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회를 맞이한 춘천마임축제, 그 안에서도 가장 진하게 오랜 시간 마임을 즐기고 싶다면 역시 도깨비난장이다. 해 질 녘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마임의 향연에 몸을 맡기며 이리저리 축제를 즐기다 보면 마치 내 몸도 무대의 연기자처럼 중력을 잊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마임의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보호자들과 함께 밤늦도록 공연에 빠지고 그런 풍경은 타 도시의 이방인에게 낯설게 비친다.
마임은 춘천의 책갈피 같다. 30년 넘게 쌓인 횟수만큼 춘천의 추억을 살피고 가르다 보면 꼭 빠질 수 없는 존재다. 언제나 초여름의 기억에 마임이 자리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춘천 사람으로서 마음 한 편은 마임에 물들어 있다는 뜻 아닐까.
2023춘천마임축제 도깨비난장은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 공영주차장에서 열렸다. 환경친화적인 무대를 만들기 위해 흙을 파거나 쌓았다. 이름도 내림무대(Down stage), 올림무대(Hill stage)라 외국인 관객이라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웠다. 불을 메인 소재로 다루는 만큼 바로 불을 끌 수 있는 흙이 있는 공간은 영리한 선택이다. 흙 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형태의 불을 만날 수 있었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와 보름달이 뜬 밤이 만나 훌륭한 공간이 연출됐다. 조각나거나 멈춰있었던 축제의 완전한 기지개를 보듯 도깨비난장의 밤은 화려했다. 마스크를 벗은 관객들의 환호와 탄성이 함께해 살아있는 무대를 볼 수 있었다. 오후 9시에 열렸던 화양연에서 특히 달궈졌던 현장의 분위기는 불과 관객의 흥분이 어우러져 어디에서 시작되는 열기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정령들이 들고 온 불씨가 찬란한 태양의 형태로 떠올라 어둠을 밝힐 때 터졌던 환호들은 우리 마음에도 부글거리는 불씨 하나씩을 옮겨놓은 듯했다. 바이러스로 고통받으며 지난 시간의 켜켜이 쌓았던 어둠도 비출 듯이. 바로 이어진 공연은 하얀 천을 가르고 불에 태워 진혼굿의 형태로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불꽃극을 보인 ‘예술불꽃 화랑’과 한국무용으로 우리 춤을 보인 ‘댄스컴퍼니 틀’의 두 공연이 바로 이어져 진행됐지만 두 공연의 연결고리는 좀 더 매끄러웠으면 어땠을까, 다음 공연으로 이 열기를 더 이어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또 새벽 2시까지 공연이 진행되다 보니 진행 공간이 어두운 데에 비해 보행로 안전에 대한 고려는 아쉬웠다. 야외에서 4곳의 무대가 동시에 진행되려면 음향 간섭이 없어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무대마다 거리가 멀어야 하는데, 밤에 계속 이동해야 하는데 고르지 않은 바닥은 유아, 장애인에게도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
35살이 된 축제는 에너지가 넘치는 청년처럼 능숙하게 도시에 색을 입히고 활약한다. 춘천의 봄과 함께 축제를 기다리고 늘 그 자리에 당연한 것처럼 즐겼던 축제였다. ‘이렇게 재밌는 걸 나만 빼고 즐겼단 말이야?’라는 기분이 든다던 서울시민의 반응에서 춘천 사람은 이 축제가 당연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3년 만에 완전체가 되어 돌아온 축제의 귀환에 비로소 춘천은 자신의 풍경을 되찾았다.