지 않고 소중한 삶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평범한 가정집의 단출한 무대, 배우 둘만이 펼치는 2인극인데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정신이 폐허가 된 사람의 강렬한 울부짖음이 있다.


더블 캐스팅으로 골라보는 묘미도 있었다. 다케로 역 김응형 배우와 미쓰에 역 이현지 배우에게서는 귀여운 부녀의 사랑스러운 유쾌함이 돋보이고, 찰떡 호흡이 눈에 띄었다. 배우 김귀선, 원소연 페어에서는 감정의 조절 폭이 넓고 입체적이기 때문에 같은 극이지만 다채로운 감상이 가능했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큰 사람의 일생보다 풀꽃처럼 작은 이들의 인생에 더 마음이 가는 까닭은 그것이 평범한 삶에 더 가까운 이야기이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미약한 회복 의지는 결국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된다. 딸이 다시 찾아올 거냐고 묻는 물음에 아버지의 등장은 “너에게 달렸지”라는 대사처럼, 결국 폐허에 뿌리는 희망의 씨앗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관객은 실레마을의 한 극장에서 우리의 가능성을 다시금 재확인하고 일상으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