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며 환경 운동을 하는 사람, 성미산을 지키는 사람, 새들의 친구, 빗물 저금통을 만들고 새들의 먹이통을 놓아주는 사람, 아이들처럼 생각하는 어른 사람,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실천하는 사람, 생태주의자, 계란으로 바위 치는 사람, 끝내 지치지 않는 사람, 사랑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 환경예술가 박종혁을 만났다.
박 종 혁
1974년생. 환경운동가, 시각예술가.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후 쿨루프캠페인, 생태보존활동을 하고 있으며.
민족미술인협회 춘천지부에서 예술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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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진 집 > 캔버스 위 아크릴, 2016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운 집. 겹겹이 쌓인 3층 집 같기도 하고 각각의 집 세 채가 원근법을 무시한 채 일렬로 서 있는 듯 보인다. 집의 일부는 바스러졌고 그 안에 살고 있을 사람이 걱정스러워지기까지 한다. 그는 이 불안한 심상을 핑크빛 투명 풍선에 담아냈다. 들여다볼수록 온기가 가득해지는 게 신기한 그림이다. (무너진 집, 2016) 박종혁 작가는 기억을 꺼내어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을 보면 자연스레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린 시절 엄마와 가족들이 단칸방에서 칼잠 자던 기억, 잠들기 전에 늘 중학생 아들의 손을 한 번씩 잡아주던 엄마, 지붕이 뚫려 비가 콸콸 쏟아지던 집까지 투명한 풍선 속에 담아냈다. 박 작가는 “내가 살아온 집과 가족, 내가 지나온 시절을 한 번씩 감싸 주고 따뜻하게 쓰다듬어 주는 그런 작업이 필요했어요. 풍선 안에 담는다는 게 여러 기억들을 한 번씩 어루만져 주는 느낌이고 위안을 받았어요”라고 설명했다.
그가 처음부터 그림을 전공한 것은 아니었다. 93년 한림대 정보공학과에 입학해서 3학년 1학기까지 컴퓨터를 다루는 것을 익혔다. 장학금 받을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그림 그리는 게 더 재미있었다. 그림 동아리 선생님의 권유로 미대 입시를 준비했다. 선생님은 그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박 작가는 “선생님이 태백 쪽으로 아르바이트하러 가서 70만 원을 벌었는데 그걸로 전부 물감을 사서 궤짝에 넣고는 흐뭇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웃음을 보며 ‘나도 돈 없어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어요”라며 진로를 바꾼 이유를 설명했다. 미대에는 바로 가지 못했다. 낙방하고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소리소리 질렀다. 미대에 가겠다는 고함이고 외침이었다. 결국 그는 00학번으로 홍익대 미대에 진학했고, 화가가 되었다. 그리고 10여 년 전부터 춘천민족미술인협회에 가입해서 1년에 2~3회 전시하고 있다.
< 겨울철 새모이 설치 (새모이통, 돼지비계 매달기) >
그림을 그리던 그가 환경운동으로 눈을 돌린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2012년쯤 오른쪽 무릎 연골이 깨졌어요. 이유도 알 수 없이 하루아침에 앉은뱅이 신세가 됐죠. 3개월을 걷지 못했으니 아예 일도 못하게 되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절뚝거리며 걷게 될 쯤 은평마을 예술창작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운영위원을 하면서 돈 버는 일 말고 다른 관심이 생겼다. 바로 환경과 공동체적 삶에 대한 관심이었다. 봉사를 통해 생애 최초로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존감을 회복하면서 기후변화에 눈을 돌렸다. 그가 서울 마포구 성미산 마을로 이사한 것도 그쯤이었다. 2014년, 이즈음부터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다. 해발 66m인 성미산은 어디든 1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도심 속 작은 산이다. 그는 먼저 물이 흐르지 않는 산에 옹달샘과 빗물 저금통을 만들어 새나 산짐승들이 목을 적시게 했다. 도심의 숲은 사방이 콘크리트 아스팔트라 빗물이 스며들 곳이 없다. 산과 땅은 계속 메말라 갈 수밖에 없으므로 그는 버려진 우산을 이용한 빗물 저금통을 숲속에 설치했다. 새들이 먹이를 찾기 어려운 겨울에는 견과류나 지방류를 모아 새 모이로 내주었다. 현재 그는 성미산 생태복원을 위한 비영리단체 ‘산다움’의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 3년간은 우두교 하천에서 열린 생태 물놀이 축제의 작가로 참여했다. 소양강물을 자갈, 모래, 숯을 이용해 물을 정수하는 원리 체험, 빗물을 모아 샤워할 수 있는 물실험숲을 만들었다. 그는 “시민들에게 기후변화로 인해 극심해지고 있는 물 부족 현실을 알리고 물의 소중함을 깨달았던 뜻깊은 시간이었다”라며 “환경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 봤던 어린이들이 커서 어떤 어른이 될지 무척 궁금하고 기대된다”고 말했다.
< 빗물저금통 만들기 >
< 2019 춘천자원순환페스타 전시 >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단연코 환경이다. 그는 기후 위기에 대해 알게 된 후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무기력감에 시달렸다고 했다. 먼저 십년후연구소를 만나면서 기후변화 대응 실천 방법을 하나씩 찾아 실천했다. 첫 번째가 쿨루프(Cool Roof)* 캠페인이다. 춘천에서는 커먼즈필드와 최초로 작업했다. 여름날 녹색 방수 페인트가 칠해진 옥상 바닥의 온도는 최대 80도까지 상승한다. 하얀색 탑코트를 칠하기만 해도 사람의 체온인 36.5도 이하로 떨어진다. 만지면 살짝 차가운 정도다. 40평 기준 6만 원만 있으면 에어컨 없이도 여름을 날 수 있다니 놀랍다. 소문을 듣고 기후정의 실현 청년네트워크 ‘오늘,잇다’가 그를 찾아왔다. 그는 청년들에게 강의와 워크숍을 진행하고, 우두나무어린이집 옥상을 쿨루프로 바꾸는 실습을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두 번째는 ‘최소한의 공기청정기’ 키트 배포. 그는 “기업들이 대형 공기청정기를 생산해서 또다시 미세먼지를 만드는 악순환의 과정을 보곤 ‘최소한의 공기청정기’를 만들기로 했다”라며 “최소한의 요소만 집어넣어도 효과가 충분하고 에너지는 적게 쓴다는 게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일반 청정기가 평균 40~60w라면 이 조립형 청정기는 1~3w 미만이다. 이 밖에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목록들은 줄줄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플라스틱 막걸리 병이 싫어서 직접 술을 담그고, 화학성분 세제가 물을 망친다며 천연세제나 비누를 만들어 쓴다. 그는 “내가 직접 만들면 플라스틱을 쓰지 않을 수 있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 쿨 루프 : 시원한 지붕(일반 지붕보다 태양열의 반사율이 높아 실내 온도를 낮추는 지붕)
< 모두가 사랑한다면 우리는 살아 남을 수 있을까 > 천위에 아크릴, 2019
이런 그의 삶의 태도는 작품활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지난 7월 6일 문화공간 역에서 단체전 <1.5도씨>에 참여한 그를 만났다. 최근 그의 그림은 바다풍경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전에는 뚜렷한 이미지나 강한 색을 사용하여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편안하고 친근한 화면 구성으로 바뀌었다. 바다 속을 그렸지만 미세먼지가 잔뜩 낀 야외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희끄무레한 이미지가 자연의 역습을 받은 우리들의 미래를 표현한 것 같았다. 역시나 플라스틱이나 비닐백을 포인트로 넣었다. 우리의 일상에 항상 플라스틱, 미세먼지 같은 기후변화 위협이 있다는 것을 작가는 작품을 통해 넌지시 말하고 있었다. “환경에 대한 고민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은 자명해요. 모두 한마음으로 극복해나가면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결국 사랑이라는 단어로 귀결돼요. 서로를 믿고 사랑으로 감쌀 때 기후 위기도 극복할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