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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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92

2023-09
#최돈선의 둘레마을 이야기 #봄내를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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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여름

< 카페 '봉의산 가는 길' 창가의 순례자 >




순례자를 만나다 

8월 7일 오후. 

카페 ‘봉의산 가는 길’에는 한 순례자가 어두운 곳에 고요히 앉아 있다. 창을 통해 내다보이는 호수는 청록이고 하늘은 코발트블루이다. 이 추상적 물상은 약간 어두운 실내에서 스스로 은은히 빛을 발한다.

주인은 봉의산의 현자로 통한다. 그의 카페엔 예술인들이 늘 찾는다. 카페 ‘봉의산 가는 길’은 시인, 소설가, 화가, 음악인 등 문화계 인사들이 자주 찾는 단골집으로 통한다. 이 카페는 서울에도 널리 알려져 서울 예술인들이 춘천을 방문하면 으레 들르는 곳이다. 

2009년 어느 날, 조각가 김훈이 청동 조각품을 가슴에 품고 카페에 나타났다. 그는 그 조각품을 주인에게 말없이 내밀었다. 

형에게 주고 싶다고.

순례자예요. 

김훈은 자신의 작품을 그렇게 불렀다.

순례자는 2009년부터 지금까지 청동빛으로 카페에 있다. 2015년 1월 김훈은 눈 쌓인 어느 골짜기에서 차 안에 연탄불을 피워놓은 채, 진정한 순례자의 길을 떠났다. 

그가 순례의 길을 떠난 지 8년이다. 자존심 강하고, 재능 있으며, 늘 자부심으로 가득 찼던 조각가 김훈. 

나는 예전에 그와 가끔 만난 적이 있다. 곁에는 화가 김춘배가 늘 함께했다. 

장애를 지닌 김춘배 화가를 김훈은 성심껏 돕고 챙겼다.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산티아고를 연상시키는 사람이었다. 김훈의 부드러운 미소 속엔 강인함이 서려 있었다. 

그런데 눈 내린 겨울 나목처럼 허허로이 그는 훌쩍 먼 여행을 떠나버린 것이다. 

나는 김훈의 흔적을 찾아 매미 우는 여름날, 저 하늘 구름처럼 떠났다. 




< 김유정문학촌 봄봄 신동면 실레마을 >




실레마을 봄봄 

춘천을 어느 시인은 가을도 봄 같다고 했다. 김유정의 단편 ‘봄봄’은 춘천의 실레마을을 봄으로 상징화한 대표적 작품이다.

김유정문학촌엔 해학적인 조각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마당에 점순이를 세워놓고, 욕쟁이 장인어른이 ‘키가 요렇게 안 크니 성례를 어떻게 시키냐’며 데릴사위에게 버럭 소리친다. 데릴사위는 마냥 울상인 표정이다. 

세 인물의 표정에서 저마다의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키 작은 점순이는 어떻게든 키를 높여보려고 고개를 바짝 치켜 들고 있고, 장인어른은 부릅뜬 두 눈으로 데릴사위를 무섭게 째려본다. 

데릴사위의 당황하고 안타까운 표정에선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다. 

관람객들은 딱딱하고 차가운 조각상에서 감정의 심리적 변화를 흥미롭게 읽어낼 수 있다. 

한국문학의 백미인 봄봄은 이 장면 하나로 명작임이 증명된다. 김유정 소설도 백미이지만, 김훈의 조각 또한 가히 일품이다. 




젊은 부부의 파종 

나는 2022년 ‘춘천예술’에다 이렇게 글을 썼다. 

호수 건너 금산리 서면농협엔 젊은 농부의 조각상이 서 있다. 그 조각상을 만들어 세운 조각가는 어느 날 자가용에다 연탄을 피워놓고 스스로 제 길을 갔다.

그 죽음을 가장 슬퍼한 한 서양화가는 6개월 동안 세상의 햇빛을 피했다. 그의 우정은 가을처럼 깊었다. 그리고 그는 어느 날, 서면을 향해 네 바퀴 오토바이를 거칠게 몰았다. 그리고 그는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를 그리기 시작했다. 호수와 강과 언덕에서 바람을 맞고 있는 갈대. 그 갈대는 자신의 몸을 뉘이면서 늘 그리운 손짓으로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곤 했다.

갈대를 그린 화가는 김춘배이고, 그리운 손짓의 대상은 조각가 김훈이었다. 

서면에 갈 때면, 으레 나는 이 젊은 부부의 조상(彫像) 앞에 선다. 무슨 씨앗을 뿌리는지 파종이란 작품도 언제나 봄이다. 가을 낙엽이 흩날려도 봄이고, 겨울 눈이 하얗게 머리와 어깨에 쌓여도 봄이다.

이 파종의 조상을 세운 해가 1996년으로 되어 있으니 김훈의 나이 34세 때였다.




< 상하이행 비행기에서 김춘배(앞), 김훈(뒤) >




< 젊은 농부의 파종 (서면 금산리) >




용산리 육탄용사의 꿈 

용산리엔 2016년까지 102보충대가 있었다. 매주 한 번씩 젊은 입영 장정들이 용산리 102보충대로 몰려들었다. 

부대 정문 앞 광장은 입영하는 장정과 배웅하는 가족과 친지들, 사랑하는 애인들로 북적였다. 

그 광장에 2008년 육탄용사 조형물이 세워졌다. 1950년 옥산포 지역으로 진격해 오는 적 탱크를 향해 여섯 명의 용사는 수류탄과 화염병으로 탱크를 파괴했다. 이것을 제작한 김훈도 1982년 102보충대 정문을 통과하여 입소했었다. 

이제 광장은 적막하기 그지없다. 

그토록 번성하던 가게들도 모두 사라지고 없다. 단지 휴게소 매점 하나와 식당 두 군데가 한가하게 서 있을 뿐이다. 부대 울타리 쪽엔 춘천시 동물보호센터가 자리 잡고 있지만,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작별의 눈물도 없이, 안타까운 손짓도 없이, 제대하면 만나리라는 희망조차 없이… 그저 무심코 고요의 먼지가 내려앉는 꽃밭엔 노랑, 빨강, 파랑 꽃들이 올망졸망 피어서 지곤 할 따름이다.




< 육탄용사(용산리) >




다시 봉의산 가는 길

밝은 빛 가운데 오래 쏘다닌 탓일까. 카페 문을 열자마자 갑자기 어둠이 왈칵 밀려든다. 

어둠 맞은편 창으로 코발트블루의 하늘이 환히 걸려 있다. 

주인인 노정균 님이 반가이 맞는다. 

서서히 실내가 눈에 띄자 우린 순례자를 창가에 놓았다. 창밖을 내다보는 순례자는 빛의 경계가 지워지면서 몽롱한 그늘의 명암을 드러낸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조상 앞에 묵념하듯 앉아 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카페 문을 열고 나왔다. 마치 지친 영혼을 회복한 순례자인 양.




춘천대첩 평화공원에서의 상징물

거대한 구름 군단이 호수 위를 스치며 둥둥 떠간다. 항공모함 구름과 구축함 전단은 위용이 만만치가 않다. 

땅 위의 전사들은 야전포에 포탄을 장전하고 전투에 임한다. 무공탑 위에선 선도 병사가 왼손에 M1소총을 들고 “전진! 전진!”하고 외친다. 

실물을 보듯 조형물들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무공탑에 명기된 이름엔 조각가 김훈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치열한 전투가 끝난 후 평화공원은 아늑한 고요가 찾아든다. 6.25 한국전쟁을 경험한 노인들은 깊은 상처로 하여 고뇌에 잠겨 있을 터이다. 그러나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그 후손들은 전쟁이 마치 먼 나라의 이야기인 양 느껴질지도 모른다. 




< 춘천 96 역사로부터 미래로(공지천 조각공원) >




공지천 조각공원 

마지막 작품에 도달했다. 

공지천 조각공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춘천의 심장이라 할 공원엔 춘천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저마다 생명의 숨을 쉬고 있다. 

그 중심에 ‘춘천 수부 100주년 기념’ 조형물이 있다. 춘천의 역사와 춘천 사람들의 지나온 삶, 그리고 현재와 미래가 함께 담겨있다. 

책을 읽는 안경 쓴 노인, 하늘로 팔을 쭉 뻗은 젊은 두 남녀, 아이 하나 엄마의 어깨에 앉아 비둘기를 손에 받치고 있는 모습. 비둘기는 막 날아오르려는 듯 날개를 파닥이는데, 푸르른 창공에 솜처럼 부드럽고 고운 구름이 비단처럼 펼쳐진다. 풍경이 작품이 되고, 작품이 풍경이 되는 순간이다. 

자연과의 합일은 이토록 아름답다. 

춘천인의 심성이 그대로 드러난 이 작품은 김훈의 대표적 조형물로서 춘천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 






최돈선

시인, 춘천시 둘레엔 1개 읍, 9개 면이 있다. 나는 그곳이 궁금하다.

그 고요한 곳에서 현지는 있을 것이다. 당신목 같은 우직한 당신의 사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