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맞아 ‘지속가능한 삶’ 코너에서는 여행객들이 양심적으로 여행하고 지구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작은 숙소들을 소개한다. 녹색스테이 ‘재미야’에 이어 8월호에서는 지구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퍼머컬쳐 농법을 실천하는 키친가든숙소 ‘밀봄숲’을 소개한다.
춘천에서 86번 국도를 따라 남춘천 IC 까지 가면 동산면 군자리다. 산과 산으로 이어지는 푸른 숲과 계곡이 어우러진 종자리로 224-53. 지난 7월 4일 한적하고 작은 숲속에 위치한 자연을 닮은 숙소 밀봄숲을 찾았다. 숲을 등지고 나무 집 세 동이 자리하고 있었다. 도심에 있는 여느 숙소와는 달리 고즈넉한 시골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비포장도로 길이 끝난 지점에 마중 나와 있던 안경훈, 김현지 부부. 대문도 없는 입구를 따라 밀봄숲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먼저 이곳에 정착한 이유를 물었다. “원래 저희 부부는 환경에 대해 관심이 높았어요. 도시에서는 제로웨이스트의 삶을 실천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시골로 가기로 결심했죠” 라며 춘천으로 이사 온 이유를 설명했다. 이곳에 정착한 지 1년 남짓인데 밀봄숲을 부르는 별명도 생겼다. 인근에서는 ‘헐벗은 집’으로 소문이 났다고. 지붕도 벽도 온통 ‘삼나무’로 뒤덮혀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마감을 하지 않아 비와 바람, 햇살은 삼나무를 금세 나이들게 만들었다. 부부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자연으로 되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외장재를 골랐던 것이라서 괜찮다”며 환하게 웃었다.
밀봄숲은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친환경 숙소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실천에는 노플라스틱, 생수병 대신 보리차 제공, 압축한 천연수세미, 지리산에서 자란 깨끗한 원료로 만든 고체비누와 치약, 알러지와 아토피에 좋은 친환경 마이크로화이버솜을 넣은 침구, 대나무 칫솔, 매번 삶아내는 소창행주등이 포함된다. 무엇보다 유기농 원칙에 대한 부부의 책임감 있는 접근방식이 눈에 띈다. 이들은 퍼머컬쳐 농법을 실천하기 위해 작년부터 팔을 걷어붙였다. 이 농법은 트랙터나 경운기로 밭을 갈지 않는다. 밭에는 여느 밭에서 볼 수 있는 검정비닐 대신 산에서 긁어모은 낙엽 들이 잔뜩 덮여 있다. 일명 낙엽멀칭* 방식이다. 게다가 직접 만든 퇴비를 사용하면서 땅이 숨을 쉬게 되고, 미생물과 지렁이가 살게 되었다. 그야말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농사를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 밀봄숲 주변을 둘러싼 구불구불한 둔턱에서는 바질, 양상추 등 농작물이 자라고 있었다. 이 밭에서 나는 계절 식자재가 조식의 재료가 된다. 무엇보다 밀봄숲이 특별한 건 아침마다 부부가 만든 화덕에 직접 빵을 구워준다는 점이다. 초당옥수수로 만든 제철스프와 평창의 메밀가루로 만든 메밀갈레트* 같은 아침식사를 어디서 또 만나볼 수 있을까.
* 낙엽멀칭 : 비닐 대신 낙엽으로 덮어주어 풀이 자라는 것을 늦추거나 방지하여 작물의 생육을 돕는 방식
* 갈레트 : 프랑스 과자의 하나 , 짭잘한 파이
밭 한 귀퉁이에 커다란 나무 상자가 눈에 띄었다. 상자는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되어 각각 뚜껑이 달려 있었다. 퇴비함이다. 이곳에서는 여행객들이 배출하는 음식물 쓰레기도 퇴비가 된다. 퇴비함에는 발효를 돕기 위한 낙엽, 톱밥, 나뭇가지들이 섞여 있었다. 낙엽 속에는 유기물들이 한 가득이다. 그냥 썩게 만들면 냄새가 나지만 지렁이와 미생물이 발효를 도우면 제대로 썩을 수 있다고 한다. 6개월 이상 숙성시킨 퇴비는 다시 밭에 뿌려서 순환시킨다. 밀봄숲에서는 의외로 모닥불을 피워 불멍도 가능하다. 지구를 생각하는 숙소에서 나무를 태운다는게 마음에 걸려 물어보니 타고 남은 숯은 밭에 꼽는다고 했다. 숯은 탄소덩어리로 땅 속에 넣으면 유기물화 되어 지력을 튼튼하게 만든다. 텃밭에는 강원도에서 키우기 어렵다는 밀도 심었다. 자급자족 제빵사가 꿈인 부부는 “언젠가는 우리가 심은 밀을 직접 수확해서 빵을 만들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숙소 전체를 둘러싼 울타리는 집 지을 때 사용했던 폐자재들이다. 나무 판넬 하나도 그냥 버리지 않고 모두 재활용했다. 밀봄숲에는 대문이 없다. 폐자재 중 가장 긴 막대기를 하나 다듬어 제주도의 정낭*처럼 무심하게 얹어 놓았을 뿐이다. 무엇이든 자연스러운 게 좋다는 부부의 취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 정낭 :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대문 대신 가로로 걸쳐 놓는, 길고 굵직한 나무. 제주방언
일회용품으로 범벅된 배달 음식을 먹고 난 후 먹이 없이 떠도는 마른 몸의 북극곰이 떠오른다면? 플라스틱 생수병을 분리수거 하면서도 조금 꺼림칙했다면? 최소한의 탄소 배출을 지향하는 작은 호텔을 선택하는 건 어떨까. 친환경 숙소에서 머물면 전체 탄소발자국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친환경적이라고 해서 안락함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지구를 위한 작은 행동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이 만든 공간이라면 얼마나 따뜻할 것인가. 여행의 방향과 본질을 고민하게 만드는 작은 숙소들의 탄생이 반갑다.
영업일시 금, 토, 일 9:00~19:00
주 소 동산면 종자리로 224-53
연 락 처 010-5468-2769
인 스 타 @millbom_soup
시골 마을에서 작은 빵집과 게스트하우스를 연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일본 영화 <해피 해피 브레드>. 도시 생활에 상처받고 찌들었던 밀봄숲 부부를 눈내리는 산골로 부른 영화라고 한다. 7월 21일 밀봄숲 베이커리가 문을 열었다. 진주 앉은키밀통밀과 음성통호밀을 직접 제분한다고. 손님들에게 우리 밀로 만든 화덕빵과 차를 내어주고 위로와 치유를 전하는 밀봄숲 베이커리. 평소 이곳의 조식이 궁금했던 사람이라면 들러봐도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